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연이 시작되면 여러 개의 난타용 대북의 웅장한 두드림으로 해서 전쟁 장면을
연상시킨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두 장수 맥베스와 뱅코우가 아들 맥다프를
데리고 등장해 승리의 기쁨을 나누며 상대에게 전쟁에서의 용전분투를 치하한다.
두 장군은 도총관이 되리라는 기대감과 함께 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되었으면
하는 야심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정면의 문이 양쪽으로 열리면 임금의 어전(御殿)이 공개되고, 전쟁과 국가의
위기를 아랑곳하지 않는 임금 덩컨 여러 미녀들과 즐기며 환락에 빠져있고,
왕세자는 부왕의 추태를 말리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여기에 승전보가 도착하니, 임금은 전승한 장군 맥베스와 뱅코우를 맞이한다.
목숨 바쳐 나라를 구한 두 장수로서는 덩컨의 모습과 행태에 분노한다.
덩컨은 두 장군에게 각각 동, 서 도총관의 2인자 자리를 준다.
그리고 오늘은 맥베스 도총관의 집에 유숙하겠노라고 한다.
맥베스는 임금을 여러 명분을 들어 살해하기로 결심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긴다.
그리고 임금의 자리에 오른다. 축하연에는 북청사자놀이가 연출된다.
시대를 불문하고 정적이면 반드시 처치하듯 맥베스도 뱅코우를 처단한다.
뱅코우의 아들 플리언스는 황급히 피신을 한다. 맥베스는 왕좌등극 축하잔치에서
선왕과 뱅코우의 망령을 대하고, 일말의 양심과 정신적 혼란을 극복하지 못하고
광란한다. 신하들은 모두 자리를 떠난다.

한편 뱅코우의 아들 플리언스는 왕통을 제대로 잇도록 하려고 의병 수만을
모집한 후 선왕의 세자를 찾아간다. 그런데 세자는 선왕과 마찬가지로 주색에 빠진
모습에 절망한다. 비통한 마음으로 플리언스는 칼을 뽑아 자신을 찌르려자
이 모습을 본 기생이 재빨리 칼을 막아 그의 자결을 막는다. 세자가 드디어
본마음을 드러내며 플리언스에게 다가가 신뢰한다는 뜻을 피력한다.
드디어 세자와 플리언스의 결속이 이루어진다. 곧 맥베스를 치러 출정한다.
맥베스의 어전에 반군이 침입했음을 알린다. 광란에 빠진 맥베스는 광기를 주체
못하고 측근에게까지 칼을 휘두른다. 난타 대북 연주 팀이 등장해 전쟁장면을
실제와 방불한 두드림으로 나타내고, 반군이 어전까지 진격을 하고,
세자와 플리언스가 위풍당당하게 등장하니 맥베스는 스스로 자결한다.
완권을 잡은 맬컴이 플리언스를 제거하려는데, 모두 물리치고, 맬컴을 죽인다.
결국 플리언스가 대권을 잡게 되는 것이다.

<두드려라 맥베스>는 2012년 서양고전을 한국연희로 풀어보자는 취지하에 만들어진 공연이라 한다. 맥베스의 기본적인 극의 틀만 가져간 채 전통연희를 활용해 장면을 구성함으로써 관객에게 드라마와 즐길 거리 두 가지 모두를 제공한다. 극 시작 전쟁을 표현하기 위해 “진군”을 외치며 바퀴가 달린 북을 가지고 칼군무를 선보인 장면으로 시작해, 사자놀음, 검무 같은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보던 장면을 무대에서 실연된다. 연희 장면들은 기생들, 시종, 암살자 등 장면에 따라 다양한 역할로 등장하는 코러스 배우 분들이 연기하는데 그 실력이 수준급이라 생동감이 넘쳤다.
<두드려라 맥베스>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많은 공연을 했다. 아시테지연극제, 우즈베키스탄국립극단 공식초청공연, 프랑스 아비뇽오프페스티벌, 카메룬·앙골라<아프리카2개국 투어>등 2014년부터 국내와 세계 각국을 돌며 공연되었다. 아마도 그 이유엔 우리의 전통 리듬과 악기, 춤 등이 결합된 연희라는 장르가 한몫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두드려라, 맥베스!’는 권력을 향한 맥베스의 붉은 눈을 통해 현대인들의 끝없는 욕망과 어리석음을 표현한 작품이다. 극단 해를보는마음에서 안경모 재구성, 황준형 연출로 공연했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현대적 관점으로 재해석해 한국화시킨 작품으로 원작에 나오는 세 마녀도, 레이디 맥베스도 안나오며 마녀의 예언에 나오는 버남의 숲이 움직이고 여자의 분만으로 나온 자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란 내용도 없이 한국화된 의상과 음악, 타악기들로 채워진 무대로 외국에서도 호평받은 작품이다.

