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클라우스 만 '메피스토'

clint 2015. 11. 10. 14:54

 

 

 

 

 

연극배우로서 걸출한 능력을 가진 헨드릭 회프겐. 지방도시의 최고배우였던 헨드릭은 사회지도층과의 결혼, 자신의 빼어난 능력, 그리고 메피스토만이 가질 수 있는 매력, 뛰어난 정치적 감각을 적재적소에 사용하여 베를린의 최고배우, 나치 독일의 문화계를 이끄는 수장이 된다. 그 과정 속에서 그는 사회지도층에 속한 여인과 결혼을 하고 이혼도 한다. 자신의 심기를 건드리는 인물을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하여 해고시키기도 하며 가난에 쪼들려 빚을 지고 그것을 갚을 생각조차 않는다. 연극을 연출함에 있어서 모두를 겁주고 윽박지르기도 하며 기분이 좋으면 멋진 시범을 보여주기도 한다. 권력자의 여인에게 붙어 아양을 떨며 도움을 준 여인이 더 이상 필요치 않으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자신의 매형이었던, 변절한 배우 그륀트겐스를 모델로 하여 쓴 이 작품에서 헨드릭은 연극 ‘파우스트’에서 완벽한 메피스토의 모습, 메피스토를 연기한 것이 아니라 메피스토로 화(化) 하여 그 자체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을 계기로 드디어 원하던 출세의 길을 걷게 된다. 그는 정말 메피스토였을까?
1차 세계대전 이후의 혼란한 독일. 헨드릭은 그저 출세를 하고 싶은 그저 착하지 못한 나약한 인간이다. 공산주의가 정권을 잡을까 싶어 혁명극장에 참여하고 언제 나치정권이 무너질지 몰라 당에 가입하지도 않고 승진을 두려워하기도 한다. 자신의 출세에 방해가 되는 율리에테를 그저 파리로 내쫓을 뿐이며 언제나 마음 한 켠에 얹혀있는 오토 울리히스를 구하기 위해 애를 쓴다. 그는 메피스토가 아니다. 메피스토가 이룬 권력을 동경하였을 뿐. 그는 메피스토를 보여주었을 뿐이다. 바로 메피스토 앞에서. 광기에 사로잡힌 나치 독일. 메피스토는 메피스토로 화(化)한 배우를 보고 흥미로웠다. 어쩜 이리도 자신의 모습을 잘 표현했을 줄이야. 재미있으면 그뿐이다.
그는 결국 메피스토의 유희 속 쓸모 있는 장난감이 되었다. 영광스러운 독일재건이라는 구호 아래 아리아 인을 제외한 모든 인간을 억압하고 유대인을 학살하며 정권에 거슬리는 모든 이들을 고문하고 죽이는 그 속에서 학살을 즐기고 자신들의 배를 채우고 자신들의 유희에게만 영원히 관대한. 그들 사이에서 메피스토는 태어났다. 그리고 그것들에 대해서 너무도 신경 쓰지 않는 내 일이 아니면 그저 남의 일일 뿐인. 우리의 일이라고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대중들의 무관심이 이 메피스토에게 결국 자신들의 피를 영양분으로 바쳤다. 우리의 피를 머금은 빨간 커튼. 그 사이의 열려있는 틈 속으로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이 자리 잡고 있다. 어쩌면 처음부터 자리 잡은 것이 아니라 조금씩 자라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어둠이 무엇인지 모른다. 무엇인지 모르는 것.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혼돈. 그 혼돈 속에서 비이성과 몰상식, 광기와 위선의 힘으로 어둠 속 메피스토는 잉태한다. 상식의 매몰과 광기의 포효로 붉어진 피로 그는 곧 어둠이 된다. 그리고 그 어둠 안에서 세상이라는 연극이 진행된다. 메피스토가 지배하는 어둠의 연극. 어쩌면 이 세상 자체가, 메피스토일지도 모르는. 언제고 그런 몰상식과 무관심이 점령한 세상이 오면 항상 저 깊은 어둠속에서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는 그것이 클라우스 만의<메피스토>다.

