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년쨰 같은 회사를 다니고 있는 자연은 무료한 일상을 벗어 나고자
조소교실에 나가게 된다. 여기서 영미를 만난다.
처음에는 건조하게 대사만 진행 되다가 침묵도 같이 지나간다.
자연이 노래를 듣자고 하면서 스마튼폰으로 Armando Manzanero(feat.
Café Quijano)의 Esperaré를 튼다. 화면에 가사가 흐른다.
그리고 영미가 기쁜듯, 감격한듯 좋아하고 둘은 친해진다.

영미는 이 조소실이 있는 조그만 빌당주이다.
자연이 금수저라고 묻자, 동수저라고 말한다.
영미의 ‘지나친’ 마음이 결국 첫 사랑니의 통증과 함께 상징적으로 터져 나온다.
이들은 자신이 사랑을 ‘감추고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보여주고 있는,
역설적인 사랑의 주체들이다.
The Beach Boys의 ‘kokomo’ 라는 노래에 맞춰 같이 춤도 춘다.
극의 마지막 장, 두 사람은 (건물주 영미 덕분에) 옥상 문을 열고 나간다.
현실과 환상의 소리가 겹친다. 정전으로 인해 어두워진 공간에 있던 두 사람이,
햇빛이 있는 바깥으로 나가면 ‘실제로 두 사람이 나눴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는’
녹음된 대화가 들려온다.
“넌 어슬렁거리면서 내게로 와”

연극 <어슬렁>은 코로나19로 인해 휴강이 된 줄 모르고 학원에 온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나 친구가 되어가는, 섬세하고 따뜻한 이야기다.
당시 대면 만남이 제한되던 시절, 작가 설유진은 닫힌 마음에 부드러운 감각을
불어넣고자 이 작품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연극은 두 명의 배우가 작은 공간에서 소통하는 내밀한 과정을 섬세하고
밀도 있게 보여준다. 조소 학원을 배경으로 낯선 두 사람이 각자 두상을 만들면서
‘어슬렁거리며’ 서로에게 다가가는 과정이 공간, 음악, 조명 등의 계산된 연출로
관객에게 정서적으로 ‘어슬렁거리듯’ 스며들게 하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한다.
사람을 만난다는 것, 얼굴을 직접 본다는 것, 서로가 서로를 조금씩 알게 되고
소중한 존재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설레는 일이라는 것을 이 작품은 일깨워준다.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이호영 '포말’ (2) | 2026.01.01 |
|---|---|
| 이한주 '익명의 원칙' (1) | 2026.01.01 |
| 뮤지컬 '아리송하네요' (1) | 2025.12.30 |
| 인형극 '소금인형' (1) | 2025.12.29 |
| 김광림 '맛동산은 안다' (1) | 2025.1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