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연은 열린 판에 해당하는 '혼돈'을 시작으로 '축원' '초혼' '땅울림' '푸리'로
이어지며 뒤판 <상생 비나리 '99>로 끝맺는다.

2차 세계대전, 월남전, 한국전쟁, 4·19혁명 등 20세기 세계사와
한국사의 중요 사건들이 영상으로 바춰진다.
이어 하늘을 향한 제관의 정결한 축문과 함께 무너와 제의의 무리들이 등장,
남과 북이 만나고 동과 서가 화합하는 상생의 세계를 기원한다.
제관의 축문 낭송과 무리들이 선보이는 정형화된 한국 춤사위에서 탈피한
자유스런 몸짓이다. 현대적인 한판 굿임을 암시한다.
제관의 부름에 따라 조상신들이 등장해 나라의 안녕을 비는 나라굿을 하고,
순간 이를 방해하는 역신들이 나타나면서 본격적인 볼거리가 펼쳐진다.
9명의 남성 무용수들이 펼치는 역신들의 춤은 압권이다.
반복되는 한쪽 팔에 힘을 실어 위로 향하게 하는 동작은 역신들의 반항적인
이미지를 통일적으로 가시화 시키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선이 굵은 춤은
선신과 악신의 다툼에 이어 선보이는 지전을 든 4명 무녀들의 빠른 춤과
왕무당의 절제된 춤과 대비를 이루면서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제관이 등장해 신목을 향해 감사와 축복의 제의굿을 펼치고,
이어 굿판이 벌어진다. 뒤판인 '상생-비나리'는 관객과의 적극적인 교감을 시도한다.
관객들은 무대위에서 벌어지는 동물춤을 보고 떡을 전해 받으며
흥겨운 화해의 굿판에 동참한다.

<상생-비나리 '99> 이 작품은 춤이 주도하는 퍼포먼스 굿판이다.
서울예술단이 새롭게 탈바꿈하여 뮤지컬 '바리'에 이어 새로운 공연예술 양식 창출을
표방하며 발표한 가무악 공연은 종래의 가무악 공연과는 확연히 차별성을 보인다.
서울예술단이 공연한 가무악 <상생(生)-비나리 '99>은 제목부터 관심을 끈다.
가무악이란 노래와 춤과 음악을 일컫는다. 그것 자체가 하나의 독립 예술장르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가무악은 '가무악 일체'란 말과 함께 이 세 가지가 어우러진
공연 형태로 쓰이기도 한다. 1986년 창단한 서울예술단이 뮤지컬 단체와 무용단체로
이원화되어 운영되면서 대개 1년에 두 차례 갖는 무용단의 정기공연 중 한 차례는
가무악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러나 그동안의 서울예술단 가무악 공연은 국수호가
안무한 '풍물놀이, 춤'의 경우 8명의 연회자들이 직접 악기 연주도 하고, 춤도 주는
공연형태를 보여준 것 빼고는 사물놀이 위주에 춤이 가미된 소극적인 형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서울 예술단은 이 가무악을 새로운 예술장르의 한 형태로 만드는
것을 표방했고, 이를 위해 창단이래 처음으로 상설 공연을 시도했다.

‘상생-비나리 99’는 굿의 형식을 현대적 무대예술로 발전시킨 작품이다.
즉, 음악과 춤이 결합된 한국적 뮤지컬의 형태에다 첨단 영상, 재즈연주나
마당놀이의 즉흥성까지 결합시켜 ‘토털 퍼포먼스’의 성격이다.
먼저 극의 도입부로 일그러진 문명의 역사가 그려지는 ‘혼돈’에선 원시 지구의
모습과 20세기 현대사가 1백장면의 영상으로 보여진다.
3대의 영사기와 극장의 정면, 측면, 천장 등을 스크린으로 활용하는 영상쇼를
방불케 한다. 이어 무질서를 다스리려는 ‘축원’, 신시(神市)의 탄생을 그린 ‘초혼’,
단군신의 현현과 역신들과의 투쟁을 담은 ‘땅울림’, 원혼들을 달래는 ‘푸리’,
갈등을 해소한 화해를 노래하는 ‘상생’등 다섯 마당이 차례로 펼쳐진다.
이것이 기본 플롯이지만 극은 음악, 춤, 내레이션 등으로 변화무쌍하게 바뀐다.
비나리, 경기 도당굿의 무속장단, 아악, 동해안 별신굿의 푸너리 장단, 시나위 장단 등
전통 음악과 뮤지컬적인 아리아와 합창, 전통 춤사위를 토대로 역동적인 동작을
이끌어낸 검무 등이 입체적으로 한데 어우러진다.

구히서가 대본을, 원일이 음악을 손인영이 안무를, 장수동이 연출을 맡은
<상생-비나리 '99>는 타 예술 장르와의 결합을 적극 시도하고 있는 점,
과거와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점, 그리고 대중성보다는
예술성을 염두 어둔 작업이란 점이 그 동안의 가무악 작업과는 차별성을 보였다.
국립국악원 우면당의 조명은 그리 밝지 않았다. 객석 통로 4군데에 솟대가 서 있고
무대 위에서는 향이 타고 있었다. 뒤쪽 객석에 앉자 극장이 아니라 어떤 의식을
치르는 공간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주 약하게 서주부의 음악이 들렸다.
움직임을 곁들인 무용수들이 객석 중앙과 우측에서 등장해 무대 위로 올라갔다.
공연은 으레 무대 위에서 시작되는 것이라는데 방식을 탈피한 시도였다.

강강술래의 동선을 변형 시킨 여인들의 춤과 남성들의 징 춤도 반전된 분위기에
일조한다. 전체적으로 음악적인 구성은 종래 사물놀이 위주에서 벗어나 궁중음악과
구음, 그리고 전자음악 등을 다양하게 접목시켜 훨씬 표현력을 확장했다.
무용의 경우도 종래 한국의 민속춤 위주에서 벗어나 현대무용에 가까운 동작과
한 섹션 안에서 빠른 춤과 느린 춤을 대비시킨다. 이런 공연에서 흔히 사용되는
빠르고 큰 동작보다 오히려 전체적으로 절제된 움직임은 다른 여러 가지 요소들이
80분 남짓 동안 분주하게 전개되는 것을 상쇄시키는 효과도 얻고 있었다.
의상의 경우도 종래에 별반 변화를 주지 않고 1시간 이상 끌어왔던 것에 비해
등장인물들의 역할에 따라 각기 다른 의상을 착용해 메시지 전달에 힘을 보탰다.
가무악이라는 새로운 공연형태를 표방하면서, 서울예술단이 전통적인 기도의 형식,
제의의 형식인 비나리를 차용한 점에서 이 공연은 주최측이 내건 현대적인 의미의
새로운 굿에 근접하고 있다. 서울예술단의 이 공연은 그동안의 가무악 작업과는
상당한 차별성을 보이면서 퍼포먼스로서의 예술적인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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