맥베스를 재구성하며 - 안경모
우리는 맥베스를 악한 욕망에 사로잡힌 악한이고 레이디 맥베스를 그가 부추기는 악녀로만 그려내지 않을 것이다. 악한과 악녀의 파멸과 반성에는 우리의 감정이 이입되지 않으며, 징악(懲惡)이라는 교훈극이 목표도 아니기 때문이다. 맥베스의 욕망은 스스로에게도 우리에게도 정당하고 온당한 것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맥베스의 욕망을 권력에 탐닉한 욕망에서 전장을 벗어나고자 애쓰는 정당한 생존 욕망으로 전환하고자 한다. 마치 생존각축에서 벗어나려고 권력에 달려드는 현대의 소시민들처럼. 혼돈은 한층 더해질 것이다. 생존 욕망으로 시작된 것이지만, 살해와 찬탈이라는 윤리적 시험대 위에 올라야하며, 만끽한 권력에 스스로 취해 버리지만 동시에 공포에 떨어야한다. 실로 가련한 영혼이다. (또한 가련의 순환을 그려내기 위해, 원작에서 흐려진 플리언스(뱅코우의 아들)를 부각시켜 찬탈의 반복을 암시하고자 한다.)
또한 우리는 맥베스를 초현실적인 존재인 마녀에 의해 조종당한 수동적 인간으로만 그리지 않을 것이다. 중세적인 관념인 마녀는 현대적으론 자기 환영과 자기 환청에 다름 아니다. 예언이 내려지고 예언이 실행되며 그 손바닥에서 놀아나는 인간이 아니라, 자기 결핍 과 자기 갈망이 환영으로 환청으로 자기 분열로 점층되는 인간의 극한적인 심리를 그려내 고자 한다. 따라서 마녀는 맥베스의 무의식이자 잠재의식이고 꿈이며 자기 욕망의 반영이 된다. 즉 마녀는 맥베스 자신인 것이다. 더불어 우리는 맥베스를 타악으로 풀어가고자 한다. 붉은 영혼을 부르는 소리이고, 영혼에 다가가기 위한 두드림이다. 심장의 박동이자 생존의 울림이다. 전장(戰場)에서는 군령과 대결로, 왕궁에서는 평온과 천세의 기원으로, 사가(私家)에서는 놀이와 비나리로 끝없이 변모하며 삶과 욕망을 두드린다. 그리하여 "두드려라. 맥베스!"가 된다. 또한 우리는 맥베스를 한국적인 색채로 그려내고자 한다. 우리말은 우리 호흡에서 오고, 우리 호흡은 우리 박으로 이어지며, 우리 박은 우리 몸짓으로 펼쳐진다. '서양 고전의 한 국화'가 표제적인 모색만으로 그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두드림이 우리의 호흡에서 출발 하여 우리의 말과 우리의 몸짓으로 이어내길 목표로 한다.

안경모(1971~)는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와 용인대 연극영화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원 연출과 전문사 출신으로 현재 극동대학교 교수다. 2006년 제27회 서울연극제 인기상 <내일은 천국에서> 연출, 2007년 한국연극 베스트7 <해무(海霧)> 연출, 2010 <늙은 자전거>, 2011 <살>, <해무>, 2012 <그리고 또 하루>, 2013 <천개의 기억>, 2014 <조씨 고아> 극본 2015 <무협활극 조씨 고아> 극본, 2016 <장수상회>, 2018 <찰리 찰리> <바람 불어 별이 흔들릴 때>를 연출한 장래가 기대되는 연출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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