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우현종 '제삿날'

clint 2026. 4. 30. 21:39

 

 

 

할아버지의 제삿날. 희곡작가가 되고자 하는 삼석이가 막 제대한 날이다.

제대의 기쁨에 들뜬 삼석에게 애인이 임신했다는 이야기를 꺼낸다.

애인은 불확실한 미래와 삼석이가 그의 아버지와 오랫동안 갈등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애를 낳는 것을 주저한다.

삼석은 결혼 승낙을 받고 오겠다며 집으로 들어간다.

제사상을 준비하고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

삼석과 아버지의 관계는 여전히 냉랭하기 그지없다.

이때 삼석 조부와 증조, 고조, 이렇게 삼대의 귀신이 나타난다.

삼석이와 아버지 사이를 화해시켜야 만이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

새 생명이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될 것이며,

그래야만 생명 윤회의 고리에 따라 고조가 다시 환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아들을 화해시킬 장소로는 목욕탕이 최고의 적지다.

그것은 삼석이가 구상 중인 희곡의 내용일 뿐더러,

아버지가 최초로 등을 맡기로 아들에게 기대는 곳이자, 아들이 아버지의 등을 바라보며

아버지의 존재의 무게를 느끼는 곳이기 때문이다.

저승의 귀신 삼대(三代)와 이승의 부자 이대(二代)

엎치락뒤치락 펼치는 '뒤집어지는 폭소'와 잔잔한 감동이 있다.

 

 

 

 

이들의 세계에서는 전에 아버지였고 아들이었던 관계로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친구이다. 왜냐하면 할아버지였었지만 한때는 그의 손자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들이 애인의 배신으로 삶을 쉽게 내 던지려 했을 때, 그 마감하려는 삶이

혼자의 삶이 아니라, 그 동안 지나왔던 아버지의 삶, 할아버지의 삶을 포함한다는

것을 얘기한다. 따라서 끝에 고조할아버지가 아들의 아내의 뱃속으로 들어갔다는

의미는 삶의 윤회와 함께 단순히 어른에 대한 공경이 아니라, 고조할아버지가

아들일 수 있음을 그리고 여러 가지 역할을 맡음으로써 무심코 스쳐 지나가는

타인들 중에서도 우리의 아버지, 아들일 수 있음을 알아야한다는 것, 

즉 사람과 사람의 만남의 소중함을 말한다.

이 연극에서 등장하는 할아버지들은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지만, 가장 큰 것은

할아버지의 역할이다. 이들은 이미 고인이 된 아버지의 할아버지, 그리고

할아버지의 아버지, 또 그 할아버지의 아버지들이다. 하지만, 저승에서 이들은

이러한 관계가 아닌 그저 친구같이 지낸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뿌리이자, 

정작 자신들의 분신인 아버지와 아들의 삶을 바라보며 못내 아쉽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다. 이들은 이 부자를 늘 지켜보면서 온갖 방법으로

그들의 정도(正道)를 기원한다물론 정작 살아나갈 주인공들은 아버지와 아들, 

살아있는 이들이라는 것을 결코 잊지 않는 범위에서 말이다.

 

 

 

연극 "제사날"은 제사의 의미와 과정을 통하여 삶과 죽음이 만나는 작품이다. 
택시운전사인 아버지와 작가인 아들사이의 갈등을 더 큰 타나토스의 화신인 

사자(死者)를 부르는 제사의 과정을 통해 극복하고 있다. 여기에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등장시켜 죽음의 그림자를 순화하는 과정도 그리고 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마치 친구들처럼 등장시켜 혼란스러운 듯 하면서도 새로운 질서를 찾고  
이를 통하여 인생의 발달을 충분히 표현하고 있고 윤회적인 삶의 의미도 듬뿍 담고 
있는 작품이다. 부자의 갈등을 그린 현실속에서는 구조적이면 서도 변화가 무쌍한 
자유로움을 충분히 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