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동아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임용 준비를 오래 해온 동준은 대형 냉장창고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매니저 효정은 냄새에 매우 민감하여 냉장창고 안에서 나지 말아야 할 ‘
썩는 냄새’를 잘 맡는다. 실수가 잦은 직원 치수의 체취까지 문제 삼는다.
동준은 효정의 요구에 따라 유통기한을 확인하고 포장 방식을 익히며 일을
배워가는 한편, 효정처럼 치수에게서 냄새를 맡지 못한다.
퇴근 후, 동준은 집으로 찾아온 아버지 성곤과 마주한다. 성곤은 집의 냄새,
지저분한 생활, 신발 상태 등을 지적하기도 하고, 요즘 취업이 어렵다며 위로도
하며 동준을 바로잡아보려 한다. 동준의 신발이 걱정돼 돈을 쥐어 주려 하지만,
동준은 아버지의 말 대부분을 자신이 부족하다는 비난으로 받아들이고 만다.
성곤은 동준의 집을 떠나기 전, 집에서 냄새가 난다고 말한다. 동준은 자신에게는
냄새 따위 나지 않는다며 발끈한다.
다시 작업장. 동준, 치수와 일하는 동안, 치수가 스스로를 잘못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을 듣는다. 묘하게 치수가 하는 말들이, 동준의 마음을 읽어낸 것만 같아
동준의 내면을 건드린다. 업무가 끝난 치수가 나간 후, 효정이 들어와 치수의 냄새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한다. 효정은 동준을 상대로 치수에게 말하듯
시뮬레이션을 해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효정이 치수에게 던지려는 말들은
동준의 아버지가 동준에게 했던 말들과 유사하다. 동준은 그것이 자신을 향한
말처럼 느껴져 자신의 냄새를 맡아본다.
그러나 그 순간 치수가 등장해 노무사 시험에 합격했고 오늘까지만 일한다고
밝힌다. 효정은 놀라 축하하고, 치수는 동준에게도 응원을 남기고 퇴사한다.
치수가 떠나자 냄새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남고, 동준은 자신에게서 냄새가
나는지 다시 확인해본다.
5년 후. 동준은 이제 임용고시 준비를 완전히 그만두고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매니저로 진급하기 위해, 점장이 된 효정에게 부탁도 한다. 그런데 효정은, 새로
들어온 직원 규하에게서 냄새가 난다고 말한다. 동준은 자신의 냄새를 먼저
맡아보며, 이곳에선 안 나는 냄새도 난다고 말한다. 곧 효정이 쉬러 나가고,
창고로 들어온 직원 규하. 썩은 식품이 포함되었다며, 포장된 상품이 둘에게
되돌아온다. 청어가 썩었다는 알림을 확인한 동준. 청어를 빼고 다시 넣으라고
하는데, 규하는 청어를 직접 확인해보고 “너무 신선해서 나는 냄새”라고 설명한다.
동준은 규하의 말을 듣고, 규하에게 여기서 계속 같이 일하자고 제안한다.

심사평: 최진아 작가, 장우재 연출가
특정 직업 세계에서 나타나는 사회적 갈등, 주술, 사기, 어린 등장인물, 가정폭력, 청년, 노인, 따라붙는 과거, 시스템 혼란, 미래 공포 등 붕괴하는 ‘인간다움’을 다시 찾아보려는 몸부림은 더욱 다양해졌다. 그런데 특기할 만한 흐름이 있었다. 첫째, 소재를 풀어내는 방식이 점점 장르화되어 간다는 것. 문제는 결국 장르를 얼마만큼 ‘자기만의’ 어법으로 승화시키느냐일 것이며 이는 여전히 피할 수 없는 숙제다. 둘째, 가상 세계 소재가 많아지고 그것이 추상화되어 간다는 것. 셋째, SF 설정이 더욱 ‘현재’로 내려왔다. 이제 SF라서 신기한 건 없다. 여전히 ‘그래서 뭐?’가 요구된다. 아직 인공지능(AI)과 휴머노이드에 대한 빤한 설정이 있긴 하지만 많은 작품들이 설정에 짓눌리지 않고 ‘할 말’을 드러내 고무적이었다.
올해는 응모 편수도 많아지고 당선권 안에 든 작품도 스무 편 정도 되었다. 이즈음 다시 신춘문예가 단막극 공모임을 되새겨본다. 단막은 길이의 문제라기보다 부분으로 전체를 표현하려는 제유법적 속성이 강하다. 그때 작가의 통찰이 빛난다. 그 힘으로 작가는 오래갈 수 있다 믿는다. 최종적으로 심사위원들은 ‘기억 속에서 우리’, ‘you‘re…’, ‘바나나 스플릿’, ‘일장춘몽’ 등에 집중했다. 그리고 ‘창고에선 신선도 유지’에 의견을 모았다. 당선작은 무엇보다 앞서 언급한 단막에서 기대하는 바가 탁월하고, 또 ‘냄새’ 모티브로 관객의 연극적 상상력을 잘 확장했다.

당선소감 - 박혜겸
‘창고에선 신선도 유지’의 동준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말을 찾아 헤맨 사람입니다. 동준이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믿고, 찾아가길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 방황이 자신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길 바랐습니다. 세상이 그런 가능성이 있는 곳이라고 믿고 싶었습니다. 그런 동준을 통해 누구에게든 말을 걸어보고 싶었습니다. 저는 못된 말을 잘합니다. 누군가 가장 아플 말을 냉정하게 내뱉습니다. 그런 방식으로 너무 오래 저를 사랑해준 사람들을 아프게 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말을 찾아 헤매는 동안, 수차례 함께 길을 잃어주신 엄마에게, 아빠에게 감사합니다. 어디든 길이 있으면 큰 소리로 제 이름을 부르느라 닳아버린 목소리에 겨우 대답할 수 있게 되어 다행입니다. 딱따구리란 별명을 가질 만큼 말이 많았던 유년의 저에게 언제나 응답해 주었던 세정 할머니, 무뚝뚝한 사람의 애정이 무엇인지 알려주었던 재학 할아버지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방황 끝에 길이 있을 거라고 응원해 주신 정승진 작가님, 박지선 작가님, 손순미 시인님 감사합니다. 이 작품을 가능하게 한 모든 장면과 친구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달싹이다 겨우 한마디를 건넨 순간의 용기를 잃지 않겠습니다. 어디선가 계속되고 있을 동준의 삶을 응원하기를 멈추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매번 목이 쉬는 길을 택하겠습니다. 그곳이 어느 외딴곳의 냉장창고라도 말입니다.
△1998년 부산 출생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졸업,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입학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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