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말기 청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본은 우리 한국을 속국화를 가속화시켜 나갔다.
1900년초 가을 충청도지역의 의병을 토벌한다는 빌미로 왜군은 가옥을 불태우고
양민을 학살하고 우리의 아녀자들을 능욕하는 추악한 만행을 일삼았다.
충북제천 유생일가는 일본군을 피해 충주로 피난을 나섰으나
유생은 두 아이와 함께 일본군에게 무참히 죽음을 당하고 길이 엇갈린 마님과 아내는
유생의 소식을 살피러 간 몸종만 학수고대 기다린다.
의병의 연락 임무를 띤 소년 의병은 마님과 유생의 아내를 만나 유생과 두 아이의
죽음을 목격한 사실을 철저히 숨기며 어지러운 세상 탓을 서로의 잘못이라며
마님과 말다툼을 벌인다 유생과 두 아이의 시신을 농부인 두 모녀의 도움으로
정성스레 땅에 묻은 유생 아내의 몸종은 그 사실을 숨기며 늦게 도착하여
상전에게 심려를 끼친 벌로 심한 매질을 당한다. 농부의 아내는 왜군에게 겁탈 당한
딸을 더럽다며 질시하는 마님과 심한 언쟁 중 왜군의 접근으로 긴장이 고조된다.
유생의 아내 몸종은 상전을 위하여 왜병을 다른 곳으로 유인하고 죽음을 당하고
그 홧김에 농부의 딸은 유생과 두 아이가 죽은 사실을 얘기하고 그 충격으로
유생의 아내는 벼랑에 몸을 던져 죽고 만다.
청천내쪽에 숙영하는 왜군의 동정을 살핀 소년은 금수산 의병에게 봉화를 피워
위급함을 알리라 한후 급히 금수산을 향한다. 죽음을 무릅쓴 두 모녀는 봉화를
피워 금수산 의치봉에 이 사실을 알리고 왜군이 접근하자 마님은 자결하고
두 모녀는 왜병의 총격에 장렬한 죽음을 당한다

조선 말기는 우리나라 근대사의 시작이며, 우리 역사상 가장 파란 많았던
시대이기도 하다. 제국주의의 침입 전통왕조 사회의 붕괴 근대화 등 국내외의
큰 시련을 겪으며 근대사회로의 전환을 맞게 된 것이다.
청일전쟁과 노일전쟁을 몰고 온 일본과 러시아의 제국주의 정책으로 우리나라는
열강의 식민지 쟁탈장이 되었으며 이 두 전쟁의 결과로 1905년 한국은
일제의 보호국이 되었다. 여기에 농촌 경제의 파탄과 한말의 정치적 부패는
농민의 동요를 불러 일으켰으며, 보호조약이 체결되자 국민은 분노하여 희생이 큰
의병의 항일전을 확대시켜 나갔다. 이것은 대중의식의 고양으로 일어난 동란학 등
구한말의 민란(民乱)을 이어 받은 민중의 자기확인 및 민족의식의 고조와
민족역량의 향상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1907년은 1905년 보호조약 체결 후 1910년 한일합방으로
우리나라가 완전히 식민지 이전의 가장 의병들의 항일전이 치열하던 시기이다.
이 작품은 3장으로 되어 있는 작가 황석영의 최초의 희곡이다.
이 “산국(山菊)"에서도 양반보다 상민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봉기하고 행동한다.
모든 것을 오직 자결로서 끝맺는 무력한 양반이 아니라 스스로 행동하고 쓰러지는
천박한 백성들이야말로 산에 함부로 피어나는 山菊처럼 짙은 향기를 풍기는 것이다.
5명의 여자와 1명의 소년이 등장하는 이 극은 무심히 핀 山菊처럼
조용히 역사의 한 페이지를 펼쳐보인다.

