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재창작 '안티, 안티고네'

clint 2026. 4. 12. 11:30

 

 

안티고네는 테베에서 추방된 아버지 오이디푸스를 봉양하며 유랑하고 있다. 
신탁에 의해 테베에서 추방된 오이디푸스는 신탁에 도전해 자신의 인간적 결함을 
밝히고자 애썼던 그 고귀한 모습을 잃은 지 이미 오래다. 그는 딸 안티고네에 
기생하며 때로는 그녀를 윽박지르고 때로는 그녀의 모성을 자극하며 
안티고네의 희생을 강요한다. 오이디푸스의 순종적인 딸로서 자라 난 안티고네는 
자신이 아버지를 봉양하며 세상을 유랑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여사제인 이스메네는 이런 아버지와 안티고네의 모습이 안타깝다. 
이스메네에게는 딸의 희생을 강요하는 오이디푸스의 가부장적 위선이 눈에 보인다. 
그리하여 죽음을 앞 둔 오이디푸스가 두 딸에게 함께 무덤에 묻힐 것을 요구할 때 
안티고네는 “예스”라 답하나 이스메네는 거부한다. 
유랑하는 이들을 찾아온 크레온은 오이디푸스에게 두 아들의 시체를 거둘 것을 
제안하나 오이디푸스는 그를 거절하며 홀로 무덤에 갇힌다. 
국가의 질서를 어지럽힌 대가로 크레온은 두 왕자의 시체를 벌판에 버려둘 것을 
명령하고 이를 어긴 안티고네를 돌로 치려한다. 크레온의 폭력에 신탁을 빌어 
저주를 내리는 이스메네. 분노한 크레온은 군인들로 하여 이스메네를 능욕시킨다. 
이스메네의 능욕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안티고네. 크레온이라는 아비를 
대신하는 남자의 권력에 만신창이가 된 두 자매는 세상을 떠돌고 온전한 자신이 
아닌 딸로서, 누이로서 살아 온 자신의 습속의 결과에 몸서리치는 안티고네는 
“안티-안티고네”를 외친다.

 



그리스 신화 속 영웅 오이디푸스의 딸 안티고네. 스스로 눈을 찔러 장님이 된 아버지 오이디푸스를 따라 여러 나라를 방황하고, 반역자로 몰려 죽은 뒤 들판에 버려진 오빠의 시체를 수습한 이유로 숙부에 의해 감옥에 갇혔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작가인 소포클레스가 쓴 '안티고네'가 기존 해석들을 부정하며 여성작가 장성희를 만나 새롭게 재탄생한다. 극단 움툼 제작. 장성희 재창작, 최은승 연출로 2007년 10월 국립극장 별오름극장에서 공연되었다. 이 작품에서는 오이디푸스와 숙부 크레온이 가부장적이며 권위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안티고네의 동생 이스메네가 이에 대항하며 여성주의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테베에서 추방된 아버지 오이디푸스는 왕이었을 때의 고귀한 모습을 잃은 채 딸에게 기생하며 희생을 강요한다.

 

 

 

순종적인 딸로 자라난 안티고네는 아버지를 봉양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아버지, 달리고 싶어요. 맘껏 달리고 싶어요. 날고 싶어요"라고 무대 위 안티고네는 말한다. 그러나 아버지 오이디푸스는 "나서지 마라! 아들이 먼저야. 조상님께 고할 땐 딸은 뒷전이야. 딸이 왜 딸이냐. 삼종지도! 뭐든 다 따르라고 딸이야. 꼬옥 네 오라비를 앞세워라"라며 윽박지른다. 여사제인 동생 이스메네는 오이디푸스의 가부장적 위선을 거부하며 안티고네의 모습을 안타까워한다. 죽음을 앞둔 오이디푸스가 두 딸에게 함께 무덤에 묻힐 것을 요구할 때도 '예스'라고 답하는 언니와 달리 이스메네는 거부한다. 반역자로 처형당한 왕자들의 시체를 벌판에 버려두라는 명령을 어긴 안티고네를 돌로 치려 하자 이스메네는 신탁을 빌어 저주를 내린다. 분노한 크레온은 군인들로 하여금 이스메네를 능욕하게 한다. 남자들에 의해 만신창이가 된 두 자매는 세상을 떠돌고, 안티고네는 자신이 아닌 딸로서 살아온 인생에 몸서리치며 '안티 안티고네'를 외친다. 

