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연극은 연출도 장치도 조명도 의상도 분장도 따로 없다.
무대위에 수북히 쌓인 여러개의 좌판과 그것을 사라고 외치는 배우들뿐.
다양한 성격과 성장과정을 가진 사람들, 사회적인 편력을 가진 사람들이
각기 다른 상품을 들고 나와 세상 살아가는 얘기를 한다.
출신직업- 돌팔이의사, 제비족, 축산업을 하다가 도산한 농부, 졸업장 없는 지식인
면도사, 쇼핑센타 여주인 등등-이 다양하고 튀어나오는 얘기들도 많고 모두가
사연도 깊다. 직업에 얽힌 온갖 기상천외한 얘기들을 하면서 이들은 잘못된 세상을
한탄하기도 하고 꼬집기도 한다. 우리 사회의 어딘가 잘못된 구석. 그래서 고쳐야할
구석을 짚으면서 물건 홍보을 계속한다.
그러면서 극장은 자연스럽게 장터가 되고 배우는 장꾼. 그리고 관객은 무대에
직접 올라가 물건을 흥정하기도 하고 사기도 하는 손님이 된다.
마침내 극장무대는 물론 객석 극장주변까지 장터 마당이 되어 관객들은
삶의 현장을 몸으로 느끼며 뭉클한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연극은 끝난다.
그때그때 제시된 각종 현장감 넘치는 캐치프레이즈는 오늘의 우리 삶을 확인하고
공감케하는 것들로 제시된다.

1985년 우리극단 마당의 김호태 작 장수철 연출의 공연작품이다.
장수철 연출의 글에 울림이 있어서 아래에 소개한다.
연극이란 무엇이고, 우리는 연극에서 무엇을 기대하는가? 우리가 하고 보고 있는
연극은 우리하고 어떤 관련을 갖는가. 연극은 이러저러하다는 정의가 많이 있지만
과연 이땅의 삶과 문화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걸까?
문화는 '한민족 한 집단의 삶의 방식 전체'라고 포괄적으로 정의할 수 있겠다.
연극은 이 문화를 표상하는 가장 중요한 예술행위이며 동시에 가장 적절하고
충실하게 보여줄 수 있는 문화예술 장르이다. 따라서 시대와 역사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구체적인 삶의 내용을 표현해내지 못하면 죽은 연극, 박제된
연극이 되고 만다. 그렇다면 어떤 연극이 이러한 사명을 제대로 감당해낼 수 있을까?
그것도 한반도에서 고대 희랍국이? 세익스피어의 나라 영국이나 유럽의 연극?
아니면 중국이나 미국의 연극이? 도움 될 수 있겠지만, 우리의 방식으로 우리의
이야기를 해야한다. 세익스피어의 연극이 탈춤보다 이 땅에서 더 훌륭한 것일까?
마당놀이극은 연극이라고 하기엔 뭔가 아직 부족한 것일까?
누가 연극이란 이러저러한 것이어야 한다고 규정짓는가? 서구 연극의 틈에
우리의 말. 몸짓. 생활. 문화는 아무래도 어색하다. 그래서 부끄러워하고 주눅이
들어야 하는가? 우리들(연극을 하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 모두)의 눈과 귀, 그리고
머리에 무언가 헛것이 씌었다.
자, 껍데기를 벗겨보자! 무엇이 남아있는가. 우울하게도 부스러기만 남아있어도 좋다.
그것으로 우리의 삶을 우리의 이야기 방식으로 해보자. 물론 당황하고 어렵고 어색하다.
그건 헛것이 씌여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해야한다. 그 일련의 작업으로 이 장터를 연다.
눈먼 산업화에 쫓기고 찌든 이 장터는 바로 우리들 모습의 한 단면이다.
그래서 슬프기도 하지만 동시에 즐겁다. 그래서 우리는 장터를 사랑한다.
서양물 먹은 똥파리는 가라! 산업 입국 미명아래 생명수 맑은 물에 독을
쏟아붓는 똥파리도 가라!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이념을 조작하는 똥파리도 가라!
어떻게 하면 더 크게 한탕 쳐서 돈을 긁어모으고 흥청망청 써볼까, 매일 고민하는
똥파리도 가라! 우리의 즐겁고 건강한 삶을 더럽히고 병들게 하는
이 땅의 모든 똥파리는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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