-길고 긴 민족의 한을 잔잔한 흐름의 언어로 처리한 역사 뒤의 이야기-
'나는 가끔 시골길을 걷다가 헐벗은 황토의 야산이나 갈라진 바위, 그리고 동구 밖에 서있는 수백년 묵은 나무를 보면 가슴이 섬찟함을 느낀다.' 라고 황석영 씨는 산국의 이야기를 한다. 황 씨의 의식은 구한말의 이야기가 아닌 아직 까지도 끝없이 진행형으로 남아 있는 항일적 의미를 무대예술로서 형상화 하고자 했던 점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작품이 갖는-묘한 신비에 접할 수 있다. 동구 밖에 서 있는 수백 년 묵은 나무의 의미가 무엇인가! 역사일까? 긴 인습의 세월일까? 그것은 세월의 뒤로만 흐르고 있었던 손닿지 않는 곳에 놓여져 있는 원통함과 억울함이 모여져 언어를 잃은 우리들의 울분이 인내할 수밖에 없었던 표현이리라.
작가는 한 소년을 통해 우리 민족의 길고 슬픈 한 의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나타내주고 있다.
"우리 성님이 알지도 못하는 산속이나 개천에서 썩어져두 죽지 않는 거래유... 이런 싸움이 몇 백 년 갈지도 모른대유." 이는 황 작가가 산국을 통해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집약일 것이다. 산국은 한 시대를 스쳐지나 갔던 바람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 것은 분명히 아니다. 한 시대의 뒤안길에서 무수히 쓰러져간 가냘픈 꽃잎의 이야기가 안고 있는 한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 것이다. 남편과 아이를 잃은 며느리의 한, 왜병에게 몸을 바쳐 주인을 구하는 한 소녀의 한, 모두를 잃고도 반상의 범절을 버릴 수 없었던 시어머니의 한, 그렇다. 한의 이야기는 오늘날도 어느 이름 모를 산등성이에서 그렇게 피었다 져버리는 들꽃들의 이야기처럼 무수히 부딪쳐 오는 실상이 아닐까? 황석영은 "우리가 여전히 아무 손도 못쓰고 허둥지둥 하다가 이 땅의 흙이 되어진 뒤에도 저들은 여전히 남아서 있겠구나"라고 현실을 직시하는 아픔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들꽃처럼 스러져간 여인들의 한보다 오늘날의 절박하고 절실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 할 것인가? 사랑하는 여인아! 가을 국화꽃의 의미처럼 살다가 가자.

역사는 기록으로 고정되거나 박물관 유리 저편에 유물로 보존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한 개인의 과거도 그렇지만, 공동체의 운명으로서의 역사는 망각되어질 수 있는 기억이 아니라, 끊임없이 현재형으로 살아 있어야 하며 미래 투사적이 되어야 할 것이다. 더구나 굴욕과 오욕으로 점철된 얼룩진 굽이 일수록, 일상의 안락과 욕망으로 굳어있는 우리의 각피를 사납게 긁는 질문이 되어야 하는것이다. 구한말, 안으로 오백년 조선왕조를 지탱하던 유교적 가치관이 스스로의 모순을 드러내고, 밖으로는 서구 열강의 동양에 대한 욕망과 일제의 단계적 침략으로 극도의 혼란에 빠졌던 시기가 이 연극의 배경이 된다. 무너져가는 유교 윤리와 신분 질서의 잔영을 붙잡으려는 양반들과 새시대의 여명을 어렴풋이 자각하고 몸으로 부딪히던 평민들은, 일제라는 공동의 적을 맞이하여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저항하게 된다. 일본군의 무차별한 학살과 방화로 산으로 쫓겨난 반가의 고부와 그들의 여비, 평민의 모녀인 다섯 여자와 의병으로 나선 한 소년이 엮어내는 무대는, 우리의 아프고 부끄러운 상처를 오늘의 우리에게 생생하게 보여 주면서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든다는데 그 의의가 있다. '일본사람’이나 '일본인’보다는 ‘왜놈’이나 ‘쪽바리’라 부르는 편이 우리에게 훨씬 자연스러웠던 “일본”은 다시 우리 앞에 새로운 모습을 갖추고 새로운 형태의 질문으로 닥쳐들고 있다. 이 물결을 우리는 일방적인 구호나 감정으로 해소하기보다는 확고한 인식을 통한 지혜로운 극복으로 맞아야 할 것이다. "산국”의 무대는 우리의 역사에서 가장 아프고 부끄러웠던 시기의 이야기이기에 몇 잔의 커피와 엘리베이터의 욕망으로 굳어있는 오늘의 우리에게 부단히 되물어야 하는 질문이 되는 것이다.

여자와 미소년이라는 상징적 인물들의 피난길에서 겪는 에피소드와
삶에 대한 끊임없는 갈망이 보여진다. 그 당시 우리민족의 고통과 애환을
나타내 주었으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다시금 민족의 뿌리를
대뇌이게 하는 작품이다. 극단 여인극장에서 초연했고,
여자 5명에 소년1명이라는 배역으로 인해
여대와 여고 등에서도 많이 공연되어지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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