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희곡 부문 심사평- 임선옥·평론가, 오경택·연출가
문학은 역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195편의 신춘문예 응모작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한다. 작품들은 오늘의 주요 관심사, 사회 현상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많은 작품이 예년보다 더 개인과 일상에 집중했고, AI와 로봇이 삶 속 깊숙이 들어오며 나타나는 불안과 공포를 다양하게 그려냈다. 거의 모든 작품에 죽음과 절망과 두려움과 불신이 넘쳐흐르는 현상은 우리 사회의 암울한 감정 지표를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대다수 작품이 소재와 아이디어를 표면에 펼쳐놓은 정도에 그치고 있어 아쉬웠다.
본심에는 ‘밤이 지는 날’, ‘사람들은 왜 아이를 버릴까요’, ‘익명의 원칙’ 세 작품이 올랐다. ‘밤이 지는 날’은 주인공이 어린 시절 친족에게 당한 성폭행과 결혼 후 딸이 자신의 남편에게 당한 성폭행을 중첩시키며 주인공의 불행했던 삶을 이야기하지만, 두 성폭행 사건을 한 작품에 담기에는 무리가 있었고, 결말도 감상적이었다. ‘사람들은 왜 아이를 버릴까요’는 자신의 아이를 버린 엄마를 변호하는 변호사의 이야기이다. 법학에서 말하는 ‘내심과 표시의 불일치’를 통해 인물의 윤리적 딜레마를 심도 있게 다루기는 하나, 극의 전개가 추진력을 얻지 못하고 문제 제기에만 그친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익명의 원칙’은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전직 종군기자의 상담을 통해 타인의 고통에 무의식적 선긋기를 하는 방관자들에게 보내는 이야기다. 작품은 익명으로 상담사와 상담하는 과정에서 원칙을 내세우며 행했던 결과에 대한 죄책감이 어떻게 전이되는지 극적으로 보여주며, 읽는 이에게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을 하게 한다. 심사위원들은 세 작품 중에서, 작품의 연극성과 극적 전개의 설득력과 질문의 확장성을 갖춘 ‘익명의 원칙’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당선자에게 축하의 마음을 전하며 더욱 좋은 작품으로 만나길 기대한다.

당선소감 - 이한주
먼저 제가 어떤 길을 선택하고 나아가든 늘 뒤에서 지켜봐 준 제 가족들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제가 진로를 정하지 못할 때 같이 고민해 주신 고3 담임 선생님과 어설픈 글밖에 쓰지 못하던 저를 지금까지 잘 지도해 주신 명지전문대 문예창작과 교수님들께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에게 글을 쓰는 것은 지금의 제 삶과는 또 다른 인생을 여러 번 사는 것과 같았습니다. 제가 아직 겪지 못한 감정과 저에게 닥치지 않은 사건들을 겪는 인물들에 몰입하며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어린 시절부터 저만의 놀이였습니다. 그 놀이로 시작된 것이 이렇게 점차 발전하며 신춘문예 당선이라는 결과로 다가온 것이 기적이라고 느껴집니다. 투고하기 위해 우편봉투에 원고를 넣으면서도 큰 기대는 감히 갖지 못했습니다. 그저 한 해 한 해 계속 도전하는 것 자체를 의미가 있다고 여기며 보낸 저의 글이 선택받았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이른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제 희곡은 크게는 직업 원칙과 보편적 윤리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요 몇 해 사이에 폭력이 더욱 몸집을 키우는 것이 느껴지는 요즘이기에, 폭력의 주체나 전쟁의 양상 말고도 그 큰 몸집인 괴물의 그림자에 가려진 한 명의 피해자를 그려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피해자를 안타까워하지만 한편으론 내 일이 아니라며 한 걸음 뒤에서 바라보는 무기명은 저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자신을 투영해볼 수 있는 인물 같습니다. 무기명은 결국 참상을 막지도, 죄책감을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했지만, 어쩌면 무기명과 진의 얘기를 듣고 죄책감도 알게 된 익명은 다른 길을 걸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결국 하나일 것 같습니다. 이 희곡이 제 손에서 나온 마지막 작품이 아니라 첫 시작이 되는 작품이 되도록, 앞으로도 수없이 다양한 인생들이 담기는 글을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04년 출생
-명지전문대 문예창작과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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