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명환 '하이타이'

clint 2026. 4. 7. 05:23

 

 

텍사스주 알링턴의 해태 세탁소 주인장 이씨(Mr. Lee)는 20년째 메이저리그 
텍사스 레인저스의 홈구장 옆에서 세탁소를 운영 중이다. 
20년간 레인저스 유니폼의 세탁을 도맡았던 이씨가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소식을 
접한 구단은, 그에게 월드시리즈 시구를 제의하며 감사를 표한다. 
미국에서의 마지막 밤, 세탁소로 모여든 동네 주민들과 야구단 사람들. 
시끌벅적한 가운데 대한민국 프로야구 역사를 다큐멘터리로 제작 중이라는 
방송사 피디와 작가가 찾아왔지만, 이씨는 이들의 방문이 썩 달갑지만은 않다. 
이씨는 호루라기 하나로 해태 타이거즈의 응원을 진두지 취했던 지난날을 
돌이켜보며, 광주 시민으로 살아온 자신의 이야기를 찬찬히 꺼내는데....

 



1982년 3월 27일. 해태제과 소속의 이씨는 부산으로 향하고 있다. 
그날은 프로야구 원년 개막일. 해태 타이거즈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사내 응원단장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맡은 이씨는 
부산 구덕경기장 3루측 단상 위에서 호루라기를 부르며 난생처음 보는 
응원을 진두지휘한다.
그는 그 이후로 해태 타이거즈의 호루라기 아저씨라 불리기 시작했고, 
그렇게 대한민국 프로야구 최초의 응원단장이 탄생하게 됐다.
1980년 5월 이후로 광주 시민들의 유일한 낙과도 같았던 해태 타이거즈.
이씨는 광주 시민들의 행복을 위해 매일 저녁을 목이 터져라 노래하고 
손뼉을 쳤지만....

 



5.18 이후 광주의 시민들은 야구장 밖에서는 모일 수도 구호를 외칠 수도 없었다.
응원가 '목포의 눈물'은 상대팀에게 장송곡이었고,
해태의 검빨 유니폼은 그야말로 저승사자의 모습이었다.
가을야구 한국시리즈에서 해태는 질 수 없었다.
하이타이는 가을의 전설이었다!
가을의 전설, 그리고 그 무대를 이끌었던 응원단장 이만식.
모노드라마로 배우 김필이 열연한다. 연출 최병로.

제목 '하이타이'는 해태(HAITAI)의 미국 간판을 현지 발음으로 붙인 것이다.

 




추천의 글 - 이민영(경북대 강사)
역사의 상처를 봉합하는 방법, 그 함성과 침묵의 기록

1980년 5월 광주의 비극 이후, 신군부는 국민들의 관심을 정치에서 돌리기 위해 프로야구를 출범시켰다. 역설적이게도 이 정책으로 탄생한 해태 타이거즈는 광주시민들에게 강력한 심리적 보루가 되었다. 정치적 발언이 금기시되던 엄혹한 분위기에서도 야구장에서만은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희곡은 광주의 고통과 부채감을 야구장의 함성으로 승화시킨 해태 타이거즈의 초대 응원단장 이만식의 이야기를 그린 모노드라마이다. 작가는 1인극의 형식을 통해 광주를 겪은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내면을 입체적으로 표현한다. 텍사스의 세탁소에서 낡은 유니폼을 빨고 수선하는 만식의 모습은 가족을 잃은 슬픔을 씻어내고 상처를 회복하는 심리적 정화 과정을 보여준다. 배우의 1인 다역 연기는 만식의 서사와 실제 역사를 맞물리게 하는데 효과적으로 활용되며, 스크린에 투사되는 영상과 다큐멘터리 카메라가 포착한 클로즈업된 만식의 얼굴도 비극을 증언하는 장치로 활용된다. 이를 통해 관객은 카메라를 향해 독백하는 만식의 곁에서 그저 구경꾼이 아니라 그의 증언을 들어주는 친구이자 목격자가 된다. 작품에서 가장 역동적인 부분은 응원의 함성으로 가득 찬 야구장 장면이다. 만식의 호루라기 소리와 응원가 '목포의 눈물', 각종 구호가 뒤섞인 야구장의 함성은 유일한 해방구인 그곳에서만 내뱉을 수 있는 고통에 찬 절규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진정한 의도는 소리가 멈추는 Pause의 순간에 드러난다. 말하기를 멈추는 만식의 모습에서 무엇을 끝내 말하지 않고 있는가"에 귀 기울이게 되기 때문이다. 
머나먼 이국땅, 세탁소의 마지막 밤은 더 이상 고립된 슬픔의 시공간이 아니다. 역사의 상처를 묵묵히 봉합해온 만식은 이제 텍사스 이웃들이 건네는 온기를 품고 앞으로 나아간다. 월드시리즈 마운드 위에 울려 퍼진 호루라기 소리는 과거의 절규가 아닌, 내일을 향한 희망의 신호이다. 이 뜨겁고도 쓸쓸하며 마침내 마음 한켠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이만식의 과거와 현재의 기록을 역사의 상처에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당신들에게 권해 본다. 

