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흑인 여인 난시가 법정의 최종심에서 사형을 선고 받는다.
자기가 가정부로 있던 집의 영아 살해에 관해 아무 해명도 없이 인정한 것이다.
사형은 4개월 후, 3월 13일로 정해졌다.
8년전. 극중 살해된 영아의 엄마 템플은 한때 사창가에 머무르게 되고
그곳에서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된다. 그녀가 사창가에 가게 된 것은 자신의
잘못이라고 자책하던 고완은 템플이 사창가에서 빠져나오자 그녀와 결혼한다.
둘 사이에는 두 아이가 생긴다. 템플은 사창가에서 함께 생활했던 흑인 창녀
난시를 집으로 데리고 와 가정부 겸 보모로 삼는다.
남편 고완은 그러나 아이들이 자신과 템플 사이의 자식이 아닐 것이라는
의혹을 갖는다. 결국 부부 사이에는 심한 균열이 온다.
난시는 더 큰 파국을 막기 위해 영아를 죽이고 모든 책임을 자신이 뒤짚어 쓴다.
처음에는 자기보호에만 급급하던 백인 상류층의 템플은 자신의 몰락가능성을
감수하고 난시 사면을 위한 과거 고백을 하게 된다.
그러나 사면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원제가 <어느 수녀를 위한 진혼곡>(Requiem for a nun)인
연극 <흑인 창녀를 위한 고백>은 윌리엄 포크너의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알베르 까뮈가 무대언어로 각색한 작품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세계적 문호인 두 작가 공동 작업으로 탄생한 이 작품은,
1956년 까뮈 연출로 프랑스에서 초연된 이후, 세계 각국에서 지속적으로
공연되어왔다. 한국에서는 극단 자유에서 1969년 초연되었고, 1978년 재공연,
2011년 또다시 김정옥 연출 100번째 기념으로 공연되었다.

과거에 얽매여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지 못하는 백인여성 템플과,
그녀의 딸을 어쩔 수 없이 살해하고 교수형을 선고받는 하녀 난시에
관한 이야기가 추리극 형식으로 펼쳐진다.
살해된 영아의 엄마가 교수형을 기다리는 흑인 보모를 어떻게 해서라도
구명해 보려는 모습을 그려낸다. 그 과정에서 이 백인 엄마의 '결코 잊혀지지 않고
사라져 버릴 수 없는' 과거가 하나씩 들춰지고
왜 보모가 6개월밖에 되지 않은 영아를 죽였는지가 밝혀진다.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사형언도를 받아들이는 난시와의 대면을 통해
템플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 과거의 무게와 과거의 현재성을 자각한다.
과거는 결코 과거가 아니라 현재라는고통스러운 인식과 함께 죄와 벌에 대한
정신적, 도덕적 성찰로 이어진다.
극중 템플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지만 이 작품의 경우 보모 난시의 영아 살해와 관련된
진실을 캐내려는 집념의 변호사 스티븐스와 템플의 남편 고완의 역할도 크게 부각된다.
특히 오로지 정의를 위해 난시를 구명하려는 스티븐스 변호사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그에 의해 템플이 난시를 구하기 위해 마음에 묻은 과거의 일을 고백할 수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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