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한국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심사평 - 심사위원 김명화, 정진새
희곡을 쓴다는 행위는 전환기에 놓여 있다. 희곡은 점점 소수화되고, 무대라는 현실 조건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장르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놓여 있지만, 동시에 어떤 이야기든 희곡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 또한 열려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새로운 시도를 낳기도 하지만, 특정한 서사 구조와 정서, 문제의식이 반복되는 '패턴화'라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올해 135편의 투고작들 가운데 적지 않은 수의 원고가 내용과 형식, 주제와 설정, 도입부에 이르기까지 유사한 경향을 보였다. 무난하게 중반까지는 읽히지만, 이후에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세계를 보고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남기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이야기는 이전보다 더욱 개별화되었으나, 그 개별성 속에서 고유한 개성이나 작가적 태도는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 일부 작품에서는 작가가 스스로 약자의 위치를 자처하며 연민에 머물거나, 자명한 약자성만으로 세계를 설명하려는 태도 또한 반복되었다. 그 결과 극의 개연성과 핍진성이 확보되지 못한 경우도 적지 않았으며, 이유 없는 폭력과 적대, 증오가 극적 세계관의 전면에 놓인 작품들도 눈에 띄었다. 원작을 재가공하거나 스핀오프 방식으로 확장한 시도들은 흥미로웠으나, 원작의 그늘 뒤로 작가가 숨어버린 인상을 지우기 어려웠다.
전반적으로 하나의 경향으로 묶기 어려울 만큼 화제들이 다양했으나, 공통적으로 감지된 것은 '개인'의 발견이었다. 연극이 개인화되었다기보다는, 국가와 사회의 위기가 개인에게 전가된 현실이 희곡 안으로 유입되고 있다고 느껴졌다. 익명성과 몰개성을 자처한 개인은 무대 위에서 절규하고 호소하며 관객에게 이해와 공감을 요청한다. 그러나 이러한 바람은 세계에 대한 사유로 확장되기보다는 감정의 토로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고, 연극적 순간을 충분히 만들어내지 못했다. 주제는 분명하나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상황이야말로, 전환기에 놓인 희곡이 더욱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지점일 것이다. 본심에서는 'R에 관한 이야기', '실화를 바탕으로 함', '연인'을 중심으로 논의가 이루어졌다. 세 작품 모두 당장 공연으로 옮겨도 손색없는 완성도를 갖춘 희곡들이다. 최종적으로는 'R에 관한 이야기'와 '실화를 바탕으로 함'을 두고 오랜 토론을 거쳤다. 두 작품 모두 작가의 확고한 세계관 아래 인식과 의식 자체를 메타화하며, 장면의 점층적 진전을 통해 의미와 재미를 함께 성취한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투고된 희곡 중에서 가장 또렷한 변별력을 지닌 두 작품이기도 했다. 여러 차례의 다시읽기와 논의 끝에 '실화를 바탕으로 함'을 올해 한국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 당선작으로 정하였다. 'R에 관한 이야기'를 쓴 작가 또한 현장에서 꼭 보고 싶다는 바람을 전한다. 각자의 방식으로 전환기를 통과하고 있는 작가들에 건승과 건강을 빈다.

당선소감 - 김정민
아주 가까운 친구가 있습니다. 십오 년 전 처음 '이야기를 만든다'는 행위를 할 때 함께 있었고, 그렇게 만든 이야기들을 들어주었던 친구입니다. 그 이후 긴 시간 동안 세상에 나가지 못한 저의 이야기들은 그 친구가 들어준 덕분에 사라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모든 이야기는 들어줄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라는 본 작품 속 대사는 그런 경험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리고 지난해, 그 친구가 안타까운 사고로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제는 저의 이야기로 자기만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라고, 제 이야기가 더 멀리 가볼 수 있도록 등을 떠밀어준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하늘에서 누구보다 기뻐해주고 있을 세오에게 가장 큰 영광을 돌립니다. 뭔가 더 멋진 말을 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했지만, 이 지면을 통해 감사한 분들께 마음을 전하는 것이 더 중요하게 느껴집니다. 텔레비전 속 상 받는 사람들을 보며 '누군지도 모를 이름들을 왜 저렇게 불러대나' 하고 생각한 적이 많았지만, 막상 이런 기회가 오니 저 역시 같은 마음이 되네요. (반성합니다.) '소중한 사람들에 대한 마음은 전할 수 있을 때 전하자'는 것 역시 그 친구가 떠나며 제게 알려준 교훈이기도 합니다. 먼저 언제나 좋은 이야기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고, 그래서 평가의 객관성에 늘 의구심을 갖게 하지만, 그런 무조건적인 믿음 덕분에 또 계속 쓸 수 있는 힘을 주는 지현. 그리고 두세 시간씩 붙잡고 이야기에 대해 물고 늘어질 때에도 늘 함께 고민해주고, 이번 작품에 대해서도 치열하게 의견을 나눠주었던 최고의 배우 상현. 둘에게는 조금 더 특별한 사랑과 감사를 전합니다. 덕분에 글쓰기가 고통스럽지 않고 즐겁습니다. 무슨 짓을 하고 다니든 항상 묵묵하게 지켜봐주시는 부모님, 좋은 작품은 좋은 인격에서 나온다는 것을 보여주시며 제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게 해주시는 어바웃필름 성환 대표님, 인생의 동료로서 외롭지 않게 곁을 지켜주는 도일, 작업의 동지로서 함께 열정을 불태워준 또 다른 최고의 배우 지훈, 그리고 소식을 듣고 기꺼운 축하를 보내주신 이모와 이모부, 친구 재영과 정민 등에게도 마음을 전합니다. 앞으로도 즐겁게 쓰겠습니다. 부족한 작품을 선정해주신 한국일보와 심사위원 여러분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1990년 서울 출생
△고려대 심리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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