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브레히트 작 배삼식 번안 '빵집'

clint 2024. 7. 17. 13:52

 

 

거리에서 신문을 파는 임구는 동네 불량배 여포가 
신문을 빼앗아가자 여포어머니에게 일러바친다. 
그러나 여포어머니는 그럴 리가 없다며 몰라라 하고 
여포가 다시 신문을 빼앗으려 하자 덤벼들어 
서로 치고 받다가 여포어머니에게 들키고 마침내 
여포로부터 신문값을 돌려 받는다.
한편 장작화덕으로 빵을 굽는 모가네 빵집에서 일하는 곽씨부인은 
아이가 다섯 딸린 과부이다. 빵집 사장인 모두식이 빵 구울 장작을 
사오라고 곽씨부인에게 시키자 실업자들은 장작 팰 일거리가 생겼다고 
즐거워한다. 그때 부동산 중개업자이자 건물주인인 조지 김이 나타나 
집세의 원금, 이자를 새해가 되기 전까지 갚지 못하면 문을 닫게 하겠다고 
말하고 간다. 곽씨부인이 모사장의 주문대로 통나무를 사가지고 오자 
모사장은 자기가 주문한 적이 없다며 모두 곽씨부인에게 청구하라고 한다. 
목재상이 경찰을 불러 해결하려 하자 모두식은 목재상과 타협을 하고 
대신 곽씨부인을 내쫒는다. 길바닥에 나앉게 된 곽씨부인은 
가재도구 옮긴 대가까지 떠안게 된다.
신문보급소 주임 조중달로부터 이동 신문 가판대를 넘겨받은 임구는 
곽씨 부인의 사정을 듣고 도와주기로 결심하는데....

 

 



'빵집' 혹은 '빵 가게'로 번역할 수 있는 이 작품은 브레히트의 미완성 희곡 10편 가운데 하나로 1929년에서 30년 사이에 쓰여졌다. 이 작품은 당시 베를린에 몰아닥친 경기 침체와 경제 위기, 그리고 수많은 실업자들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의 중심은 다섯 아이를 키우는 과부 니오베 크백(곽씨부인)의 이야기다. 그녀와 함께 젊은 신문팔이(임구), 빵집 주인(모두식)이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세 개의 장면 가운데 '크백부인(곽씨부인)의 '나무'와 '빵으로 싸우는 전투와 마이어(임구)의 죽음'은 1958년 처음으로 의미와 형식(Sinn und Form)"이라는 잡지에 실렸다. 여기에 덧붙인 것이 '푼돈을 위한 싸움이다. 이 부분은 타자로 된 미발표 원고에서 찾은 것이며 노래와 가곡들은 브레히트의 시집에 실린 것이다. 2004 극단미추의 <빵집>은 1967년 베를린앙상블의 공연대본을 기초로 하고 상명대 김창화 교수의 번역본을 참고로 배삼식교수가 번안하였다.



<빵집>에서 빵과 빵집, 제빵실의 구조와 역할을 다시 생각해보기로 하자. 먼저 <빵집>의 내부를 들여다보자. <빵집>은 언제나 먹을 수 있지만 아무나 먹을 수 없는 빵이 들어있는 권력의 공간이다. <빵집>에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먹이사슬이 복잡하게 얽혀있으며 생태계 피라미드 구조가 조직적으로 유지되어 있다. <모가네 빵집>의 주인 모두식 사장, 위로는 그의 목줄을 잡고 있는 사채업자 조지 김이 있고, 조지 김은 큰 은행에 몇 건의 저당이 잡혀있다. 모두식 사장의 수평으로는 조지 김에게 밀린 이자가 갚아야 하는 목재상 노가(家)가 있다. 아래에는 신속, 정확, 완벽하게 일을 처리하는 곽씨 부인이 있고, 궂은 일 마다 않는 실업자들이 빵집 앞에서 일감을 기다리고 있다. 겉으로 봐서는 평화로운 구조가 십 만원 어치의 통나무 하나로 붕괴 위기를 맞이한다. 

 

 

 

 

원래 대홍수는 작은 구멍에서 졸졸 새던 물방울부터 시작하는 거니까. 그 다음으로 빵을 집어 자세히 보자. 여기 기다랗고 못생긴 바케트 빵이 있다. 맹맹한 맛이지만, 질리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무엇을 곁들여 먹어도 잘 어울린다. 굳이 첨가할 것이 없다면 그대로 먹어도 좋다. 허나 오랫 동안 방치되어 딱딱해진 빵은 골치 덩어리다. 질겨서 잘 부셔지지 않고, 장난삼아 때리다간 상대가 버럭 화를 낼지 모른다. 은근히 아프니까. <빵집>의 빵은 후자에 가깝다. 질겨서 잘 씹히지 않지만 싸우기엔 적당하다. 마지막으로 제빵실의 용도를 살펴보자. 제빵실은 숙달된 제빵사가 깨끗한 앞치마와 모자를 쓰고 밀가루와 이스트, 향신료로 빵을 만드는 창조적인 공간이어야 한다. 허나 가장 청결해야하는 곳임에도 <빵집>에서는 뒷거래와 밀약이 성사되는 음흉한 공간이다. 벌건 대낮에 백주대로에선 성사되지 못했던 일들이 제빵실 안에만 들어가면 해결이 되어 나온다. 참 희한한 일이다.

 

 


<빵집>에 나오는 인물들은 먹이사슬의 생존경쟁 속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남으려고 나름의 방식과 변명을 가지고 있다. 극중에서 가장 희화화 된 인물이 구세군들이다. 그런데 왜 하필 기독교인들인가, 란 의문이 들 것이다. 그건 브레히트가 <빵집>을 쓰던 시절 구세군들을 그린 것이다. 귀 막고 못본척하면서 가난한 이들의 고통을 들어주는 척하는 허위에 가득 찬 인물을 빗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