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늦은 봄 밤, 길을 잃은 세 영혼이 우연히 놀이터에 모여든다.
한때 화려한 카바레 제비였으나 이제는 비닐 천막에 사는 노숙자 김주연,
연이은 사법고시 실패의 중압감을 못 이기고 집을 나온 고시중,
가수를 꿈꾸는 변두리 술집 종업원 수은이 그들이다.
이른바 사회적 루저로 불릴 법한 세 인물은 한바탕 술판을 벌이며 서로 싸우고
욕하고 웃고 노래한다. 거친 삶 속에서 각자의 상처와 후회를 털어놓는 이들은
서로에게 위로이자 상처가 되며 다시 살아갈 이유를 더듬어 간다.

작품은 삶의 변두리에 선 세 인물의 하룻밤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되묻는다.
전직 카바레 제비 출신 노숙자, 사법고시 실패의 중압감에 집을 떠난 고시중,
가수를 꿈꾸는 수은은 우연히 놀이터에서 마주친다. 각자의 상처와 후회를
털어놓는 과정에서 이들은 서로에게 위로가 되면서도 또 다른 상처가 된다.
불완전한 삶의 자리에서 다시 살아갈 이유를 찾으려는 몸부림은 무겁지만,
특유의 유머와 시적 이미지가 더해지며 웃음과 사색을 동시에 전한다.

제62회 동아연극상 희곡상을 수상한 권영준 작가의 초기작인 <블루 초코 블루스>.
화려한 도심의 불빛이 닿지 않는 달동네 놀이터를 배경으로, 삶의 변두리에 선
인물들이 벌이는 하룻밤의 소동을 그린다. 작품의 부제는 '배우를 위한 연습곡'이다.
권영준 작가는 20년 전, 연기자가 자신의 역량을 가늠하고 마음껏 기량을 펼칠 수 있는
소품을 쓰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 작품을 집필했다.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유머와
시적 이미지가 교차하는 장면들이 작품 특유의 씁쓸한 웃음을 만들어낸다.
극의 배경이 놀이터인 이유 역시 삶을 하나의 '놀이'로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과
맞닿아 있다. 목적이 있든 없든 결국 살아가야 하는 존재로서의 인간. 놀이터에서
벌어지는 이들의 옥신각신은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각자의 꿈과 희망의 기억이 스며있다. 답답한 현실 속에서 서로를 비추는 이들의 모습은
어느 순간 우리의 삶과도 겹쳐진다. 윤광진 연출.

전직 카바레 ‘제비’ 출신 노숙자 김주연은 욕망의 대상에서 사회적 폐기로 전락하는 몸의 서사를 체현하는 인물이다. 그의 존재는 도시 자본주의가 인간을 어떻게 소비하고 버리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고시중은 제도적 성공 서사의 이면을 드러낸다. 사법고시라는 좁은 통로를 통과하지 못한 그는 실패 이후의 삶을 설계하지 못한 채, 사회적 좌표를 상실한 존재로 남는다. 수은은 미래를 꿈꾸는 인물이지만, 그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하며 불안정하다. 그의 희망은 희망 그 자체라기보다, 불안을 지연시키는 또 하나의 장치처럼 기능한다. 이 세 인물의 관계는 흔히 기대되는 ‘치유’나 ‘연대’의 서사로 수렴되지 않는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반복해서 어긋나고, 위로는 때로 또 다른 상처로 되돌아온다. 그러나 이 작품이 주목하는 것은 그 실패 자체가 아니라, 실패에도 불구하고 지속되는 관계의 시도다. 완전한 이해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끝내 말을 건네고 귀를 기울이는 행위, 이 불완전한 몸짓이야말로 이 연극이 제안하는 가장 현실적인 윤리다. 이 점에서 연극 블루 초코 블루스는 연대를 낭만화하지 않으면서도, 그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 드문 균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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