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한인협회의 회장인 최목사가 딸들에게 성폭행이라는 죄목으로 고소당한다.
아들을 얻기 위해 결혼을 몇 번씩 하고 재산을 아들에게만 물려주는 아버지에 대한
불만이 가득한 큰딸 은숙. 재판과정에서도 끊임없이 아버지에 대한 증오를 노출하며
10년동안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다.
이 사건은 한국과 미국의 문화적 차이에서 빚어진 것이며 딸들이 유산분배 불만으로
아버지를 고소한 것이므로 무죄라고 주장하는 변호인 제시카와
최목사를 변태 성욕자라고 주장 하는 검사의 팽팽한 대립속에 재판은 진행된다.
극은 법정이라는 공간을 통해 근친상간이라는 경악을 금치 못할 범죄를 다루면서
미국과 한국의 문화적 충돌에 이의를 제기하고 누가 거짓말을 하는가에 대한
집요한 진실 공방을 벌인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해체되고 파괴되어가는 한 가족의
안타까운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더불어 인간의 평등이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는
오늘의 사회 속, 여전히 남성에 의해 짓밟히고 억압당하고 있는 여성들의
존엄과 가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현재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인 며느리의 숫자가 25만 명이라고 한다. 그리고 2007년 한해 우리나라의 신생아의 출산이 40만 8000명이라는 놀라운 보고가 있었다. 저출산의 문제가 사회문제가 되는 현 시점에서 이들 외국인 며느리들이 출산한 아이들의 수는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이제는 우리나라도 단일민족이라는 카테고리에서 서서히 변화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작품 <아버지가 사라졌다>는 바로 다인종국가인 미국에서 일어난 한 한국인 가정의 불행에서 소재를 따온 작품이다. 미국으로 이민간 한 한국인 아버지가 딸을 성추행했다는 이유로 기소되어 84년형의 선고를 받은 사건에서 소재를 따왔다.
이 작품에서는 성추행의 문제를 벗어나 다인종국가라는 미국에서의 소수민족의 문화적 충돌, 그리고 이런 문화적 충돌 속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전통적 의미의 가족관계의 해체과정. 그러나 이제는 이런 현상이 미국이나 기타 다인종국가에서만의 일은 아니다. 바로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된 것이다. 이 사건은 성추행의 문제나 재산상속을 둘러싼 갈등, 아들선호사상이 빚어낸 가정의 비극이라는 현상의 문제를 벗어나, 문화와 가치관의 변화 속에서 가정과 가족의 해체라는 본질적인 문제를 직설적으로 제기한다.
'오늘의 가정과 가족은 이기주의자들의 모임인 이익사회의 개념인가, 영과 육이 함께 하는 공동사회의 개념인가'
'아이는 필요 없고 수입은 두 배를 원하는 이른바 딩크족 등으로 대표되는 우리 젊은이들의 사고방식과 함께 가족관계의 해체가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결혼은 '두 이기주의의 야합'이 되어버리고 가정은 가족구성원이 '함께 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있는 곳'이란 장소적 개념으로 전락하였다. 이런 현실을 애써 외면하는 상황에서 <아버지가 사라졌다>는 우리의 가족과 가정의 현주소를 되짚어보본다.
이 작품은 법정극 형식을 취하면서, 그 속에서 언어 형식의 묘미와 극적 반전의 구성을 가지고 있다. 내러티브의 정석을 유지하고, 그 속에서 상이한 문화충돌로 인해 벌어지는 사회적, 세대적 갈등을 문화담론 형식으로 풀어간다. 자칫 평면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구성상의 일관성을 시각적인 표현과 심리적 심층의 변화를 통해 좀 더 역동적으로 풀어간다. 우선, 극의 두 축을 이루는 최 목사와 두 딸의 대립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작품의 본질은 성폭행의 진실 공방에 있는 것이 아니라, 딸들의 과거로부터 생긴 정신적 트라우마와 그로 인해 딸들의 허구적 진실 속에서 만들어진 제의적 모습의 아버지였다. 먼저 딸의 시각으로 재해석된 아버지의 광기어린 가정 내 폭력과 목사로서의 종교의식들이 한국전통적 남성의 권위와 폭력의 이미지와 중첩되어, 혼란과 공포로 몰아간다. 가해자의 제의적 순화 과정이 피해자의 트라우마로 형성되어가는 과정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극의 후반에 등장하는 제퍼슨의 몽환적 분위기 역시 그런 제의적 형식의 다른 표현이다. 극을 이끌어가는 제시카 변호사는 모든 여성의, 그리고 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면서도, 최목사(아버지)의 사라져가는 모습을 마지막까지 지켜보는 휴머니스트로서의 여성상을 보여준다.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철 '비풍초똥팔삶' (5) | 2025.05.26 |
---|---|
이해제 '흉가에 볕들어라' (1) | 2025.05.25 |
백일성 '하늘에 꽃피우리' (2) | 2025.05.24 |
전서아 '커튼' (4) | 2025.05.23 |
김동인 소설, 이광래 극본 '대수양' (4) | 2025.05.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