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 젖은 거리.. 한 남자가 길을 잃은 채 헤매고 있다.
그는 이제 막 군을 제대한 24살의 상처투성이 청년 구정화이다.
그런 그의 앞에 카페 여가수 숙영이 나타난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를 발견하고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숙영에게는 애인이자 매니저인 홍식이 있다.
불도저 같은 홍식은 새장 속에 가둔 새처럼 숙영에게 집착한다.
한편 숙영은 남자와의 몰래 데이트를 위해 남자가 자주 들르는
온통 섹스로 얼룩져있는 허름한 이발관에 종종 오가게 되고,
홍식은 그런 그녀를 의심하여 결국 사고를 치고 마는데....
이발관을 배경으로 그들의 집착과 잘못된 욕망이 결국은 모두를 파국으로 몰아넣는다.
2008년 연극페스티벌에서 초연된 이 연극은 당시 관객 및 심사위원을 맡은 젊은 연극인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작품상 대상격인 미래작품상을 수상하였다. 그 여세를 몰아 이 작품을 극단 필통의 여름 레퍼토리로 정착하고자 업그레이드를 실시, 2009년 서울문화재단 예술표현부문 지원금을 받아 재공연하기에 이르렀다.
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건강하지 못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그 중에는 인간의 추악한 면들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사람들도 있다. 이 연극의 주요 코드는 폭력, 괴물, 사랑인데 사회에서 원시성을 대표하는 인물인 홍식, 하지만 아들의 전화벨 소리만 들으면 선한 사람이 된다. 10년 동안 떠돌이 서울 생활을 하면서 벌레가 되어버린 이발사, 자기 욕망을 표현하려는 여가수, 본능에 희생당해버린 정희를 통해서 우리들이 살고 있는 사회의 타락한 모습을 보여준다.
연극 [이발사를 살해한 한 남자에 대한 재판](선욱현 작)은 우리사회의 황량하고 어두운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이 사회 속에서 삭막해진 우리의 내면까지도 거침없이 표현한다.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는 24살 청년 정화는 카페 여가수 숙영을 길거리에서 만난다.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사랑은 빠지고 이에 숙영의 애인이자 매니저 홍식은 이를 눈치 챈다. 홍식은 정희가 자주 들르는 이발소에 찾아 간다. 이때부터 주인공 모두에게 비극이 찾아온다. 이 작품은 비극적인 결말과 함께 우리 사회의 본질적인 치부를 담았다. 주인공들은 각자의 상처에서 연유된 집착과 욕망을 가지고 있다. 이는 그들 모두 비극의 경지에 빠뜨린다. 우리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표현한 작품답게, 외설적이고 거친 욕설이 자주 나온다. 하지만 이는 극 중에서만 가능 하는 것이 아닌, 현재 어디 선가에도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법한 장면이다. 관객들은 이를 깨닫는 순간, 평소에 잘 느끼지 못했던 현실의 어두운 면을 깨달으며 소름끼치게 된다. 카페에서 노래하며 가수라는 꿈을 키우기 위해 각박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숙영의 모습은 실제 연예인 지망생들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 꿈을 실현하기 위하여 그 어떠한 것도 해낼 준비가 되어 있는 그들의 안타까운 삶. 우리 사회에 숨겨진 현실들을 수면 위로 드러낸다.
이 작품은 우리가 사는 사회를 돌아보게 하고 그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소외된 이들을 되돌아보게 한다. 힘든 세상 속에서도 사랑을 추구하면서 상처를 받고 인간이 얼마나 나약해 질 수 있는지 나타낸다. 어두운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이 작품은 조명의 활용이 인상적이다. 사랑을 추구하기 위한 열정을 담은 붉은 빛, 비정한 현실 속의 냉혹함을 표현한 파란 빛, 그리고 알 수 없는 슬픔을 띠고 있는 보랏빛은 작품의 주제를 형상화한다. 암울하기도 어떻게 보면 가볍기도 한 주인공들의 상처받은 내면을 감각적 이고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숙영은 카페에서 노래로써 자신의 사랑과 애환을 표현한다. 동시에 관객들은 카페의 손님들이 되어 그녀의 노래를 듣는다. 관객들은 숙영의 가슴 저린 노래를 따뜻한 박수로 답례한다. 숙영에게는 노래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며 자신의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유일한 꿈이다. 서로 길을 헤매면서 만나게 되는 주인공 정화와 숙영. 그들은 길 찾기에 유난히 둔하다. 이들은 재빨리 길을 찾고 걸어가고 있는 약삭빠른 이들에게서 전적으로 소외되는 이들과도 같다.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에게 올바른 길을 알려줄 ‘나침반’이 존재할까. 이 작품은 세상의 잔혹한 진실을 보여주고 우리 내면의 본성도 느껴보게 한다. 또한, 우리의 어두운 주위까지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연극에는 재판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재판은 전적으로 관객들의 몫으로 돌려진다. 사건의 진실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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