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양샤오쉐 '현실동화'

clint 2025. 11. 2. 09:11

 

 

첫 번째 이야기, 꽃을 먹는 사람
젖은 몰골로 귀가한 여자. 곧이어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꽃인 협죽도가 여자에게 말을 걸더니 소리의 정체는 옆집 꽃기린이라고 한다. 
협죽도와 밀회하려고 담을 넘다가 떨어진 거라고. 
여자는 조용히 있고 싶어 하지만, 꽃은 여자에게 계속 말을 건다. 
시골의 부모님이 기차로 온다는 전화메시지를 남겼다고도 말한다.
결국 여자는 결혼반지를 고르기 위해 약혼자와 보석 가게에 갔다가, 
약혼자를 꽃병으로 내리쳐서 죽였다고 고백하는데…….

두 번째 이야기, 물고기를 먹는 사람
식당에서 일하는 여성 종업원의 유일한 즐거움은 식당 안 금붕어가 들려주는 
재밌는 이야기다. 기억력이 좋지 않다는 편견과 달리, 이 금붕어는 모든 것을 
기억한다. 오늘 좀 늦게, 한 남성 손님이 들어와 생선요리를 주문한다. 
재료가 떨어져 생선요리를 제공할 수 없다는 여성 종업원의 말에도 불구하고, 
남성 손님은 저 금붕어를 먹겠다며 고집을 부리는데…
이 남자의 말을 들어보니 결혼반지를 여자에게 사주려고 갔다가
좀 싼 것으로 골라 줬더니 여자가 꽃병으로 자기 머리를 쳤다고 하면서
비싼 것을 사줄 걸... 하며 후회하며, 그녀와의 다정했던 추억을 생각해
같이 왔던 이 식당에서 생선요리를 주문한 것이다.

세 번째 이야기, 초록색 토마토를 먹는 사람
결혼을 앞둔 딸을 보러 가기 위해 기차를 탄 노부부. 
두 사람은 끊임없이 말을 이어가지만,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지 못한다. 
간혹 나누는 대화도 서로의 기억이 맞지 않아 결국 불통으로 끝난다. 
특히 외동딸 아이에 대한 대화가 부부 싸움이 날것 처럼 커졌다가
서로 자제하고... 아버지는 누군가 남기고 간 초록색 토마토를 주워 먹는다.
어머니는 불길한 예감을 느낀다고 하고. 그런데 기차는 호수를 벗어나지 

못하고, 아무리 기다려도 다음 역에 도착하지 못하는데…

 

 


연극은 2012년, 극작가 양샤오쉐(楊小雪)의 창작으로 2016년에는 베이징인민예술극단에 의해 소극장 버전으로 각색되어 초연되었고, 2022년에는 연출가 왕안방(王安邦)의 재구상을 거쳐 난징대학교 예술석사 극단이 새로운 버전으로 제작, 여러 도시를 순회하며 공연되었다. 2024년, 작품은 보다 완성도 높은 대극장 버전으로 재정비되어 무대에 올랐다. 
결혼을 앞둔 커플이 보석 가게에서 겪은 충돌을 계기로, 두 사람은 각자의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가고, 각기 다른 환상의 세계 속에서 점차 길을 잃는다. 결혼을 앞둔 딸을 보기 위해 기차를 타고 오던 부모 또한, 어쩌면 그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간다.

각기 다른 듯한 세 에피소드가 다 얽혀 있고 죽음과 얽혀있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결말로 다시 쓴 동화
'옛날 아주 옛날에'로 시작되었다가 '두 사람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는 동화의 무대를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로 옮긴다면 어떻게 될까. 두 사람은 정말로 결혼할 수 있을까?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두 사람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결말을 맞이 했던 과거의 사람들은? 그들은 정말로 행복하게 살아왔던 걸까? '살았답니다'라는 마지막 문장을 '죽었답니다'로 바꿔본다면 또 어떻게 될까.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현실 속 결말인 죽음으로 동화의 말미를 장식한다면? 그러면 동화는 어떻게 될까. 그런 동화는 우리가 알고 있던 동화와 얼마나 닮았고, 또 얼마 나 다를까. 
<현실동화>는 세 개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이야기에 등장하는 존재로는 여성과 꽃이 있다. 여성이 키우던 협죽도는 그런 여성에게 말을 걸면서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려고 한다. 두 번째 이야기 속 존재는 여성 종업원과 금붕어, 그리고 남성이다. 여종업원에게 금붕어는 생선 그 이상이다. 금붕어가 들려주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는 게 하루의 낙이었으니까. 그러나 남성 손님에게 금붕어는 그저 생선일 뿐이다. 세 번째 이야기에는 부부가 등장한다. 결혼을 앞둔 딸을 만나러 가기 위해 기차에 오른 부부가 두 사람은 끊임없이 말을 내뱉지만, 소통이 되지는 않는다. 연이어 이어지는 반박조차 결국에는 사실이 기억나지 않는다. 게다가 기차는 계속 호수 위를 가고, 승객들은 모두 잠들어 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동화들은, 오늘날까지 널리 전해진 동화들은, 특히 아이들이 읽어도 괜찮다고 여겨지는 동화들은, 기승전결이 매끄럽게 다듬어진 서사와 분명한 선악구조, 선명하게 조각된 전형적 존재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현실로 옮겨진 동화는, <현실동화>는 그렇지 않다. 현실과 환상이라는 씨실과 날실로 직조된 세 개의 이야기는 독립적인 것처럼 보이면 서도 다른 이야기와 이어져 있고, 비선형적이기도 하다. 분열되어 있고, 단절되어 있으며 불일치된 목소리들로 채워져 있다. 우리의 현실이 그러하듯이. 
그러나 씨실과 날실이 어떠한 무늬를 만들어내는 천을 완성하려면 매듭을 지어야 하는 것처럼 현실로 옮겨진 세 개의 이야기도 결국에는 결말을 맞이한다. 그것도 피할 수 없는 결말로 바로 죽음이라는 결말이다. 유한한 생명에게 죽음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며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이니까. 그렇다고 해서 '현실동화가 죽음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현실동화>는 죽음이라는 결말을 통해 우리에게 삶의 의의를 묻는다.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는 동화는 그 이후의 삶을 꿈꾸게 하지만, "그렇게 죽었답니다."로 끝나는 동화는 죽음 이전의 삶을 곱씹고 그 의미를 찾으면서 생명에 의의를 부여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는 다른 동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명쾌한 교훈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스스로 답을 찾아야만 하는 온갖 고민거리만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