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 부두에 상륙하는 우리 연변 동포들의 처절한 몸부림으로 막이 오른다.
그들은 빨리 5,000불을 벌어 용정으로 돌아가 아담한 불고기 집을 차리는 것이다.
따뜻한 동포애를 기대했던 그들에게 서울은 오히려 낯선 타국보다 더 냉담했으며
윤리의 황폐와 물질만능의 사회적 모순 등이 여과기 없이 그들에게 빨려 들어간다.
그들은 '윤동주사상 실천선양회'라는 엉터리 사기집단을 만들고 그 대표로 서경수를 세워
그들 사업 목적에 따라 적절하게 윤동주를 들먹인다. 연변동포들은 그들의 단결을 위해 -
1.윤동주 기념도서관 건립기금을 기필코 달성하기 위해 매달 십일조를 바친다.
2. 모든 행동은 서울 방식을 규범으로 한다. 3. 돈은 모든것에 우선한다. -는 원칙을 세우고
백화점의 수입 재고품 판매를 위한 상술에 합세하여 서글픈 무대를 오르내리며 차츰
그들이 원칙으로 하는 '서울방식'에 익숙해져 간다. 그리고 몰래 연변에서 가져온 한약재를
팔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거래가 한약재 유통구조의 혼란을 야기했다는 이유로 내몰린다.
도시의 냉대를 잠시 접고 서로 등 토닥일 수 있는 공간이라곤 이제 닭장 같은 그들의 집밖에
남지 않았다. 서울 생활에 어느정도 익숙해져 가는 그들은 '한국의 산에 여우가 없다. 여우를
발견하는 이에게 500만원의 상금을 준다'는 소리에 현혹되어 만주의 여우를 가져와 한몫
챙기기로 결심하고, 그 판로를 위해 수입동물 거래처의 사모님을 찾아가 계약을 체결한다.

'윤동주사상실천선양회' 회원들은 점차 자신이 살기 위해선 다른 이를 밟고 서야 한다는
시대의 원리를 터득하게 된다. 그러나 이들의 여우사냥 계획은 사모님의 죽음으로 그 방향을
잃게 되고 생계책으로 돈 벌기 위해 장기매매업자로 나선다. 조국에 의해 버려진 이가
결국 그의 조국에 되새김해 놓는 슬픔들과 다시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도망치는
귀순용사, 그리고 우리의 모습인 연변동포들... 이렇게 그들의 하루하루는 체류기간이
끝나가면서 더욱 악랄해지면서도 그렇게 변해버린 서로의 모습에 가슴아파 한다.
중국으로 여우가 도착하고 염소목장주 공관규와 결혼하기 위해 북간도 용정처녀 남순이
여우수입상자에 숨어 밀입국, 우리들의 마음을 갈라놓는 명분이 혼란을 초래하지만
연변처녀들은 용정에서 보낸 여우와 남순을 빼돌린다. 일본인들에 의해 용정으로 쫓겨난
조상의 후손들이 이젠 우리 대신 일본인들 앞에서 일본 노래를 불러 돈을 벌고 있다.
조선족들도 더 거칠어지고 악랄해지고, 변해가는 서로의 모습에 가슴 아파한다.
그들의 상처난 가슴을 어루만져 주는 것은, 극적으로 들어온 만주 여우,
그리고 여우 상자에 숨어온 북간도 처녀 용순이다.

연변동포들의 눈을 통해본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 오태석 특유의 익살과 재담으로
한바탕 풀어헤친 이 작품은 오태석의 작품의 큰 줄기의 하나인 '오늘의 현실을
초현실적 더듬이로 재조명한 작품'군에 속하는 작품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더 설명적이고 더 사실적인 구성이기는 하나 그의 비약과 기상천외함은 이전의
그의 작품이 주는 '난데없는 감동'을 곳곳에 숨기고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굳이 구분하자면- 중국교포인 경수와 6명의 연변처자들.
그들의 시각이 작품을 통틀어 관통하고 있어 그들의 주변에 등장했다 퇴장하는
흑염소장수, 사모님, 취조원, 백화점 판촉과장, 귀순동포, 재일동포, 네팔노동자 등은
우리 사회를 꿰맞추는 퍼즐의 조각들이다. 이해할 수없이도 하다가 잘못 맞추기도
하고 그러다가 이 퍼즐은 통 끝나지 않는 게임이라는 것을 선언하는 작가의
메시지로 작품은 끝난다.

여우가 없어졌다는 말듣고... 오태석 작가의 글
우리 산에 여우가 없습니다. 이는 우리 童話가 사라졌다는 말이 됩니다. 우리 아이들한테 들려줄 무서웁고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모든 꿈과 환상을 우리가 치워버린 겁니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입니다. 무엇이 그리 바쁘고 무엇이 그리 소중했기로, 우리 山川에 저 황금빛 나고 총명하여 우리를 한없이 홀리면서 물레를 자아내듯 밤새 길고 긴 사연 재미지고 절묘하게 엮어주던 그 사랑스런 네 발 짐승을 싹 쓸어 버렸던가요. 여기서 더 이상 우리와 더불어 희노애락을 같이하면서 지내던 저 들짐승, 날짐승, 바닷고기, 山川草木을 죽이지 말아야 겠습니다. 앞으로는 저들을 눈여겨 보고 저들의 몸짓, 저들의 소리를 듣고 저들한테서 지혜를 얻는 가운데 우리 아이들의 삶이 기름지도록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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