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복숭이 신갑문은 파를 잔뜩 지게에 지고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는 실성한 사내다.
을씨년스러운 어느 날 밤, 파복숭이는 30년 전 몸담았던 남부자 집으로 자신도 모르게
찾아 들어간다. 흉가가 되어 아무도 살지 않는 그곳에서 파복숭이는 고통스러운
과거를 회상하며 자살을 기도하려고 한다. 그 때 대문 귀신이 되어 나타난 남부자.
남부자는 파복숭이에게 자신의 집이 왜 몰락했는지, 까닭을 추궁하다가
파복숭이와 내기를 한다. 가신 행세를 하며 이 집에 붙어있는 불량 귀신들에게
그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려줘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까다로운 세 가지 조건이 있다.
죽었다고 말로 해서는 안되고, 남부자 자신을 끌어들여서는 안되고, 새벽까지
살아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궁지에 몰린 파복숭이는 어쩔 수 없이 내기를 수락한다.
이윽고 나타난 가짜 가신들. 삼승할망, 변소각시, 조왕부인, 용단지, 노적, 용왕, 바래기,
성주. 자세히 보니 다들 예전에 이 집에서 같이 살았던 위아래 사람들이다.
30년 전 어느 날과 똑같이 행동하는 이들을 보고 파복숭이는 기가 찬다.
마님은 대를 못 이은 게 한이 되어 삼승할망이 되어 있고 부엌때기 화출이는
부엌을 담당하는 조왕부인이 되어있다. 마당 쓸던 운봉이 아범은 노적(마당귀신)이요.
크고 작은 집안 일을 맡던 청지기 황씨는 용단지가 된게 아닌가. 이래저래 기구한
사연으로 불량 귀신이 되어 있는 그들을 데리고 파복숭이는 일을 만들어 나간다.
파복숭이는 그날과 똑같이 일을 꾸미는데... 가신 잡귀들의 이간과 모략, 시샘과 투기
그리고 이해가 갈등을 만들어 놓는다. 얽히고 설킨 욕망들이 죽음으로 몰아넣는
그 옛날의 밤이 또 다시 펼쳐진다.
신방에서 초야를 치르다 살아 생전 남부자의 씨를 받아 만삭이 된 화출이를 두고
또 다시 일은 더욱 불거지고... 마침내 자신의 눈앞에서 사람들이 하나둘 죽어나가는
광경을 바라보던 파복숭이는 스스로 죽기를 택하지만 팔푼이 바래기의 도움으로
다시 영혼이 육신으로 돌아오게 되어 생육으로 아침을 맞이하게 된 파복숭이.
다시 전날의 밤을 영원히 반복하여 살아야 하는 자신의 운명을 알게 된다.
자신의 욕망과 남부자의 생전의 욕망 때문에 벌어진 30년 전 그날의 사건을
되풀이해야 하는 것을 깨달았으나 살아있는 고통을 계속해야 하는 파복숭이의,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나날이 계속된다.

남부잣집 가솔들 8명이 한 날에 죽은 사연, 또 그들이 죽은 줄 모르는 가신(잡귀)가 되어 죽은 날 하루를 영원히 반복하는 사연이 남부자와 파북숭이의 내기를 매개로 밝혀지는 구성을 취한다. 시와 판소리 사설 양식으로 쓰인 지문, 구수한 입담과 운율의 경상도 사투리, 전래 민속신앙, 토속적이고도 해학적 캐릭터들이 어우러져, 한국 희곡사에서 매우 독특한 한국적 연극의 위상을 점한다. 귀신들이 30년 전 그들이 모두 죽은 그날의 삶을 날마다 반복하고 있음이 순환적 구조로 암시된다. 시간은 현재, 과거, 미래가 분리된 것, 직선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 중첩되고 정지되어 있으며 순환적인 것이다. 우리의 삶은 마치 파북숭이의 일장춘몽 같은 것이며 욕심과 집착에 붙들려 있다면 살아도 흉가의 가신들처럼 죽은 삼인 것이다

백상 예술대상 신인 연출상에 빛나는 이기도와 2000년 대표 희곡으로 선정된 극작가 이해제가 만나 빚어낸 ‘흉가에 볕들어라’는 1999년과 2000년 공연 당시 관객과 평단 모두에게 찬사를 받은바 있다. 이 황금콤비는 흉가에서 벌어지는 인물과 사건간의 복잡한 관계들을 긴장과 이완이 교차하는 희극적인 구성으로 리드미컬하게 표현하고, 은유와 상징이 조화된 노래와 사설을 통해 인간 욕망의 순환 구조를 재치있게 풀이했다. 가신신앙이라는 우리 전통의 소재와 시적인 은유, 맛깔스런 경상도 사투리와 폭소를 자아내는 해학적인 캐릭터들이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흥겨운 무대는 연극의 진수를 보여준다. 인간 욕망의 탐색이라는 진지한 주제를 귀신들의 한바탕 소동 속에서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며, 한 편의 추리 소설을 방불케 하는 짜임새있는 구성을 통해 30년 동안이나 베일에 쌓여 있던 흉가의 비밀도 하나둘씩 그 본색이 드러난다.

