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카무라 쿠로, 막산의 다른 이름이다.
얼굴에 검은 페인트 흔적이 있는 그는 조선 까마귀라고도 불린다.
그는 도쿄 대학에서 한 귀퉁이에 정원을 만들고 튤립을 기르는 일을 한다.
그곳에서 매일 '쥬리프'를 기다린다.
쥬리프는 동양척식주식회사 보사에서 일하고 있는 아버지 야마토와,
쥬리프를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에리코와 함께 살고 있다.
이 집안의 가정부 미호는 쥬리프의 학교 생활을 염탐하여 에리코에게 전달한다.
어느 날, 쥬리프가 쿠로를 집으로 초대하고,
쿠로는 튤립 화분을 들고 삼나무로 만든 고풍스러운 이 집으로 찾아오는데…….

1920년대 말, 격동의 시대. 전쟁과 폭력이 일상이 된 세계 속에서,
한 가족과 한 개인의 삶이 서서히 무너져 간다.
<튤립>은 겉으로 드러난 사건보다, 그 이면에서 조용히 진행되는
파괴에 집중하는 작품이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선택한 행동, 더 나은 삶을 꿈꾸며 내린 결정들.
그러나 그 선택들은 결국 인간을 더 깊은 균열로 밀어 넣는다.
작품 속 인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구조 속에서 개인의 선택은 점점 무력해지고, 관계는 왜곡되며,
가족은 더 이상 안전한 공간으로 남지 못한다.
이 작품은 묻는다. 폭력은 어디서 시작되는가.
그리고 그것은 어떻게 인간의 내면까지 파고드는가.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일상처럼 보이지만, 그 아래에서는 이미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다. 침묵과 외면, 그리고 반복되는 선택 속에서 인간은 조금씩 변해간다.

연극성과 문학성을 동시에 증명해 온 작가, 김도영
김도영 작가는 <왕서개 이야기>, <금조 이야기>, <붉은 낙엽> 등을 통해 역사와
개인의 관계를 집요하게 탐구해 온 극작가로, 이 <튤립>에서는 전쟁과 식민지라는
거대한 구조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파괴되고 변형되는지를 밀도 있게 그려낸다.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으로 선정되어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전인철 연출로 초연된 이 작품은, 무대 위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작품성과
연극성을 동시에 입증했다. 이 관계는, 존재했던 적이 있었을까?
이 작품은 인간이 어떤 상황에서 무너지고, 무엇을 잃어가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그리고 끝내 남는 질문은 하나다.
이 모든 것은 정말 피할 수 없는 일이었는가.

작가의 글 - 김도영
극단 돌파구로부터 신작에 대한 의뢰를 받은 것은 2년 전의 일이다. 한 번도 만난 일이 없었던 단체로부터의 작품 의뢰가 신기하기도 했고, 조심스럽기도 하던 때였다. 이제야 고백하건대, 무엇보다도 두려웠다.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내가 얼마나 만족할만 한 이야기를 써낼 수 있는지... '튤립 재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때마침 한예종 전문사의 막학기에 재학 중이었으므로, 나는 이 작품을 숙제를 하는 마음으로 써내려갔다. 그리고 졸업작품으로 제출하기도 하였다. 아마 그 무렵, 글을 다루는 직업에 대해 참 고민이 많았던 것 같다. 작가라는 직업에서 느끼는 막막함과 더불어 30대 후반을 보내고, 이렇게 40대를 맞이해야는가에 대한 의기소침. '튤립'은 그런 나에게 스스로 조금 씩 심어주는 희망과도 같았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작품을 쓰는 것이 좋을까, 하는 고민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간 한국의 근현대사를 배경 삼은 작품들을 써왔으며, 그것이 내가 좋 아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극단 측에서도 작품의 소재나 방향 성에 대한 어떠한 제약도 주지 않았으므로, 나는 감사히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아 잠시 떠돌았을 뿐이다. 처음부터 '튤립'이 강하게 들어왔다. 혹시 일제강점기 동안 '동양척식주식회사'에서 펼친, 소위 그들의 국책사업에 수출과 관련된 일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고, 그것이 한때 광풍을 몰고 온 '튤립'일 순 없을까 생각했다. 물론, 일본이 조선의 논밭을 갈아 엎고 튤립을 재배해 외국에 팔았다... 라는 식의 허구는 너무 나간 것이 아닌가 생각하며 되돌아왔다. 이렇듯 머릿속에 '튤립' 한 송이를 심어두고 방향성을 모색하던 중 지금과 같은 <튤립>이 탄생하게 된 셈이다.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이야기를 주된 소재로 삼을 순 없었지만, '내선일체'를 이야기의 깊은 뿌리로 끌고 왔다. 그리고 그 위에 조금도 아름답지 않은, 그런 튤립 밭을 만들어 나갔다. 초고를 의뢰 받은 지 2년이 지난 지금, 그때 했던 고민은 여전히 유효하며, 아직 나에게 재배가 완료된 것은 없다. 그저 한 작품, 한 작품 완성해 나갈 때마다 미약하게나마 아주 조금씩, 조금씩.
끝으로, 나는 <튤립>의 대사 한 줄을 인용하며 작가의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훌륭한 정원사일수록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걸 다룰 줄 알아야 하니까요."
정원사와 작가는 여러모로 참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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