 

 

 

 

 

 

 

이 희곡을 각색한 태양극단의 대표 아리안느 무누쉬킨(Ariane Mnouchkine) 이 파리의 한 책방에서 '메피스토'의 불어판을 손에 넣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1936년 망명당시에 쓰여 진 클리우스 만의 소설은 그녀에게 이 소재로부터 연극을 만들어보고자 하는 소망을 불러 일으켰다. 나치치하에서 국립극장장이 된 뛰어난 배우에 관계된 이 이야기에 접하면서, 그녀는 특별히 독일적인 것에 흥미를 느낀 것이 아니라, 이른바 동조자의 유형을 일반적으로 타당하게 그려낸 클라우스 만(Klaus Mann)의 능력에 매료되었다. 헤르만 케스텐 (Hermann Kesten)이라는 사람이 성격지은 '동조자' 의 모습은 이러하다. 커다란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았으나, 살인자의 빵을 먹고 살고, 죄인은 아니나 유죄며 죽이지는 않으나 죽음에 이르게 하는 폭력에 침묵한 수백만의 아주 작은 공범자들 중 하나. 좀 더 끔찍하게 표현하자면 무죄한 자들의 피로 범벅이 되어 있어도 그 발을 핥음으로써 이 수백만의 공범자들은 그 피를 핥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권력을 잡은 사람들을 보호했다는 것이다. 이 소설에 접하면서 아리안느 무누쉬킨은, 스스로 말했듯이, 그 주체가 자신의 나라를 위해서도 현실적임을 깨닫게 되었다. 아울러 그 소재를 무대 위에 올려놓음 으로써 그녀는 독일 내에서 아직도 저자에게 거부되고 있는 정의를 회복시킨 셈이다. 주지하는대로- 1963년 이 소설의 모델인 그윈트겐스가 세계 여행 중 마닐라에서 수면제 과용으로 사망한 후 당시 님펜부르거(Nymphenburger)출판사가 Klaus Mann의 전집출판을 광고하자 그륀트겐스의 양아들 페터고르스키 (Peter Gorski)가 동 출판사를 상대로 명예 훼손죄로 소송을 제기했는데, 우여곡절 끝에 1965년 대법원의 최종심판에 고르스키가 승소했던 것이다. 이 연극공연에 힘입어 1981년 로볼트 출판사는 이 소설을 「불법」 출판하였고, 또 영화로도 만들어져 최근 유럽영화계의 일환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상영되었던 바 있다.

 


이 작품의 내용, 의도, 망명문학에서 차지하는 위치, 그리고 금지 판결의 정치적 배경 등에 대해 W. F 쉘러(Schoeller)는 「킨들러스 리터라투어 렉시콘(Kindler Literatur Lexikon)」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는데, 가장 명료한 작품해설로 여겨져 이를 인용해 본다.
'메피스토: 경력소설' '이 책의 모든 인물들은… 초상이 아니라, 유형'을 제시한 것이라는 해명을 덧붙임으로써 클라우스만은 이미 소설의 출 현과 더불어 이 소설에서 시도된 풍자의 주제와 목표를 사적인 대결의 영역에서 찾으려는 독서 방식을 방지하였다. … 자서전적 재료들 자체에 흥미를 가진 것이 아니라, 대표적인 인물들에서 전개된 신랄한 시대비판 속에 통합시키는 그인 공적인 양식화가 주목된다. 이 시대의 촉매는 헨드릭 회프겐(Hendrik H6fgen)으로서, 그는 구스타프 그륀트겐스(Gustsf Griindgens)의 모습을 분명하게 담아낸다. 그를 둘러싸고 신경질적인 부르주아 사회비평가 테오필 마르더(Theophil Marder, 그는 말년의 칼 쉬테른하임을 닮았다.), 그의 애인이자 후에 부인이 되었던 괴팍한 니콜레타 폰 니부어(Nicoletta von Niebuhr, 그녀는 그륀트겐스의 둘째부인 마리안 호페(Marianne Hoppe)를 자전적 모델로 삼고있는데 잠시동안 클라우스 만의 약혼녀였다가 쉬테른하임의 셋째부인이 된 페멜라 베데킨트(Pemela Wedekind)의 모습도 발견된다)가 등장한다. 그 밖에도 회프겐의 예술적 경쟁자인 도라 마틴(Dora Maitin)은 엘리자베스 베르그너(Elisabeth Bergner)를 생각나게 하고, 막스 라인하르트(Max Reinhardt)를 생각나게 하는 유명한 교수도 모습을 나타내는데, 그는 빈과 베를린의 극장생활을 지배한다....

