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이비 종교인이 경영하는 천지복지원에 한 노인이 피신해 들어온다.
이 노인은 복지원장과는 동향이며 1.4후퇴때 함경도 영흥에서 월남한 죽마고우다.
그간 인쇄소와 출판사를 경영하여 재산도 모았으나 말년에 이르러 그의 가정은
재산상속의 문제 때문에 분쟁에 휘말린다. 노인은 자기와 동향인 이성계를 좋아해
이성계에 관한 책을 무수히 출판해 이성계에 관해선 모르는 것이 없다고 자인해 왔다.
어느 날 노인은 복지원에서 자기가 이성계라고 선언해 주위를 놀라게한다
그는 이성계처럼 행세한다. 복지원장은 고민 끝에 환상에 빠진 친구의 행복을 위해
그에게 복지원에 들어와있던 전직 배우들을 보낸다. 이성계를 공부한 이 배우들은
그 노인을 이성계인양 일상생활을 그와 같이 한다. 이 배우 중에 38번이란는 청년이
있다. 과거 기억을 송두리채 잊은 38번은 줄곧 자기의 정체성를 찾으려 고민해왔다.

어느 날 밤 38번은 복지원으로부터 탈출을 시도하다가 들켜 호되게 체벌을 받는다.
충격을 받아 38번의 머리에 그의 과거가 되살아난다. 배반과 비겁으로 얼룩진 그의
과거에 절망을 느껴 그는 이성계처럼 미친 척한다. 38번은 이성계의 충신되어 오히려
배우들을 놀라게 한다. 이성계가 복지원에 있는 동안에도 그의 후처와 서자들은
한없이 재산을 쟁탈하기 위해 그를 괴롭힌다. 38번은 앞장서 그들과 싸움을 한다.
이러는 사이 노인과 38번은 서로가 실성한 것처럼 행동한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가혹한 현실에서 살 수 없는 사람들의 유일한 도피처는 환상세계일 뿐이다.
그들은 이 환상세계도 본인의 마음에 따라 현실이 될 수도 있다고 믿는다.
우여곡절 끝에 노인은 지병 때문에 죽음을 당한다. 한 노인의 죽음이 아니라 위대한
이성계의 죽음인 것이다. 복지원의 경영은 파탄에 빠져 문 닫게 된다. 복지원의
배우들도 떠난다. 그러나 38번은 미친 척하며 자기는 정도전이라고 우긴다.
써야 할 글이 너무나 많다는 것. 홀로 남아 있는 38번 앞에 젊은 남녀가 나타난다.
배우들이다. 앞서 떠난 배우들이 이성계를 모셨듯이 젊은 남녀도 정도전을 모시러
온 것이다. 새 원장의 부탁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성계의 부동산’은 노인과 38번이라는 극 중의 두 인물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보다는
물신주의가 팽배하는 우리 현실을 꾸짖고 있다. 비극적 현실의 도피처인 환상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과 정체성을, 재물에 대한 가족들의 물욕적 현실을 역사적 환상과
충돌시켜 그 환상을 통해 비정한 현실의 본질을 드러내고있다.
이 작품은 본래 공연작과 많이 달랐지만 김동원이 이것을 은퇴공연으로 정하면서
작가 이근삼은 이성계를 단지 희극적인 인물 그 이상의 인물로 만들었고 12명의
등장인물을 국립극단 전 단원이 출연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그 결과 마치 작가가
김동원의 은퇴를 기념하기 위해 집필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의 작품이 된 것이다.
이성계가 서울로 천도함으로써 조선조 최초의 부동산 투기자가 된 것을 연극제목으로
삼은 것이다. 그러나 극의 초점은 부동산과 그로 인한 가족과의 재산 싸움을 테마로
하는 사회풍자극이 아니라 괴로운 현실을 이성계에 대한 몽상으로 도피하다가 결국은
진짜 왕이 되어버린다는, 현실과 환상의 관계로 옮겨져 있다.
그래서 극은 한 왕의 죽음, 한 배우의 퇴장이라는 페이소스가 더욱 짙다.
이 같은 페이소스는 대단원의 막이 내리기 전 전 출연자들이 김동원 은퇴에 바쳐
새로 작곡된 ‘그대 배우되어’를 합창할 때 무대에서 아직도 젊음을 잃지 않은
김동원 선생의 눈물어린 눈자위를 보면서 그 절정에 달한다.

왕으로 죽은 그의 종장은 상징적으로 그가 한국 연극배우의 왕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심어 놓는다. … 이성계는 역사상의 이성계가 아니라 현실 생활 속에
만들어진 극중극의 왕 이성계이다. 김동원은 가장 극적으로 극중극의 왕으로
변신하면서 현실 속의 부동산에 관련된 세속적인 탐욕과 맞선다.…
이 연극에서 보여주는 핵심은 현실과 역사를 혼돈시키면서 스스로 이성계가 되게끔
유도해 나간 연극적 틀이며, 김동원 스스로도 부동산 자산가 노인 행세보다
이성계와의 동화쪽에 훨씬 많은 무게를 두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럴 것이다, 부동산 자산가 노인 행세는 연극적 형상으로서는 별로 의미가 없다.
그러나 역사적 인물인 이성계는 연극적으로 두드러지는 각광을 받는다.
왕으로서의 경륜과 품위가 비록 극장 무대라는 허구의 진리일 망정 연극으로
일생을 보낸 김동원에게는 가장 적합한 보상의 대명사가 될 것이다.

그렇게 하여 <이성계의 부동산>이라는 현실고발의 작품에서 그는 현실적인
삶의 반영으로서의 추악한 부동산 관련 사건에서 벗어나 상상의 세계에서
끝내 왕으로서의 임종을 맞는다. 이성계라는 별명을 지녔던 한 노인이 상상의 세계,
극장 무대라는 허구의 세계에서 극중극을 통해 이성계가 되고
조선조 태조왕이 되어 임종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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