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고, 태풍 '올가'가 해안 일대를 휩쓸어
수많은 이재민을 낸 1970년으로부터 2년이 지난,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로 전 국민이 피곤한 눈을 떠야 했던
1972년 7월 중순. 충청남도의 한 마을(대추리)이
초여름 뙤약볕보다 더 뜨겁게 들썩인다.
이유는 얼마 전 마을로 이사 온 한 가족때문.
사연인 즉, 그 가족의 사위가 장모만 따로 방을 얻어 들어앉혀 놓고,
아내는 집에 가둬놓은 채 모녀가 서로 자유롭게 만나지도 못하게 한다는 것.
분개한 마을 사람들에게 장모는, 태풍으로 많은 가족을 잃은
사위의 상처때문이라며 양해를 구한다.
허나 사위는, 교통사고로 딸을 잃은 장모가 충격으로 미쳐서
자신의 두번째 아내를 딸로 착각하기에 벌어진 일이라며 이해를 구한다.
이 모순된 사연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은 광분하나,
사건은 갈수록 미궁에 빠진다.
결국 해답의 열쇠를 쥐고 있는 딸(혹은 두 번째 아내)이
마을 사람들 앞에 불려 나타나지만,
그녀는 '뜻대로 생각하세요.'라는 답을 남긴 채 자리를 떠난다.
마을 주민들이 이구동성으로 "잠깐만유!"라고 소리지르는 것으로 끝난다.
재구성, 연출의 글 - 김승철
'그류? 그류!’는 루이지 피란델로의 ‘It is so, if you think it is’를 1972년 충청도의 한 마을로 치환하여 재구성한 작품이다.
충청도를 선택한 이유는, 충청도 사투리 특유의 ’에둘러 말하기‘,’엇박자 유머‘,’능청 떨기 ‘, ’무관심 속의 지대한 관심‘,’한 호흡 늦추기‘,’징그러운 집요함‘ 등이 작품의 주제를 전달하데 적절한 언어라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그류? 그류!’는 평화로운 시골 마을에 복잡 미묘한 사연을 지닌 한 가족이 이사를 오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룬다. 마을 사람들이 그 가족의 모순된 사연의 진실을 파헤쳐가는 과정을 통해 ‘진실’이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철학적 주제를 ‘우모리스모 (희비극)’적 정서, 즉 ‘통찰력 있는 유머’로 경쾌하게 풀어낸다. 한 가지 사건이나 이슈에 대해 흑백의 논리로 여론이 분열되어, 급기야는 심각한 사회불안 현상을 야기하고 마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단면을 ‘그류? 그류!’를 통해 은유적으로 그려보고자 한다. 말 그대로 ‘그류? 그류!’(It is so, if you think it is) 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절실한 미덕이 아닐까 생각한다. 극중 장모와 사위는 서로 모순되고 상대적으로 비논리적인 주장을 하지만, 그들은 놀랍게도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라 사랑하고 배려하는 관계이다.
그건 사실, 모순을 그들이 전적으로 받아들인 데서 오는 합리적 관계이자 행복이다. 그러나 그들 가족의 관계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대추리 마을사람들은, 자신들과 직접 관계가 없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로 말미암아 혼돈과 분열 속에서 광분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성과 실증, 논리 따위를 동원해 그 모순을 풀려 한다. 허나 만일 그 시도가 성공했다면, 모순을 안은 채 평화를 유지하던 그 가족의 관계는 파괴되고 말 것이다.
'여러분이 그렇다면, 그런 거죠'를 충청도 사투리로 하면 '그류? 그류!'로
원작의 분위기를 충청도로 옮겨와 재미있게 각색하고 수정하여
마치 한국 토속 작품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캐릭터도 완전 토착화 되어 시종일관 재미를 주면서도
원작의 분위기를 살린 작품이라 하겠다.
원작은 이탈리아 상류층 사람들을 등장인물로 해서 '진실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던진 데 비해 번안작은 서민들을 등장시켜 남에게 해코지도 못하고
따뜻한 마음만 갖고 있을 듯한 마을 사람들이 알 권리와 마을 전체의 이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개인이 애써 숨기고 싶어하는 사적인 사연을
광분하며 파헤쳐나가는 과정을 그려냈다.
루이지 피란델로 [Luigi Pirandello, 1867.6.28~1936.12.10]
유황 광산주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가 자신의 뒤를 잇기를 원했지만 사업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공부하기를 원했다. 1887년 로마대학교에 진학했으나 고전문학교수와 논쟁을 벌인 뒤, 1889년 독일의 본대학교에 편입해 1891년 아그리젠토 방언에 관한 논문으로 학위를 받았다. 1894년 아버지의 동업자인 부유한 유황 광산주의 딸 안토니에타 포르툴라노와 결혼했다. 하지만 1903년 아내와 아버지가 투자했던 광산이 홍수로 폐쇄되면서 이탈리아어 개인교습을 통해 생계를 꾸려나가야만 했다. 경제적 재난이 낳은 또 하나의 결과로 그의 아내가 정신병에 걸리게 되었다. 경제적 파산과 이로 인한 아내의 정신병, 1차 대전 동안 아들이 포로로 잡혀있던 사건과 같은 고통스런 개인적 삶, 당시 전후 이탈리아의 정치적 혼란, 그리고 데카당티즘 분위기의 소외와 위기의식 같은 문화적 요소 등의 복합적이고 절실한 배경들이 19세기 전통의 인식들과 극형식을 거부하는 그의 작품세계의 기반이 되었다. 피란델로는 대표작으로 꼽히는 세 번째 장편소설 <고(故) 마리아 파스칼>(1904)을 통해 비로소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1898년에 희곡 <에필로그>를 통해 처음으로 연극에 관심을 돌렸지만, 이 희곡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상연이 지연되어 1910년에야 <고삐>로 제목이 바뀌어 상연되었다. <벗어 보아라, 지아코미노>(1916), <나만이 옳다> (1917), <쾌락의 기쁨>(1918), <전과 같이, 전보다 좋게>(1920) 등을 거쳐, 가장 중요한 작품 <작가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1921)과 <엔리코 4세>(1922)를 발표했다. 전자는 드라마 투르기로서, 유럽 연극의 고전적 수법을 초월하여, 오늘날의 안티 테아트르의 계보와 연결되는 것이며, 후자는 흔히 <햄릿>과 비교되는데, 가장(假裝)한 중세의 독일 황제와 자기와의 구별을 할 수 없게 된 미친 청년의 비극을 그린 것이다. 절대적 진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식의 상대성을 보여주는 작품 <뜻대로 생각하세요>를 필두로 한 일련의 희곡들은 1920년대에 그를 세계적인 유명 인사로 만들었다. 그리고 형식을 통해 주제를 표현하는 메타테아트로 형식에 의해 상대주의론이란 주제를 완벽하게 실현해낸 그의 위대한 작품 <작가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은 세계 연극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1925년 로마에 '예술극장'을 연 피란델로는, 제 1차 세계대전 후의 이탈리아 연극부흥에 노력하였으나 경제적으로 성공하지 못하고, 말년에는 외국을 역방하며, 자작의 연출에 힘썼다. 피란델로는 현대연극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34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1936년 숨을 거두기 전에 그는 요란한 공개 장례식을 치르지 말고 '마차와 말, 그리고 마부'뿐인 조촐한 장례식을 치러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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