 

 

 

소설은 통속적인 긴장요소들에도 불구하고 무조건적인 「희극적인」 사회 적응의 심리를 그려내고자 함과 동시에, 클라우스 만에 따르자면, 파시즘의 지배를 가능케 한지적인 동반자의 유형을 특징짓는 저 자학적인 예속성을 그려내고자 하였다. 저자는 이로써 무엇보다도 '부하' (1914)에서 하인리히 만에 의해 그려진 부르주아적 사회비판의 전통적 요소들을 날카롭게 만들었는데, 이 비판은 지배와 성의 주제로부터 정치적인 분석을 발전시켰다. 이에 부응하면서 클라우스 만에게서는 권력과 정신이 기능토록 되어있다. 이러한 대립설정은 그러나 그를 너무나도 도식적으로 빠져들게 했다. 파시스트적인 권력소유자, 「선전난쟁이」괴뵐스, 「파리장군」괴링은 단지 플래카드 식으로 그려졌는가 하면, 지적인 망명자들의 정치적인 가능성들이 과대평가된다. 1935년 소설이 출현하게 된 즈음에 이르러, 클라우스 만의 자기 이해는 다른 대부분의 망명객들과 마찬가지로 대립되는 동기들에 의해 결정되었다. 아직도 승승장구하는 빠른 승리를 거둘 수있는 권력으로 보여 지는 파시즘에 대항하는 직립적인 행동이 상당 히 통속적이고 플래카드 적인 리얼리즘을 강요하는 한편, 나치체제가 공고해졌다는 클라우스 만의 날로 날카로워지는 인식이 파시즘의 기원과 발생에 대한 지적인 해명을 문학적으로 강조하게 된다. 이 소설은 이로써 분명히 이러한 의식 변화의 분할지점에 서있게 되고 망명문학의 본질적인 기록이 된다.… 그륀트겐스의 태도를 추후 정당화하는 판결 속에 「일반은.... 망명자의 시각으로 부터 1937년 이후의 극장관계들에 관한 그릇된 그림을 갖게 되는데 대해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는 생각이 잠복된 채 배포가 금지된 것이다. 판결은 소설 속에서 이루어진 예술, 의식적인 허구 그리고 양식화의 계기를 은폐하고, 작가스스로가 극복하고자 한 의도) 즉 단순한 사실들의 실증주의적인 재생이고자 한 의도를 그에게 덮어씌웠다.」
한마디로 해서 이미 고인이 된 사람의 인격을 보호한다는 구실 아래 예술의 자유가 뒷걸음질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연방 헌법재판소에 계류되어 있는 소송이 아직 판결나지 않은 상태에서 아리안느 무누쉬킨이 그 소재를 택해 그것을 다른 예술 형식으로 바꾸어 놓은 것은 이런 뜻에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그러나 그녀 자신이 이렇게 말한바 있다. "이 희곡의 인물들은 세 가지 방면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그들은 소설로 부터, 역사적인 현실로부터 우리들의 상상으로부터 나온 인물들이다"
이러한 언급은 곧 이 희곡이 단순한 소설 각색을 넘어서고 있음을 암시한다. 말을 바꾸면, 아리안느 무누쉬킨은 자신의 수단을 통해 클라우스 만의 소설과 나란히 하나의 자율적인 예술작품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그 양자는 모두 한 유명한 배우에 대한 비방과는 상관없이 예술과 권력의 의존관계들에 관해 아주 일방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공통점을 여전히 지니고 있다. 특히 희곡은 이점에서 더욱 큰 성과를 보이고 있다.

 

(Klaus Man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