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재구성 '트로이의 여인들'

clint 2025. 12. 30. 19:20

 

 

 

연극의 시작은 이미 트로이성이 그리스 연합군에 의해 함락되고 모든 남자는 
살해되었으며 여인들은 전쟁포로로 잡혀 그리스군 진영에 갇혀 있다. 
트로이의 여인들은 이제 그리스 군대에 노예로 끌려 가게 됐다. 
트로이를 함락시키는데 협조한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전쟁의 신 아테네는 
고국으로 돌아가는 그리스에게 트로이에서의 학살에 대한 대가로 폭풍우와 함께 
그들의 험난한 항해를 준비하게 된다. 그리스 군대에 대한 이들의 동정심이 
트로이의 함락과 더불어 사라진 것이다. 왕비였던 헤카베는 자신의 용맹스러웠던 
아들 헥토르를 전쟁에서 잃은 슬픔에 잠겨 있다. 그러나 이런 슬픔도 잠시 
예언 능력을 지닌 그의 딸 카산드라가 등장하여 신들로부터 영원한 처녀성을 
보장받은 자신이 적장 아가멤논의 위안부로 지명되었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또한 자신의 며느리인 안드로마케의 아들을 연합군이 뺏어 트로이성의 가장 
높은 망대에서 떨어뜨려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바로 시행한다.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된 헬레나 역시 포로로 잡혔으나 자신의 전 남편이었으며 
이제는 승전국 사령관 중의 한 사람인 메넬라오스를 만나게 된다. 메넬라오스는 
다시금 헬레나의 미모에 끌려 그녀를 자기 배에 태운다. 
바위덩이 위에 떨어져 산산이 부서진 자신의 손자의 주검을 거두기 위해 
헤카베와 출국을 거부한 몇몇 여인들만 남고 트로이의 여인들은 태운 마지막 
그리스 군대의 배가 멀리 떠나며 슬픔에 젖은 노래를 부를 때.... 
트로이는 그리스 연합군의 핵폭탄에 휩싸여 영원히 사라진다.

 



김창화가 재구성, 연출을 맡아 공연된 극단 가교의 <트로이의 여인들>은
상단부분 현대화된 작품이다. 일단 등장인물은 에우리피데스의 원작 그대로
나오지만 배경이 2차세계대전이 연상될 정도의 20세기의 한가운데쯤으로 보인다.
포로수용소로 보이는 이곳에 연합군은 칼이 아닌 총으로 무장했고 의상도 현대
것으로, 무엇보다도 시적인 대사가 아닌 일상 대화같은 간결하며 비극성을 잃지
않는 대화로 바꿨기에 그 분위기가 어렵지 않게 객석에 전달된다.
마지막에도 핵폭탄으로 트로이를 폭격하면서 끝난다.
전쟁에서 지면 모든 걸 잃게 되는 건 예나 지금이나 같고 특히 트로이의 여인들
몸소 그 피해를 감내해야하는 처지 역시 이 작품이 쓰여진 기원전이나 현재나
같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에우리피데스의 원작이나 현대화된 이 작품이나
바탕에 흐르는 주제는 동일하게 흘러가는 것 같다.

 