<흉가에 볕들어라>는 표현 방식의 발상이 주목되었다. 내용이래야 남부자가 병신 아들 하나를 남기고 죽자, 그 유산을 둘러싸고 인간의 욕심이 얽혀서 모두 죽고 죽여서, 흉가가 된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유일한 생존자인 머슴격이었던 파복숭이가 흉가를 다시 찾아들면서, 흉가가 된 영문을 알고 싶어하는 남부자 귀신을 만나면서 시작된다. 이 만남은 극중극의 형식을 마련하는 한편, 귀신들이라는 볼거리를 마련하는 기틀이 된다. 그런데 그 귀신들을 다시 가신신앙과 연결시켜, 삼승할멈, 성주, 조왕, 뒷간신, 노적지신, 바래기 등등의 가신들로 표현하여, 인물의 상징성과 토속성을 더하였다. 다만 잡귀와 달리 가신신앙의 신들이 대체로 수호신이었음을 고려할 때, 각 신의 특성이 작품의 내용과 직결되지 않아서 아쉽기도 했다. 그러나 각 인물이 집안에서 가졌던 신분과 가신의 특성이 교묘하게 맞아떨어지기도 했으며, 인간이 아닌 귀신들로 설정했기에 공연은 인간, 잡귀, 가신들의 세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상상력의 나래를 펼쳤다. 더구나 이 의도된 혼동은 단순히 작품의 틀과 볼거리를 마련하는 데에서 나아가서, 작품에 전체적인 상징적 의미까지 부여했다. 죽었으되 죽은 줄 모르고 욕심에 매달려 있는 귀신들은 바로 인간의 모습이 아니던가? 독특한 의상과 분장도 공연을 전통에 연결시키면서도 풍성하게 했다. (……) -<세계화 시대 해체화 연극>, 이미원, 연극과인간, 2001

지난 3일 LG아트센터에서 막 올린 극단 인혁의 <흉가에 볕들어라>는 이미 지난 1999년과 2000년 두 차례 대학로에서 공연돼 예술성과 흥행성을 두루 검증 받은 작품이다. 따라서 이번 공연의 주 관람 포인트는 희곡과 연출에서 모두 탄탄한 기반을 닦은 이 소극장 연극이 과연 어떻게 대극장 버전으로 다시 태어날 것인가에 쏠렸다. 확장된 공간을 효과적으로 장악하지 못하면 자칫 무대가 휑해보일 수 있고, 반대로 너무 욕심을 내다보면 필요 이상의 장식으로 거추장스럽게 된다. 작품의 밀도가 덩달아 떨어질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이 같은 아슬아슬한 줄타기에서 용케 중심을 잡은 듯 보인다. 대숲으로 무대 전체를 빙 둘러치고, 그 중심에 폐허가 된 흉가를 앉혀 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극의 이중 구조를 효과적으로 표현한 무대 세트는 시각적으로 퍽 인상적이었다. <흉가에 볕들어라>는 타고난 이야기꾼으로서의 작가 이해제의 면모가 유감없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 이야기가 펼쳐지는 과정은 추리극적 요소로 인해 흡인력을 더한다. 가신 행세를 하며 집에 붙어있는 잡귀신들에게 그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말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알려야 한다는 조건은 희극적 재미와 함께 인간 욕망의 비극성이라는 작품 주제를 극대화시키는 장치로 유용하게 작용한다. (……)
한명구(파복숭이)와 박용수(남부자), 두 중견배우는 경상도 사투리를 맛깔스럽게 구사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연극의 중심을 떠받치는 대들보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집귀신들의 앙상블 연기도 좋았다. 하지만 몇몇 배우들의 경우 발성 자체가 크지 않은데다 사투리 구사가 서툴러 대사 전달에 문제가 있었던 점은 아쉽다.

작가의 글- 이해제
곱창집 주인 여자 소주 한 잔 받아 놓고 통곡을 한다
냉장고는 밤을 새워 시간을 두고 흐느낀다
냉면 얻어 먹으며 바라본 정원
어미새 한 마리 배수관에 둥지를 틀었다
비가 온다....
다들 울고 있는 풍경이 내 심정 같아 갑갑하고 마음 어수선할 때가 있었다.
모두 작년까지의 일이다.
최근엔 꽤 생각없이 사는 편이니 이런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슬픔은 빌어먹어야 할 것이 아니라는 다짐으로 일부러 아쉬움까지 놓아 버린다.
해서 이번 <흉가에...>엔 스스로 부끄럽다. 마음에서 죄다 떠난 것은 아닌데
마침 아까운 팜플렛 지면에까지 내보이는 속내가 아무리 봐도 너무 건조하다.
<흉가에...>가 무슨 장황한 '인간 욕심의 보편사' 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자꾸만 엉켜가는 사람살이 울컥하는 마음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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