 


작가의 글 - 김명환
<하이타이>는 2017년 국립극단 작가의 방 시리즈의 대본개발 사업을 시작으로 같은 해 12월 전막 낭독공연, 2019년 1월 두산아트랩 전막 쇼케이스를 거친 후 그간 작·연출을 병행해 오던 전례에서 벗어나 2022년 7월 최병로 연출님을 초빙해 초연에 이르게 되었다. 또한 본 작품의 남독공연부터 함께해 온 김필 배우님의 존재 역시 '하이타이'를 기억하는 가장 중요한 이름으로 남겨지길 바란다.
연극을 그만두고 싶어 집필한 '하이타이'였다. 무대공연을 계속해야 할 이유는 물론 삶의 의미조차 잃어버린 때가 있었다. 작은 다락방에서 '그게 아니다. 왜 내 얘기는 듣지 않는가. 제발 내 얘기도 들어달라는 감정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그것이 글자로 남겨졌을 뿐이다. 돌이켜보면 작품을 위한 글쓰기보다는 죽지 않고 살기 위해 선택한 솔직한 몸짓에 가까웠다. 
행동했다. '하이타이'를 남기고 연극계를 떠났다. 거대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미디어, AI시장 실무를 경험하며 전혀 다른 생존의 언어와 구조 속에서 시간을 보냈고, 그 과정은 연극 또한 낯선 거리에서 바라보게 하였다. 어느 날인가 '하이타이' 무대 리허설 중인 극장 객석에 앉아 지난 시간을 돌아보다, 첫 지문을 쓰며 나름의 '작의'를 적어 두었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그럼에도 살아남을 가치 있지 않을까? 이 세상

그러나 끝내 설명하지 말자. 구원이나 해석 따위 하지 말자.
남겨진 공백을 견디는 태도, 언젠가는
글로 지은 세상에서 사는 아름다움도 꿈꿔본다.
'하이타이'의 이만식이라는 인물처럼 떠났기에 깨달은 것 세상 그 무엇이 인간을 대신하더라도 인간이 온전히 인간으로서 남겨질 수 있는 건 바로 내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던 연극이었구나, 연극을 그만두기 위해 쓰기 시작한 작품이 사실 다시 펜을 들게 하기 위한 과거의 내가 지금 나에게 남겨둔 '삶을 견뎌내는 태도와 위로'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다시 펜을 들었고, 행복하다. 

 


김명환 프로필
연극 작/ '하이타이', '개똥벌레', '유랑', '너는 빛이 되어 우주를 둥둥',

'굳이 아름다운 색이 아니어도', '태평성대', '동화씨 커피 좋아하세요'
연극 각색/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새벽4시의 안티고네', '데미안', '만리장성'
뮤지컬 작/ '너에게 빛의 속도로 간다'
뮤지컬 각색/ '완득이', '사랑은 비를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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