희랍비극을 오늘날의 무대로 옮기기 위한 작업 - 김창화 작. 연출
기원전 415년 3월 에우리피데스는 아테네에서 벌어진 디오니소스 연극제에서 당시 경연방식으로 공연되던 희랍극의 전통에 따라 3편의 비극과 1편의 풍자극으로 참가하여 2등賞을 받았다. 비극 <트로이의 여인들>은 이 가운데 마지막 작품으로 이 중 첫번째 공연작품인 <알렉산드로스>와 두 번째 공연작품인 <팔라메데스>는 다른 문헌에 기록된 것들과 조각난 파피루스에 기록된 것들을 종합하여 어느 정도의 윤곽만을 파악하고 있을 뿐이며 풍자극 <시지포스>는 지금까지 두 군데의 문헌에서 발견된 재인용을 통해 단지 내용에 관한 짐작만 가능할 뿐이다.  
기원전 490년과 480년 마라톤과 살라미스의 전투에서 승리한 그리스는 페르시아로부터의 끊임없는 침략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성장을 착실하게 이루었고 오늘날 희랍고전으로 잘 알려진 숱한 문화적 유산을 남기게 되었다. 그러나 에우리피데스가 <트로이의 여인들>을 공연하기 1년 전 여름 그리스의 도시국가인 아테네는 에게海의 섬 멜로스를 점령하게 되며 이탈리아의 시실리섬을 정벌하기 위한 계획에 몰두하게 되었다. 당시 아테네는 그리스 도시국가 가운데에서도 가장 막강한 주도권을 행사했으며 실제로 그리스 도시연합은 시실리섬 정복이후 분열되고 아테네의 주도권 행사는 끝나게 된다. <트로이의 여인들>은 기원전 1200년경 그리스 연합군에 의해 점령당한 트로이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실제 당시의 아테나인들에게는 스파르타인들의 고향인 멜로스섬의 정벌과 결코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트로이를 정벌하고 귀향하던 연합군의 군대가 신들의 벌을 받게 된 역사적 사실을 통해 당시 아테네 팽창정책에 대한 각성의 목소리로 들렸을 것이다. 흔히 <트로이의 여인들>을 전쟁에서 지고 난 뒤 모든 권리를 빼앗긴 여자들의 고통과 새로운 주인으로 군림하고자 하는 지배자인 남자들의 승리에 대한 보상의 요구라는 대립적 상황으로 파악하게 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에우리피데스는 이 작품을 통해 역사적 사실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 외에도 비극적 상태의 인물에 관한 뛰어난 심리묘사와 비극적 언어구사를 통해 단순한 고통의 외침을 뛰어넘어 인간의 목소리로 신에게까지 전해질 "공포와 연민의 정서를 표현하는데 성공했다. 이번에 극단 가교에서 공연하게 될 <트로이의 여인들은> 쿠르트 스타인만의 독일어 번역을 기초로 하여 한국의 관객들 이 희랍신화를 모르고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현대화하여 공연하고자 한다. 
<트로이의 여인들>을 현대화하고자 하는 작업은 이미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시도했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1965년 3월 10일 사르트르가 개작하여 파리에서 공연한 것과 발터 옌스가 1982년에 개작하여 1983 년 1월 함부르크에서 공연한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본인은 번안(歸案)이라는 의미 속에 이미 개작이나 각색의 영역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보다 더 적절한 용어의 선택과 이에 관한 일반론적 접근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싶고 이번 작업에 관계된 몇 가지 입장만 밝히고 자 한다. 
첫째, 희랍극의 구조와 역사적 배경 내지는 현대화의 과정에 이르는 문학사적 의미와 내용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하여 가능한 한 원전의 가치를 왜곡하거나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창조적일 수 있는 부분을 충분히 살려야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그러므로 이번 번안에서 주제로 삼은 것은 "전쟁으로 인해 희생당한 여인들"이었으며 그들의 "상황과 역사에 대한 적극적 의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둘째 <트로이의 여인들>을 현대적 시각으로 볼 수 있는 무대로서 “어떤 수용소"를 택했다. 이번 작품에서 점령군의 폭력에 관한 얘기가 많이 언급되는 것은 이러한 “감금된 상태”와 “통제”를 보여주기 위해서이며 그래서 "전쟁을 치른 어떤 나라"가 연극의 배경이 되고 구체적으로 "수용소에 갇혀진 여인들”이 무대 위에 나타나게 된다. 셋째, 신화적 구조와 비극적 언어를 “구체적 상황의 논리"와 "격렬한 감정의 표현"으로 옮겨보고자 했다. 그러므로 운문형태의 희랍비극이 지닌 언어적 특성을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에 있어서 설명형의 산문적 표현보다는 짧고 간결한 詩的 언어를 많이 활용하고자 했다. 현대인의 논리체계에 따르기 위한 원전의 줄거리로부터 이탈은 있었으나 원전에 나타난 인물의 성격에 대한 새로운 첨삭은 삼가했다. 함께 참여한 모든 연기자와 무대를 꾸미기 위해 준비한 동료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우리들의 작업이 어떻게 보여질까 궁금하다. 

 



에우리피데스(Euripides)
기원전 484년 살라미스에서 출생해 78세의 나이로 마케도니아에서 죽은 그리스의 3대비극작가 중의 한사람. 아이스킬로스나 소포클레스와 비교해 볼 때 에우리피데스는 당시 그리스의 도시정치와 무관했던 편이다. 그러므로 인해 그의 생애는 다른 두 명의 비극작가보다 덜 알려진 편이다. 에우리피데스는 총 92편의 희곡을 창작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그중 17편의 비극과 단 한편의 풍자극만 전해지고 있으며 17편의 비극 가운데 한편은 에우리피데스의 원작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그는 자신의 생애를 통해 모두 5번이나 “디오니소스 연극제"에서 최우수희곡작가로 선정된 바 있다. 특히 그는 아주 구체적이고 세밀한 표현을 통해 비극공연의 실제와 연극의 비극적 구조에 관한 전형을 이룬 극작가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러한 그의 극작술은 그가 활동하던 당시의 정치와 사회 그리고 인간들에 대한 회의적이고 절망적 인 시각으로 대변되고 있다. 그는 대화를 통한 희곡의 구조를 강조하였으며 변증법적 사고체계를 도입하여 세인들로부터 사이비 변론가(Sophist)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으나 코러스의 등장부분을 줄이고 등장인물들의 시적이며 음악적인 독백을 통해 인간들(특히 여자들)이 주관적 존재임을 확인시켰다. 또한 에우리피데스는 연극 속에서 과거의 이야기에 관한 비중과 가치를 대폭 줄이고 현재 존재하는 인물들의 생각과 행동을 통해 희곡이 과거에 발생한 사건에 대한 “결과적 인식의 종합"이 아니라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과의 "연극적 약속"을 이행해야 한다는 점을 확인시켰다. 그러므로 흔히 평자들은 그를 비극적 역사를 압축 요약한 "서극"의 창시자로 칭하고 있다. 
그리스의 신들에 대한 신뢰가 산산히 부서져가는 그의 비극들은 때로 잔혹함마저 담고 있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시학>에서 이러한 에우리피데스적 비극관을 "공포와 연민의 정"으로 묘사하여 그를 “비극적 작가"로 규정하였다. 에우리피데스는 그의 비극에서 당시 그리스 사회의 구성원들 가운데 "사회적 불균형"을 대변하던 노예들이나 미개한 상태의 그리스인에 대한 “정치적 문제"가 아닌 "사회적 질문"을 제기하였으며 사회문제에 관한 개인적인 관점을 중요하게 여겨 각 개인이 내면에 지니고 있는 "사회적 불만"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데 치중했다. 이러한 그의 희곡은 이미 로마시대의 세네카를 비롯해 프랑스 고전주의자인 코르네유와 라신을 통해 널리 알려졌으며 독일 계몽주의 시대와 독일 고전주의 시대에 이르러서도 괴테와 실러에게 깊은 영향을 끼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