한국희곡

세종조회례연 '세종, 하늘의 소리를 열다'

clint 2026. 5. 26. 13:48

 

 

 

회례연이란 조선시대에 국왕과 신하가 술과 음식을 먹으며 화합을 도모하는 
군신통연(君臣通宴)의 의례로 보통은 정월 초하루와 동지에 신하들이 

왕에게 하례를 드리고 나면, 왕이 신하들에게 베푸는 잔치다.
<세종실록>에 의하면 세종조 회례연은 1424년(세종13년)에 처음 시작되어 1441년

까지 거행된 것으로 나오는데, 국립국악원에서 1433년(세종15년) 정월 초하루의 
회례연을 선택한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데, 그것은 이때야 비로서 조선의 음악이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1433년(세종15년) 정월 초하루에 거행된 회례연은 1424년부터 1432년까지 약 9년여에 
걸친 음악적 연구와 실험의 성과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리였다. 즉 예(禮)와 함께 유교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핵심수단인 악(樂)을 정비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은 
끝에 조선왕조 최초로 궁중회례연에서 아악이 연주되었던 것이다.

 



『예기(禮記)』에 “악(樂)이란 천지의 조화이며, 예(禮)란 천지의 질서이다....
세상을 다스리는 음이 음이 편안해서 즐거우면 정치가 조화롭게 된다. 
이 때문에 성(聲)으로 음(音)을 알고, 악(樂)을 살펴 정치를 알게 되어 정치의 도리가 
갖추어 진다.”고 한 것에서 세종(世宗)은 음악과 정치의 관계를 설파한 『예기(禮記)』의 
정신을 신봉했고, 자신의 시대에 조선의 독자적인 예악을 완비했다.
‘하늘이 다르니 기후가 다르고 기후가 다르니 농법이 달라야 하고, 먹는 것이 다르니
병이 다르고 병이 다르니 치료법 또한 달라야 한다.....’는 세종대왕의 자주적 사상이다. 
세종대왕은 하늘이 다르니 조선의 천측기구를 만들고, 악이 다르니 조선의 소리를 찾고, 
언어가 다르니 백성이 자신의 의사를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는 『훈민정음』이라는 
문자를 만드는 일련의 과정에 들게 되는 것이다.
『악학궤범』의 〈세종조회례연의〉에 9작까지의 악곡과 정재명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1작을 왕세자가 올렸다는 기록 뿐 나머지 2~9작의 헌작자는 누구인지 알 수 없어 
세종의 아악 창제와 관련된 인물들 중에서 5인을 설정하여 1~5작의 헌작자로 정하였다.

 



집례는 조선조의 국가의례는 <종묘제례>나 <사직대제> 또는<문묘제례>처럼 집례가 '홀기' (笏記:의례절차를 적은 글)를 창(唱)함으로 진행하는데, 이를 “세종조 회례연”에서도 차용하여 <국조오례의>의 <정지회례의> 내용을 홀기로 만들어 모든 출연자가 집례의 창(唱)에 따라 등·퇴장은 물론 진작과 음악과 무용의 교체가 이루어질 수 있게 하였다.

 

 


세종, 조선의 소리를 만들고 비로서 왕이 되다
1433년 정월 초하루의 경복궁 근정전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설날의 아침은 밝았고 
섣달 그믐날 “구나의식(잡귀를 쫒는 의식)”으로 뜬 눈으로 밤을 세운 신료들이 흥화문과 
근정문 사이의 주변에 모여들고 있다. 초엄이 울리자 호위군과 의장수들이 들어서고, 
중엄이 울리자 전악이 악공을 거느리고 위차하며, 여령은 궁담밖에 대기중이다. 
삼엄이 울리자 왕세자 이하 문무관원들이 전정과 월대위로 차례로 자리하고 
드디어 세종(世宗)이 근정전 용상에 납신다.
세종(世宗)은 어좌에 앉아 근정전 문 밖으로 보이는 조정을 내려다 본다. 
전의의 ‘국궁’이란 호령에 모든 신하들이 무릎을 꿇고, “사배하라”는 말에 「서안지곡」이 
울리며 왕세자 이하 네 번 절한다.
궁정 가득히 울리는 장엄한 소리에 세종(世宗)의 인자한 용안에 격정과 환희의 감정이 
겹치고, 신하들은 처음 듣는 음악에 놀라 절하는 것을 멈춘다. 감탄의 소리가 자기도 
모르게 입을 새어 나온다. 전율에 몸이 떨린다.
세종이 보기에 궁정에 엎드린 저들은 그동안 자신의 신하가 아닌 중국 황제의 신하였고, 
자신의 백성이 아닌 공자와 주자의 제자였다. 조선의 소리, 조선의 아악이 조선의 궁궐에 
울려퍼지는 순간, 마침내 세종은 조선의 왕이 되어 요순시대를 열었고, 태평성대는 
끝없이 이어져 갈 것으로 생각했다.

 

 


첫 번째 술잔을 왕세자가 올렸고, <보태평>이 연주되고 <문무>가 추어졌다. 
여령의 왼손에는 약(籥), 오른손에 적(翟)을 든 평화의 춤사위다.
두 번째 술잔을 의정부 당상이 올렸고, <정대업>이 연주되고 <무무>가 추어졌다. 
여령의 오른손에 척(戚), 왼손에는 간(干)을 들고 척으로 간을 치는 것은 ‘생명을 

아끼며 업신여김을 방어’하는 춤사위란다.
아홉 번째 술잔이 올려지기까지 세종은 왕이었고, 신하는 왕의 성은에 감읍하여 
춤추기도 하였다. 장시간 이어진 여흥에 악공과 여령은 지칠 법도한데 그들은 지칠 줄 
몰랐다. 악공은 밤낮으로 익힌 새 음율이 손과 입에 절로 붙었고, 여령들은 오히려 흥을 
감추기가 어려웠다.  악공과 여령! 그들은 오늘에야 비로서 조선의 새로운 음악으로 
조선의 예인(藝人)이 되었다. 세종(世宗)은 근정문, 흥례문, 광화문 너머 육조거리와 
저잣거리를 오가는 백성을 보았다.
“저들도 내 백성으로 삼아야 한다. 내가 저들을 위하여 개혁하고자 하는
일들을 아무리 방(訪)을 붙여도 그들은 모른다.
문자를 모르는 그들에게 일일이 귀에다 대고 다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내가 하는 말을 그들이 알고,
그들이 하는 말을 내가 알고자 한다면 방법은 하나이다.
서로의 뜻을 펼 수 있는 새로운 문자다! ”
음악이 정비하는데 9년, 그리고 10년 뒤 <훈민정음>이 반포된다.

 



<세종, 하늘의 소리를 열다>는 <세종실록>, <국조오례의>, <악학궤범> 등에 기록된
궁중회례연기록을 충실하게 고증하되, 내용을 현대에 맞도록 재현하여 만든 공연이다. 
세종조 회례연은 아악. 당악. 향악과 정재· 일무 등 궁중 악무의 모든 장르가 포함되어 
있으며, 역대 궁중 연례 중 가장 규모가 크고 화려한 것이 특징이다.
[세종, 하늘의 소리를 열다』는 회례연의 의례와 내용을 현대에 맞도록 재현하되, 
세종대왕이 꿈꾸었던 조선문화의 창조성과 역동성을 드러내는데 힘을 기울였다.
1433년 정월 회례연이 열렸던 바로 그곳, 경복궁 근정전에서 무려 580여년 이라는 
시간을 가슴에 품고 살아있는 역사'로서, 이 공연을  재현한다.

(김석만, 남동훈 공동구성/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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