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배봉기 '사랑이 온다'

clint 2025. 8. 27. 08:28

 

 

15년전 집 나간 아들이 결혼을 약속한 여자1과 함께 집으로 돌아온다.
5살 때부터 10년 동안 아버지에게 구타당했던 그는 자신의 새로운 삶을 위해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엄포를 놓고 몸이 성치 않은 아버지는 도망쳐 방으로 
숨어든다. 아들은 그를 만류하는 어머니 앞에서 지난날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리듯 여자1을 때리기 시작한다.
6개월 후 자신보다 12살이 많은 여자2와 함께 다시 집을 찾은 아들. 
아버지는 병색이 짙어 휠체어에 앉아 있다. 아들은 병든 아버지 때문에 
고생하는 어머니를 위해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다시 협박한다.
여자2는 드러난 아들의 상처를 감싸 안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어머니는 
병든 남편의 뺨을 때린다. 
아들은 6개월 후 여자3과 다시 집을 찾는다. 불법으로 장기 적출수술을 받았던 
여자3은 예정된 시간에 발작을 일으키고 그 모습을 지켜보며 아들은 모든 것을 
용서하고 인간답게 살겠다고 고백한다. 
아들이 돌아가고 난 후 아내는 이제는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며 
남편을 죽이고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캄캄한 창고를 더듬으며 남편의 지팡이를 찾고 있는 아내에게 남편의 욕설이 이어진다. 아내는 겨우 찾은 지팡이를 직접 건네지 못하고 맞을까 두려워 남편에게서 조금 떨어진 마루에 걸쳐놓는다. 이 부부의 삶, 가족의 삶이 어땠을지 한순간에 그려진다아버지의 학대를 버티지 못하고 집을 뛰쳐나간 아들은 결혼할 여자를 데리고 빚을 `정산`하기 위해 집에 돌아온다. 아버지에 대한 분노로 가득 한 아들이 앙갚음을 위해 아버지와 마주한다받은 만큼 돌려주는 사회는 어쩌면 공정한 사회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주고받는 것을 `폭력`이라는 사회적 악과 결부시켰다. 폭력은 또 다시 폭력을 낳는다고 했듯 아들은 폭력적인 아버지를 죽일 듯이 미워하면서도 결혼할 여자와 주변인들에게 폭력을 휘두른다. 끝나지 않는 가정폭력, 나아가 사회폭력으로 이어지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내 속에 이 악마 같은 짐승새끼를 죽이기 전에는 나 사람새끼로 살 수 없어요. 나도 정말 사람새끼로 살고 싶다고요!" 아들은 오열하듯 소리치며 아버지 때문에 자신 속에 자라게 된 짐승을 죽이기 위해서는 아버지와 정산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두 번째 여자를 데리고 또 다시 집을 찾았을 때도 그 정산은 차마 이루지 못한다세 번째 여자와 다시 온 아들은 순화된 모습이다. 폭력으로의 앙갚음이 아닌 다른 방법을 택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자신이 가한 폭력의 상처로 죽을 만큼 괴로워하며 발작을 일으키는 여자를 지켜보는 것으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폭력적 욕구는 남아있지만 그 욕구를 진정시킬 출구를 찾은 것이다아들 뿐 아니라 부부의 모습도 뚜렷한 변화를 보인다. 다리를 절던 남편은 휠체어에 의지한 채 말도 제대로 못하고, 첫 장면에서 남편의 눈치를 보던 아내는 어디가고 잔소리에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남편의 뺨을 스스럼없이 툭 때릴 때 관객들은 속이 시원할 법도 한데 씁쓸한 웃음이 날 뿐이다어머니는 결국 아들이 못 다한 `정산`을 대신 실행한다. 극의 마지막에서 검은 비닐봉투로 남편을 살인하고 자신도 나란히 앉아 자살함으로써 폭력성에 대한 깊은 뿌리를 뽑는다. 죽음을 눈앞에 둔 남편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사아---"를 반복한다. 우리 사회 깊이 스며든 가부장성, 폭력성의 정화에 과연 어떤 고통과 인내, 사랑이 필요할까 생각하게 한다

 

 

 

연극 <사랑이 온다>는 현 사회 속에서 나타나는 폭력에 대한 이야기이다가정폭력으로 상처 입은 개인이 사회에서 타인에게 범하게 되는 폭력의 연장과 그 폭력으로 인해 치유 받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아버지의 무지막지한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가출한 아들은 15년 만에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를 죽여 자신 안의 짐승, 즉 폭력성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 그러나 폭력이 폭력으로 대치된 이와 같은 대립은 해소되지 못하고 또 다른 상처를 내고 만다. 이러한 상처는 자신이 아닌 타인의 고통과 대면함으로써 치유 받게 된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보이는 치유는 여타의 작품과 달리 용서와 화합이 아닌 체념과 또 다른 폭력으로의 전이의 형태를 띠고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못한 문제는 반복되는 행위로 나타난다. 다만 지나간 행위만이 마침표를 찍을 뿐이다. 이러한 행위를 인식함으로 겪게 되는 고통은 다름 아닌 극단적인 치유의 방법으로 제시된다.

 

 

 

작가의 글 - 배봉기
<사랑이 온다>를 쓸 때 처음 생각한 문제는 폭력이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매우 높은 폭력성에 빠져 있다는 것, 폭력이 우리들의 외부적인 환경뿐 아니라, 심성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는 점은 굳이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최근 베트남에서 시집온 어린 처녀가 1주일 만에 남편에게 칼에 찔려 죽은 사건, 거의 매년 한국사회의 자살률이 OECD국가 1위를 차지한다는 사실 등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베트남 처녀를 죽인 것이 단순히 정신병자인 남편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겁니다. 이 정신병자는 우리 사회의 폭력성을 상징적으로 표출한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사랑>은 이 폭력을 남성성과 결합시키고 있습니다. 이 남성성은 좀 더 구체화하면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 남성성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동서양 모두, 모계 사회 이후에는 남성성이 역사를 지배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비로 구현되는 남성성, 이 남성적 폭력, 이 폭력을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이런 폭력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이 폭력을 껴안고 넘어서고, 그래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들이 제가 우선 <사랑이 온다>에서 제기한 문제들입니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덧붙여야 할 것 같습니다. 남성성이나 남성적 폭력을 현실의 아비나 남성의 구체적 사례와 비교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점입니다. 현실에서는 아주 여성적이고 부드러운 아버지도 있고, 엄마가 더 터프하고 폭력적일 수 있습니다. 오래 축적된 역사와 사회의 남성성, 개개인 우리들 속에 깊이 스며들어 배어 있는 남성적 폭력. 그 독은 어린 아들과 아내를 죽도록 팰 수도, 한 여성을 칼로 죽일 수도, 자기를 죽일 수도, 강을 마구 파헤칠 수도, 전쟁을 해서 집단적인 학살극을 벌일 수도 있습니다. 이 처참한 현실 앞에서 우리가 쉽게 그 폭력과 독에 대항하여 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들의 폭력과 독을 성찰하고, 깊은 고통으로 그것들을 정화해내야 하지 않을까, 그럴 때 우리가 살아갈 수 있다는, 어떤 사랑의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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