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젊은 조각가인 켄은 교통사고로 척추를 다쳐서 어깨 아래 부분은 완전히 마비가 된 채 병원에 입원해 있다.
식물인간 같은 생활을 6개월 동안 계속한 그는 모든 기관을 자신의 몸에서 제거하고 퇴원하기를 요구한다.
그의 주치의인 에머슨 박사는 퇴원을 시킨다면 6일안에 죽게 된다며 의사로서의 사명의식을 내세워 퇴원에 반대한다.
모든 사람이 켄을 설득하려 들지만 단호히 결정을 내린 그는 죽음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자유의사 때문이라며 퇴원을 강력히 요구한다. 끝내는 청문회가 켄의 병실에서 비공식적으로 열리며, 에머슨 박사는 정신과 의사에게 켄의 정신 상태를 진찰해달라고 부탁한다. 만약 정신적으로 균형을 잃은 상태라면 그를 정신보건법에 의해 영원히 연구대상으로 삼을 작정이다. 그러나 판사는 너무도 명료한 켄의 의식 상태와 감정들이, 단순히 불구인 몸으로 인해서 생긴 정신적 질병과는 거리가 멀다고 깨닫고 그의 죽음을 의미하는 퇴원을 시키라고 판결을 내린다.

오늘날 英國劇界에서 크게 각광을 받으면서 큰 기대를 걸게 하는 극작가는 뭐니 뭐니 해도 브라이언 클라크 (Brian Clark) 이리라. 그는 1932년 영국의 번마우드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극작가로 명성을 떨치기 전까지는 교사이고 배우였었다. 그러나 그는 교단생활과 무대 생활을 병행해 나가면서 20편 이상의 TV 드라마를 발표하여 극작가로서의 눈부신 활약상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그의 작가적 역량이 가장 빛을 발하고 영국 극계에 벅찬 경탄을 안겨준 작품은 플레이 엔드 플레이어스 지의 1978년 최우수 희곡상과 신인 극작가 상을 받은 『아니, 이 生命은 도대체 누구의 것인가?』 이다. 이 작품이 머메이드 극장에서 막이 오르자 획기적인 성공을 거두게 되어 그 후 사보이 극장으로 옮겨 절찬리 속에 장기공연의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그 열풍은 런던에서만 그치지는 않았다. 바다 건너 美國에서도 런던 못지않게 감동과 갈채는 공연을 거듭할수록 그 열도를 더해갔다. 1978년 워싱턴에서의 공연이 그러했고, 그 이듬해인 '79년도의 브로드웨이의 공연이 또한 그러했다. 그리하여 전신이 마비상태에 있는 주인공 역을 맡은 배우 톰 콘티(Tom conti)는 아웃터 크리틱스 서클 상에서 남우주연상을, 토니 賞에서는 최우수 주연상을 차지했다.
이 작품이 관객에게 충격과 함께 그처럼 감동적인 매력을 느끼게 하고, 폭발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근본요인은 어디 있을까?

요컨대 이 작품의 제목부터가 주요한 시사를 던져 주고 있듯이, 현대인이 부딪히고 있는 절박한 상황, 즉 기계화, 집단화, 기능화, 자동화된 產業主義 문명이 人間의 精神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침으로써 자유인으로서의 능력은 물론 자연인으로서의 감정 역시 마멸되는 과정을 예리하게 제시해준 데 있다. 주인공 캔 해리슨은 젊은 조각가이다. 그는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로 척추에 부상을 당해 전신이 마비되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된다. 그러나 회복은 절망적이다. 다만 현대의학의 힘으로 식물인간처럼 생명을 하루하루 유지해 나갈 뿐이다. 캔 해리슨에 있어서 오직 건전한 부분은 머리와 의식뿐이다. 자기의 치명적인 병상을 깨달은 그는 죽기를 결심한다. 그리하여 퇴원을 병원 측에 간청하나, 의사들은 그의 간청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다만 의사로서의 소명의식 밑에 그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데만 급급할 뿐이다. 켄 해리슨은 변호사에게 일종의 감금상태와 다를 바 없는 병실생활에서 벗어나게 해줄 것을 간청한다. 그리하여 변호사의 적극적인 호응으로 재판이 열리게 된다. 판사는 켄 해리슨에게 하등의 정신적 이상이 없다는 판결을 내린다. 그리하여 그의 갈망은 이루어지게 된다.

우리는 여기서 캔 해리슨의 퇴원문제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실 그가 퇴원을 갈망하는 심적 동기는 병원생활의 권태가 아니다. 더구나 자기의 치명적인 병에 대한 절망과 체념에서도 아니다. 말하자면 그가 퇴원을 갈망하는 것은 인간의 자유와 생명의 존엄성과 자연인으로서의 감정의 쟁취를 의미한다. 그와 동시에 죽음을 상징한다.
켄 해리슨에 있어서 외부는 그야말로 조직화되고 사물화된 거대한 기구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의 원형을 위협하고 일그러뜨리는 「억압된 공간」에 불과하다. 그는 병원마저 그렇게 생각한다. 그는 병원을 생명의 전당으로서 보다는 억압된 기구로 느낀다.
우리는 이 작품에서 전신이 마비된 주인공 켄 해리슨을 통해 자기의 생명마저도 자기 자신이 어쩔 수 없는 비극적 상황속의 현대 인간상을, 그리고 인간의 본체로 돌아가려는 절박한 부르짖음을 듣게 된다. 처절한 모습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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