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로르카 '피의 결혼' 김정옥 재구성

clint 2025. 11. 24. 06:32

 

 

프롤로그
동네처녀가 일어나 인형을 들고 혼인잔치에 대해 얘기한다. 
광대들 비극적 죽음의 내용을 암시. 죽음의 상징인 거지가 나타난다. 
죽은 사람들(사내, 신랑)에 대해 상징적으로 알린다. 
1장
이웃여자와 신랑의 어머니가 아들의 죽음에 대해 슬퍼한다.
신부가 신랑의 어머니에게 다른 사내와 도망친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
사내의 아내, 넋이 빠진 모습으로 남편의 죽음을 슬퍼한다.
사내들이 두 시체를 메고 등장, 혼백을 고이 저승으로 보내기 위한 염불한다.
시신을 강에 묻고 땅을 다지는 "평토제"가 시작된다.
광대들, 비극적 죽음에 대해 노래한다.

 



2장
신부와 유모가 혼인식 준비를 하고있다.
광대들, 혼인식 노래를 부른다.
신부의 옛애인이었던 사내가 나타나자 신부 갈등에 사로잡힌다. 
광대들, 혼인식 노래.
3장
함잡이 패가 나와 신부측에게 함을 판다.
거지패가 동냥을 하며 세태를 풍자한다.
가짜 신랑과 신부를 꾸며 신랑 다투는 촌극을 벌인다.
진짜 혼인식 거행, 신부와 신랑이 절을 한다.
결혼식이 끝나고 모두 인사를 하고 헤어진다.

 



4장
사내를 생각하고 있던 신부, 신랑이 다가가자 놀라는 표정.
사내와 신랑 사이에서 갈등에 사로잡힌다.
신랑의 어머니, 신랑에게 신부 다루는 법에 대해서 일러준다.
신부의 아버지와 하녀, 신부가 안보이자 찾아다니느라 우왕좌왕.
사내의 아내 급히 들어와
신부와 사내가 함께 도망간 것을 알리고 넋을 잃고 서 있다.

 



5장 
북소리.
막간의 분장실 장면
광대들, 그저 바라만 보고 눈치만 보는 현실을 풍자한다.
갑자기 세계 평화의 부조리에 대해 외친다.
광대패, 세상사쓸데없음을 한탄.
6장
광대들, 상복 입고 등장한 후 숲을 상징하며
흩어져서 도망간 사내와 신부의 행적에 대해 얘기한다.
달 등장, 앞으로 일어날 비극적 사건에 대해 암시. 
죽음의 상징인 거지,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끝내고
결투를 벌일 사내와 신랑을 기다린다.
신랑과 청년, 도망간 사내와 신부를 찾아다닌다.
거지와 만나게 된 신랑.
거지에 이끌려 죽음이 기다리는 곳으로 가게된다.
광대패들 죽음에 대한 암시를 노래한다.
도망치던 사내와 신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달과 거지 등장. 두 사내의 비명소리, 두 사람의 죽음을 상징한다.
광대들, 그들의 죽음과 비극적 종말에 대해 마무리를 한다.
죽음의 의식이 진행된다

 



로르카의 피의 결혼은 결혼 첫날밤을 맞은 신부가 유부남인 옛 애인과 
도주하고, 이를 추적하던 신랑이 피의 결투를 벌이다 
서로 죽이고 죽는 치정 살인극이다. 
로르카를 세계적인 극작가 반열에 올린 대표적 비극이다. 
스페인 내전 초기인 36년 정부군에 처형당한 진보적 성향의 작가 로르카는 
이 작품에서 내전의 비극을 예감이라도 한듯, 남편과 애인이 
서로 죽고 죽이는 것을 형제가 형제를 죽 였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이 단순한 줄거리의 배경에는 내란과 폭력으로 덧없이 희생되는 
스페인 남성들과 홀로 집을 지키며 아이를 키우는 스페인 여성들의 
한이 드리워져 있다.

 


스페인 작가 가르시아 로르카 원작인 <피의 결혼>은 극단 자유가 83년 처음으로 무대에 올린 뒤 85년 이 작품의 고향인 스페인 말라가 국제연극페스티벌에서 공연돼 서양연극을 한국적 전통으로 유려하게 녹였다는 호평을 받았던 작품이다. 
결혼식날 신부가 애인과 함께 도망가자 남편이 이들을 쫓아가 신부의 애인과 결투를 벌여 서로 죽는다는 내용의 피의 결혼에서 번역극의 냄새를 찾기란 불가능하다. 
한국판으로 재구성된 <피의 결혼>은 철저히 한국적 연극으로 다시 태어났다. 배우들은 한복을 입고 때론 창을 부르고, 함을 팔거나, 북을 치는 등 우리의 소재로 극을 재구성한 것이다. 배우들의 농익은 연기력이 가미된 이 작품은 간간이 마당놀이적인 재미도 더한다. 배우들은 객석을 돌며 한푼줍쇼하고 구걸하는가 하면, 성을 소재로 한 너스레가 툭툭 던져지기도 한다. 



재구성, 연출의 글 - 김정옥
한국 사람은 기질적으로 스페인 사람들과 유사한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배우가 스페인 사람을 연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다고 생각되었다. 플라멩코와 판소리는 뭔가 유사한 데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소리 창법으로 플라멩코를 부를 수 없고 역시 플라멩코 창법으로 판소리를 부를 수 없다. 우리 극단의 배우들, 한국의 배우들과 더불어 세계 최고의 피의結婚 무대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작품의 재구성과 배경을 한국으로 옮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의 이러한 시도가 부질없는 만용으로 끝나지 않을까, 스페인내전의 와중에 억울하게 총살당한 20세기 최대의 詩人이자 劇作家인 로르카를 모독하는 무대가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없지 않았다.
나의 구상은 두 개의 관점에 또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첫째는 로르카가 이 시대에 한국에 태어나서 <피의 結婚>을 썼다면 이렇게 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을 생각했고 둘째는 오늘 우리의 배우들이 이 작품을 읽고 한국 사람으로써 이 작품을 무대에 형상화 한다는 관점에서 생각해봤다. 
1984년의 <피의 結婚>의 세 번째 연출이자 단순한 연출이 아닌 재구성· 연출로 <피의 結婚>의 한국버전을 문예회관 대극장에 올렸다. 관객들은 반응은 성공적이었으나 평론가의 반응은 찬반이 반반이라는 느낌이었다. 찬사를 아끼지 않는 분들도 많았지만 침묵으로 대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