 





재창작의 글 - 장성희 
<안티고네>를 다시 쓰고 싶다는 생각은 오랫동안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고전희곡들을 읽으면서 불편했던 몇 작품이 있었는데 그 중 첫 번째 것이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였다. 몇 번을 읽어보아도 <오이디푸스왕>의 주인공은 '오이디푸스'이며 <오레스테스 3부작>의 주인공도 '오레스테스'이고, <엘렉트라>도 뭐 거의 '엘렉트라'가 주인공 맞았다. 그러나 안티고네는 되풀이 해 읽어도 주인공은 '안티고네'가 아니었다. 마지막 비극적 선택으로 인해 깨달음에 이르는 주체는 아무리 봐도 '크레온'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비극의 주인공은 남보다 더 많은 윤리적 자질을 갖고 있고 그에 맞는 선택을 하며, 비극적 결말이 초래된 이후엔 모든 것을 잃더라도 더 높은 자아로 완성되는 '성숙한 인간'이었는데 안티고네는 2/3 지점에서 사라지고 마는 고집 센 소녀이자 희생양일 뿐이었다. 비극이 생산하는 공동체의 질서 유지와 건강한 보존을 위해 바쳐지는 영웅으로서의 희생양이 아니라 도구적 존재 그 자체... 여성이라는 수동태, 그 제물. 안티고네의 저항이란 그저 혈연중심의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가감 없이 반복해 말하는 수준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안티고네'가 주인공일 수 없는 <안티고네>임을 불편해하던 어느 날 연출가 최은승이 '안티- 안티고네' 라는 콘셉트로 연극을 하나 만들자고 제안해왔다. 안티고네의 귀족주의적 사고로 인한 민중의 희생. 역사적 주변인들의 목소리를 주체로 세워보자는 아이디어였는데 나는 제목을 제안받자마자 이참에 내 안의 어떤 불편한 덩이들을 끌어내보자는 생각을 품었다. 물론 나는 안티고네가 앵무새의 혀를 갖고 있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녀에게는 남성의 언술행위를 판 박은 듯 모방하는 데서 머무르지 않고 똑 똑한 여인들이 배제와 금지 속에서 내면의 길을 걷다보면 도달하게 되는 특유의 말하기 방식이 있다. 가부장제 아래서 명예남성처럼, 또는 현실지위 면에서 남성과 대등하게 사는 여성들은 하나의 정체성에 온전히 정착하지 못한다. 때문에 어떤 여자들은 광기와 분열의 언어를 선택하기도 하는 것인데 나의 경우는 더듬거림과 횡설수설과 주저와 반복을 지나 자기 성찰의 언어로 귀착됐다. 나는 이것을 옮겨 적기로 했다. 하나만은 아닌 목소리, 억압과 상실의 수만큼이나 많은 목소리를 담고자 했다. 순종하거나 저항하거나, 감내하거나 맞받아치거나, 조 롱하거나 분노하거나, 체념하거나 하는 목소리들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 성성을 긍정하고자 애쓰는 내 안의 목소리들이 안티고네를 빌어 말하고 있다. 여성주의적 해석 한편에서 '안티고네'는 유일하게 남성권력과 대응한 당찬 주체의 목소리를 갖고 있었다. 나는 한 가지 질문을 던지면서 <안티, 안티고네> 를 시작하려한다. '안티고네'의 언술행위는 정말 비극적인 영웅의 것인가? 인륜과 국법, 자연법과 실정법, 개인과 국가의 투쟁 등을 환기하는 텍스트인가? 이 목소리의 주체됨을 의심하는 까닭은 안티고네가 남성권력의 언어를 흡수하는 한편으로 '자매'를 배제함으로써 발생하게 되는 또 다른 비극을 막자는 것이다. 학생들과 만나고, 희곡을 쓰고, 평론 행위를 하는 나 자신에 대한 '주체'로서의 목소리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성찰할 것. 이것이 나의 <안티, 안티고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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