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수는 벼슬 하나 얻으려고, 고향을 떠나 어느 대감 댁에 기거 하며, 고향의 논밭을
다 팔아 바치며 몇 년을 기다려도 대감은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할 수 없이 내수는
아내와 계략을 꾸며 자기는 고향으로 내려간다 하고 아내는 대감을 후원으로 유인한다.
내수 아내의 아름다움에 반한 대감이 방으로 들어가 수작하고 있을때 숨어 있던 내수가
나타나고 대감은 엉겁결에 뒤주에 숨는다. 내수는 방에 들어와 잡귀를 쫓는다고 뒤주를
찌르려 한다. 대감은 혼비백산하여 뛰어나와 내수에게 벼슬 줄 것을 약속한다.
내수는 만천하에 폭로하겠다고 윽박지르며, 돈 많이 생기고 정비(政碑)많이 세워줄
곳으로 보내달라고 요구하고 대감은 약속한다.
이때 대감의 첩이 나타나 자기 오라비도 벼슬을 달라고 졸라대서 할 수 없이 시흥군수를
주겠다고 약속한다. 대감은 한때의 욕정을 못 이겨 망신만 당하고 만다.

<이 대감 망할 대감>은 희화적인 수법과 대사로서 비교적 짜임새 있게 다룬 희극이다.
그 웃음속에 하나의 교훈이나 윤리를 설정했으며 풍자성까지 짙게 풍겨준다.
대체로 눈물과 한탄을 주로 한 퇴보적인 비극 <신파극>이 판치던 신연극 초기에
박승희의 이 작품은 매우 건강한 웃음과 풍자로, 해학을 몸속에 지닌 우리 민족의
심근을 긁어준 작품이다. 슬픔과 굴욕에 시달려 왔던 관객에게 웃음으로 대응하려는
박승희의 시도는 어느 의미에서는 역설적인 눈물의 변용이었을 것이다.

이 희곡의 작가 朴勝喜가 단장이었던 土月会는 김기진, 김복진, 이서구 김을한 등이
동경유학에서 돌아와 결성한 연극단체였고 당시의 신파극계에 큰 영향을 미치었다.
공연대본을 갖추고 사실적인 무대장치와 의상 등으로 관객에게 신극을 보여 주었으며
자연스러운 일상 회화식의 대사와 연기, 그리고 작품 내용을 고증하여 연출함으로써
비로소 사실적인 근대극을 소개하였던 것 이다.
그러나 토월회의 연극은 한마디로 말하면 엄격한 의미로 현대극 즉 신극은 아니었으며
다분히 비속화(卑俗化)된 서양 근대극의 소개였다고 할 수 있다. 토월회 제1공연 때의
박승희의 작품「길식」은 당시 다른 작가들의 테마와 마찬가지로 전통적인 모랄과
근대적 모랄의 갈등을 다루었고, 유교적 구습타파와 근대의식 고취를 내용으로 하였다.
토월회가 직업극단으로 성격을 바꾼 뒤 박승희의 작품은 리얼리즘 계통의 신극쪽 보다는
개량 신파극쪽으로 기울었으며, 그의 현실 파악은 감상적이요 피상적이었다.
토월회 말기에 속하는 1928년에 공연한 희극 <이 대감 망할 대감>(1막)은 고전소설
<배비장전>에서 힌트를 얻어 쓴 것 같다. 시대도 같은 근대조선으로 잡았지만 구성도
서로 유사한 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박승희는 이밖에 <춘향전>, <심청전>, <장화 홍련전> 등을 각색한 바 있는데 우리의
고전소설을 각색하여 신극 무대에 올린 선구적 시도로서 그 공적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박승희는 일본 메이지대학 영문과 재학 중 김복진(金復鎭)·김기진(金基鎭) 등과 극단 토월회(土月會)를 조직, 안톤 체홉의 《곰》, 버나드 쇼의 《그는 그 여자의 남편에게 무엇이라 거짓말을 했는가》, 유젠 피로트의 《기갈(飢渴)》 등의 번역극과, 자작 희곡 《길식(吉植)》으로 제1회 공연을 가졌고 이어 톨스토이 작 《부활(復活)》을 상연했다. 성공적인 2회 공연 이후 김기진 등 여러 문인들이 탈퇴하자, 홍사용, 원우전 등과 함께 토월회를 본격적인 신극 단체로 방향 전환했다. 1925년 극단 제도를 합자회사로 만들고 극작가 이서구, 연출가 박진, 여배우 석금성과 복혜숙, 가수 윤심덕 등을 영입함과 동시에 광무대를 전속극장으로 삼아 연중 무휴 공연과 배우 월급제, 배우 양상 활동 등 당시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활동을 의욕적으로 전개했다. 이때 양성된 배우, 양백명, 서월영, 박제행, 서일성 등은 이후 한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명배우로 활동하게 되었다. 또한 박승희는 당대 명창인 김창룡의 창을 곁들인<춘향전>을 공연하는 등, 판소리극의 현대화에도 큰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나 박승희의 토월회는 무리한 과욕과 공연 여건의 부족으로 56회 공연을 마치고 중도하차했다.
1932년 토월회를 태양극장(太陽劇場)으로 개칭하고 주로 지방공연을 했으나 재정난과 일제의 탄압으로 1940년에 해산, 광복이 되자 1946년에 《1940년》 《의사 윤봉길》 《모반의 혈》 등의 레퍼토리로 토월회 재기공연을 가졌으나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사랑과 죽음》 《산 서낭당》 《이 대감 망할 대감》 《혈육(血肉)》 《요부》 《고향》 《아리랑 고개》 등의 희곡 작품을 남겼다. 《이 대감 망할 대감》은 1928년 토월회의 재기 공연으로 이루어진 57회 공연작이었다. 이 작품이 문헌에 소개된 것은 연출가 박진의 책이 처음이었는데, 기존에 알려진 것은 박진의 개작본이었다. 박승희의 초고본은 1928년 10월호 [신문춘추]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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