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지방 소도시, 남녀의 인연을 맺어주고 혼인을 관장하는 월하노인과 생명의 포태와
출산을 주재하는 삼신할미는 탁한 세상과 변해 가는 인심에 손을 놓아버리고,
시장통 한구석에서 고물이나 주우러 다니며 세월을 보내고 있다.
노인과 할미는 점집을 차려놓고서 사주팔자, 궁합 등을 보며 혹세무민하는 판수를 가장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판수는 '인생출발 상담소'라는 그럴듯한 간판을 걸어놓고 사람들을
위협, 부적을 쓰게 하여 먹고사는 위인인데, 혼인을 성사시키기보다는 주로 자기 이익에
눈이 어두워 다된 혼사를 깨곤 한다. 판수에게는 덕실이라는 과년한 딸이 하나 있다.
덕실은 디자인 학원을 다니며 프랑스 유학을 꿈꾸는 처녀이다.
시장 어귀, 순대와 김밥을 파는 금산댁에게는 눈먼 아들 호영이 있다. 장암 선고를 받은
금산댁은 자신이 죽으면 아들이 어찌될지 막막하기만 하다. 그래서 죽기 전에 마음 착한
색시와 짝을 맺어주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다. 삼신할미와 월하노인은 모처럼 연분다운
연분을 맺어줄 욕심으로 이 일에 개입한다.

삼신할미는 금산댁의 꿈에 나타나 개안수를 찾아 호영을 길떠나 보내라고 현몽하고
금산댁은 사례비를 걸고 길동무가 될 처녀를 구한다. 평소 금산댁의 재산에 침을 삼키던
판수의 주선으로 덕실은, 유학비용을 마련하겠다는 욕심에 이 일을 돕는다.
여기에 판수의 고향선배이자 지역신문 영업소장인 석숭이 금산댁의 재산을 탐내
개입하는데, 사실 그는 장기 매매 브로커였다. 여비를 빼돌려 프랑스로 도망가려던
덕실은 계획대로 호영을 버리고, 덕실이 달아난 사이에 호영은 석숭의 유인으로
납치돼 신장을 잃는다. 가책에 못 이겨 호영에게로 돌아온 덕실은 한발 늦게
이 사실을 알게되고, 덕실은 심한 자책감에 휩싸인다. 여행은 중단되고,
시장으로 돌아온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금산댁의 죽음이다.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지만 호영과 덕실 사이에는 사랑과 연민의 감정이 싹트고,
그들의 주변에서 열심히 삶을 꾸려오던 덕충과 미스 리, 그리고 노처녀 전도사 심순과
홀아비 판수 사이에 던져진 연분의 씨앗은 서서히 그 싹을 틔운다.
이것을 바라보던 월하노인과 삼신할미는 결국 인간의 의지와 노력만이 사람의 성장과
결실을 꽃피울 수 있음을 '이 풍진 세상의 노래'에 담아 부르며
또 다른 연분을 찾아 길을 떠난다.

극단 반딧불이 창단공연작 (1998. 8월) 문예회관대극장. 강영걸 연출.
제목에서 풍기는 뉘앙스만큼 낭만적이지만은 않은 작품이다.
어수선한 사회, 육체와 정신이 갈갈이 찢겨진 사람들,
준비되지 않은 채로 서구문명에 무작정 개방된 후
세상이 어수선해지기 시작하더니 근래에 들어서는 모든 일들이 순리대로
풀리지 않고 여기저기서 꼬이고 매듭지어져 피돌기가 잘못되고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저마다의 떼쓰는 소리로 목청이 높다.
정신의 황페와 육체의 파괴임을 도무지 모르체 한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이 망가지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 풍진 세상…’은 한국 현대 사회의 부조리를 예리하게 까발리며
그 원인이 서구문명에 대한 무분별하고 무비판적인 수용에 있다고 꼬집는
고발극에 가깝다. 연극엔 남녀의 인연을 맺어주고 혼인을 관장하는 월하노인,
생명의 포태와 출산을 주재하는 삼신할미가 등장해 우리가 잊어버리려는
우리말과 정서의 아름다움을, 귀함을 다시 돌아보고
인간 내면의 본질, 순수, 진실을 찾는 여정을 노래한다.
아주 작은 것까지라도 놓치지 말아야 할 때인 이유이다.
작품 "이 풍진 세상의 노래"는 이런 문제에 대한 해답을 아주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내고 있다.

말, 그 환(幻)에 취해서 - 장성희 작가의 글
<이 풍진 세상의 노래>를 쓸 때 나는 말의 풍요로움에 몸과 마음이 들려 있었다.
판소리와 무가 등 말의 힘과 위안이 무장 무장한 우리 연극의 원형에 한없이
매혹되어 있었던 것이다. 내 연극의 스승들이 보여 준 그 곰살거리는 우리말의 호흡을
흉내내고 싶기도 했다. 그리고 삶 속에서 만난 사람들의 사연, 심성, 한숨, 말씨를
붙잡아 무대 위에 올려보고 싶었다.
말은 실재의 환()에 불과할지도 모르는데 나는 왜 이렇게 집착하는가?
이 집착으로부터 놓여나려면 나는 이 말에 대한 애착을 극한까지 밀고가야 하는가?
아니면 말 이전의, 또는 말을 넘어선 다른 연극을 꿈꿔야 하는가?
대사가 요즘 어법과 참 다르다고 힘겨워하면서도 애써준 젊은 배우들,
햇애기에 불과한 연륜 짧은 작가를 만나 마다 않고 공들여주신 어른들
글이 말이 되도록 생기 불어넣어 주신 연출 선생님, 그리고 극단 반딧불이의 첫 꽁지
빛을 돋을 수 있도록 인연 맺어준 연극의 신령님 고맙습니다.
탁하고 눅진 세상, 반딧불이처럼 차고 맑은 빛 되라는 뜻으로 새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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