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아이라 레빈 '쿠크 박사의 정원'

clint 2025. 11. 10. 04:48

 

 

젊은 의사 짐은 오랜만에 고향 마을 ‘그린필드센터’를 찾아 어릴 때부터

자신을 귀여워해주던 쿠크 박사와 재회의 기쁨을 나눈다. 쿠크 박사는

마을 사람 모두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는 마을의 정신적 지주 같은 의사다.

짐은 박사가 왕진을 간 사이 우연히 마을 사람들의 진료기록을 들여다보다

최근 사망한 몇몇 사람의 이름 옆에 쓰인 수수께끼 같은 'R' 이란 기호를 발견한다.

게다가 하나의 커다란 정원이 손질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윽고 의문사가 없고 범죄자가 없으며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그린필드센터의 비밀이 오싹하게 드러난다.

 

 

 

<쿠크 박사의 정원>은 버몬트 그린필드 센터라는 작은 마을의 유일한 의사인 쿠크 박사의 진료실에 짐이 의사가 되어 돌아오면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이라고 여겨왔던 평온한 마을의 이면에 숨겨진 섬뜩하고 잔혹한 진실을 밝혀가는 작품이다. 모든 이들의 존경을 받는 인자한 의사가 마을을 자신의 '정원'처럼 가꾸며 완벽한 마을에 걸림돌이 되는 사람들을 서서히 제거해왔다는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지금 까지 평온하기만 했던 마을은 어느새 끔찍한 악몽 속에 놓여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쿠크 박사의 '정원 가꾸기'는 모든 이들에게 '신의 심판'의 결과라고 생각될 만큼 마을의 평온을 가져왔지만 과연 그것이 완벽한 마을의 모습인지는 누구도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문제이다. 이처럼 이 작품은 결과적인 선(善)을 취하고자 하는 데 있어서 악(惡)한 수단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쟁의 여지를 제시하며, 인간인 누군가가 스스로에게 심판의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 하고 물어본다. 짐 역시 쿠크 박사가 사용한 방법들이 법적으로 온당치 못한 것이었음을 말하며 박사를 설득하려 하지만, 결국 박사와 같은 방법을 택하게 되는 모순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에게 더 큰 숙제를 안겨주게 된다. "끔찍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 전혀 희망이 없는 사람들, 그리고 주위 사람들의 행복과 생명을 축내는 사람들"을 잡초를 뽑아내듯이 뽑아버리는 쿠크 박사의 행동은 이 작품이 60년대에 쓰인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현 시대에도, 또한 몇십 년이 흐른 뒤의 시대에도 역시 우리에게 같은 숙제를 남겨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아이라 레빈은 작품 속에서 독특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서서히 긴장감을 고조시켜 가는 방식을 주로 사용하는데, 이 작품에서 역시 초반부터 깔아놓은 복선들을 이어가며 호기심을 증폭시키는 치밀한 구성을 보여준다.  

 

 

 

'선’이라는 대의를 위해 ‘악한’ 수단을 사용해도 되는가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쿠크 박사의 '정원 가꾸기'식의 진료는 모든 이들에게 마을의 평온을 가져왔지만 결과적으로 '선(善)'을 위하여 '악(惡)'이 과연 수단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쟁의 여지를 관객들에게 제기한다. 인간성 상실의 시대인 현대 사회에서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써 ‘악’이라는 방법을 통해 얻게 되는 ‘선’의 사회 구현은 거짓으로 일그러져있는 우리의 자화상일 것이다.
<쿠크박사의 정원(Dr. Cook's Garden)>은 1967년 뉴욕시 벨라스코 극장에서 작가인 아이라 레빈이 직접 연출하여 초연되었던 작품으로 우리나라에선 79년 윤호진 연출로 극단 실험극장에서 초연됐다. 

 

 

 

이 연극이 흥미로운 것은 극 초반에 제시된 일련의 의문들이 중반부에 이르러 예상외로 쉽게 해소됨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극적 긴장을 잃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이것은 반전의 극적 장치를 효과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즉 모든 사건이 종결되는 듯 싶다가도 갑자기 상황이 역전되어, 다시 새로운 긴장의 국면으로 접어드는 양상을 보여준다. 물론 이것은 긴장을 조성하고 유지시키 는 일종의 극적 전략에 해당한다. 그러나 보다 중요하게, 이처럼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구조는 관객들을 심각한 딜레마의 상황에 빠지게 한다. 짐의 세계관과 쿠크 박사의 세계관이 치열하게 대립하는 극적 상황을 지켜보면서, 관객들은 어느 한쪽의 입장에도 서지 못하고 머뭇거리면서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혹은 '어떠한 가치관이 옳은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한 진지한 철학적 사유를 요구하는 것으로서, 이 연극을 기존의 미스터리 스릴러 드라마와 뚜렷하게 변별시키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79년 극단 실험극장 공연 - 김인태, 서인석(좌로부터)

 

아이라 레빈 Ira Levin
1929년 뉴욕 출생. 23세 때 『죽음 전의 키스』로 에드거 앨런 포 신인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하였다. 이후 극작가나 각본가로 활동하다가 15년 후에 출간한 『로즈메리의 아기』로 세계적인 인기 작가가 되었다.
완벽한 성격 묘사, 치밀한 심리추구, 생생한 묘사로 서스펜스 소설의 거장이다. 그는 많은 작품을 출간하지는 않았지만, 로만 폴란스키 감독, 미아 패로우 주연의<악마의 씨 (원서: 로즈메리의 아기(1968년)>와 그레고리 펙, 로렌스 올리비에 주연의<잔혹한 음모 (원서: 브라질에서 온 아이들- The Boys from Brazil (1978)>, 니콜 키드먼 주연의<스텝포드 와이프(2004년)>등 많은 작품이 영화화되어 영화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Ira Lev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