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예가형제 '푸르가토리움' (하늘이 보이는 감옥)

clint 2025. 11. 3. 08:46

 

 

한때 도청의 관리였던 마르멜라도프는 실직을 한 뒤, 
아무도 자신을 고용해주지 않는 현실 속에서 방황하다 알코올 중독자가 된다. 
그의 두 번째 아내 까쩨리나는 가난을 참다 못해, 의붓딸 소냐로 하여금 
몸을 팔게 한다. 자신의 딸이 창녀가 되기에 이르자, 마르멜라도프는 
도지사에게 간청한 끝에 말단 공무원으로 취직하게 된다.
평화로운 날들도 잠시, 도지사는 그에게 소냐를 자신에게 바치라고 종용해온다. 
고민 끝에 마르멜라도프는 소냐에게 도지사를 찾아가라고 하지만 소냐는 
도지사에게 찾아가지 못하고, 이에 화가 난 도지사는 마르멜라도프를 쫓아낸다. 
그리고 며칠 뒤 마르멜라도프는 의문의 사고를 당해 죽음을 맞게 되는데....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에 등장하는 주변 인물들이 등장한다. 때문에 이 극은

<죄와 벌>의 외전(外傳)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인물의 성격과 상황만을 빌려왔을 뿐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푸르가토리움'은 '연옥'이라는 의미의 라틴어로 '정화의 장소'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단테는 신곡 2부인 <연옥여행기>에서 지옥이 인간의 죄를 인식하는 곳이라면,

연옥은 죄를 씻는 곳이라고 설명하며, 지옥과 천국 사이에 놓여진

연옥을 통해 영혼을 맑게 하라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단테의 연옥은 죽은 자가 가는 곳이지만, 호메로스의 하데스와는 달리

하늘이 보이고 별이 빛나는 희망의 장소이기도 하다.

 

 

 

상세 줄거리는 아래와 같다.
1장. 기괴한 놀이 : 마르멜라도프의 집에서는 뽈랴, 꼴랴, 리다 삼남매가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기 위해 서로를 때리는 기괴한 놀이를 하고 있다. 아이들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가져다주지 않는 아버지를 무능하다고 비난한다.
2장. 주정뱅이 : 마르멜라도프는 술집에서 자신에게 술은 악이 아니라 구세주라고 말하면서, 술을 마시는 행위를 정당화한다. 남편을 쫓아 술집까지 찾아온 까째리나는 그런 마르멜라도프를 비난하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다.
3장. 도지사의 요구 : 마르멜라도프가 일하고 있는 관청의 최고 위원인 도지사 이반이 마르멜라도프를 불러 그의 딸 소냐를 자신에게 바치라고 종용한다. 마르멜라도프는 그 요구를 거절하려고 애쓰지만, 자신의 현실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승낙한다.
4장. 네바 강 : 소냐는 마르멜라도프의 부탁으로 도지사에게 가던 중, 그 곳에서 행인 로지온을 만나고,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 도지사에게 가지 못하게 된다.
5장. 까째리나 : 까째리나는 소냐가 준 돈으로 빵이 아닌 꽃을 사온다. 그런 엄마를 본 아이들은 그녀의 옷에서 음식 냄새가 나는 것을 알게 되고, 혼자 몰래 배를 채웠다며 까째리나를 구타한다.
6장. 파면 : 소냐가 자신을 찾아오지 않자, 화가 난 도지사는 마르멜라도프를 괴롭히다 못해 직장에서 쫓아낸다.
7장. 고해성사 : 소냐는 예배당에서 로지온에게 자신이 창녀가 된 과정과 아버지의 부탁을 어긴 사실을 고백한다. 그리고 자신의 선행으로 인해 아버지가 직장을 잃고, 집안이 망한 것에 대해 하나님께 용서를 구한다.
8장. 죽음 : 마르멜라도프가 갑작스레 마차에 치여 집으로 실려 온다. 까째리나는 마르멜라도프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비난한다. 소냐만이 시신 위에 엎드려 운다.
9장. 추도식 : 까째리나는 마르멜라도프의 추도식을 연다. 하지만 집을 나가라는 집주인의 말에 충격을 받고 미쳐 날뛰다가 결국 거리에서 쓰러져 죽고 만다.

 

 

 

알코올중독으로 생활력을 잃고 딸을 창녀로 만든 것도 모자라 자신의 상관에게

상납하는 아버지, 굶고 있는 아이들이 있으면서도 빵 대신 꽃을 사는 어머니,

‘차라리 낳지 말았어야 했어’라며 부모를 비난하는 어린 아이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의 삶과 이들을 극한으로 몰아놓은

사회의 잔혹함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그리고 작품에서 가장 아이러니하고 사회성 짙은 측면인, 선과 악의 이중성에

주목했다. 선과 악이 흑백처럼 분명한 도덕교과서와는 달리,<푸르가토리움>에서는

마르멜라도프의 악행이 소냐의 희생정신을 불러일으키고,

걸인을 도와주는 소냐의 선행은 아버지의 죽음과 집안의 파멸을 가져온다.

이러한 미묘한 관계와 사건의 흐름을 통해 한 인물을 '선' 아니면 '악'이라는

이분법적인 판단이 아니라, 어떠한 면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정의'의 문제를 풀어냈다. 이와 같은 의도와 결과의 상반된 모습을 통해

'과연 진정한 선과 악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라스콜리니코프가 소냐에게서 동류의식을 느끼는 것은 그 때문이다. 아무리 가족을 위해서 라고는 하지만 창녀 일을 하는 소냐는 전당포 노파를 도끼로 살해한 자신과 마찬가지로 넘지 말아야 할 어떤 선을 넘어선 거라고 그는 생각한다. 우리가 아는 「죄와 벌」은 바로 이 두 사람의 행로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 이야기에서 라스콜리니코프를 빼면 어떻게 될까? <푸르가토리움>은 그렇게 라스콜리니코프가 빠진 「죄와 벌」이야기라고 해도 좋다. 이야기의 새로운 중심은 마르멜라도프 가족으로 넘어간다. 배역도 바뀌어 마르멜라도프 가족이 주인공이고 ‘로지온’은 조연이다. 「죄와 벌」에서 가난한 법대생은 감옥 같은 현실의 탈출구를 찾기 위해 살인이라도 해보지만,<푸르가토리움>에서 중년의 술꾼은 현실과 맞설 만한 의지를 갖고 있지 않다. 선량하지만 무능력한 그는 직장에서 쫓겨나 아내의 양말까지 전당포에 맡기고 술을 퍼마신다. 결국 마르멜라도프는 마차 사고로 죽고, 아직 어린 아이들과 함께 집에서 내쫓기게 된 폐병쟁이 아내 까째리나는 길거리에서 쓰러진다. 그런데 과연 이런 비참한 현실이 비단 마르멜라도프 가족만의 비극일까. 19세기 러시아 사회에만 한정된 이야기일까. 물론 아니다. 용산참사의 악몽이 아직 가시지 않았고, 바로 지난달에도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가 자신의 임대아파트에서 몸을 던져 자살했다. 21세기 한국사회의 현주소다. 그런데 이 문제적 현실을 연극은 ‘푸르가토리움’, 곧 ‘연옥’이라고 말한다. 모든 희망을 포기해야 하는 단테의 ‘지옥’과 달리 연옥은 ‘하늘이 보이는 감옥’, 곧 희망을 담지한 감옥이다. 과연 하늘은 어디에 있고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그걸 발견하는 일이 관객의 몫이다. 곧 당신의 몫이고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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