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후안 마요르가 '다윈의 거북이'

clint 2015. 11. 10. 14:20

 

 

 

 

 

1835년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은 갈라파고스(스페인어로 '거북이’를 의미한다) 섬 탐험에서 자신의 연구를 위해 세 마리의 거북이를 영국으로 가져온다. 그중 '해리'라 불리던 한 마리가 처음 100년은 수컷으로 알고 이렇게 불렀으나 최근 50년 전부터 암컷으로 밝혀져 '해리엇'으로 이름이 바뀐다) 2006년 호주에서 숨지는데 이 기사를 접한 작가 후안 마요르가는 흥미로운 연극적 상상력을 통해 '다윈의 거북이' 라는 작품으로 2008년 마드리드 무대에 선보였다.

 

 

 

어느 날 밤, 한 유명한 역사 교수 집에 해리엇이라는 부인이 찾아와 교수가 저술한 역사책에 오류가 있다고 지적한다. 교수는 충분한 자료와 연구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며 불쾌감을 표시하지만, 해리엇은 유럽 현대사에 대한 매우 구체적이고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은 에피소드들을 언급함으로써 교수의 마음을 움직인다. 드레퓌스 사건, 베르됭 전투, 게르니카 폭격 등에 대해 새로운 이야기를 쏟아놓는 이 나이 든 여인에게 교수는 묻는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십니까?" "난 다윈의 거북이예요." 다윈과 함께 갈라파고스 섬을 나온 거북이, 바로 그 거북이가 진화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해리엇은 유럽을 돌아다니며 자신이 직접 보고 겪었던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 진술을 해줄 테니 서류가 없는 자기가 죽기 전에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청한다. 살아있는 증인을 얻게 된 교수는 학계에서 누릴 명성을 생각하며 해리엇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후에 해리엇의 정체를 알게 된 의사와 교수의 부인도 각자 자신들의 이익을 생각하며 해리엇을 가장 걱정해 주고, 가장 잘 보호해 주는 인물들로 변해간다. 하지만 해리엇은 이용가치가 없어지면 자신을 해치려 하는 세 사람의 마음을 알아채고는 생존을 위해서 퇴화를 가장한 반전을 보여준다.
갈라파고스 섬을 빠져나온 거북이 해리엇은 인류가 이룩한 문명세계에 대해 감탄했다. 철도, 배, 트럭… 섬에 있는 친척들이 이를 못 보는 것에 대해 아쉬워하며 인간이 진화의 마지막 단계라는 것을 확신했다. 그러나 산업혁명, 두 차례의 세계 대전, 게르니카 폭격, 러시아 혁명과 페레스트로이카, 베를린 장벽 붕괴 등의 굵직굵직한 유럽 현대사를 바라보고 체험하면서 인간에 대한 경외감이 경계심과 두려움으로 바뀐다. 인간이 얼마나 나약하고 얼마나 잔인한 존재 인지 깨닫게 된 것이다. 거북이였던 해리엇이 인간처럼 처음으로 서게 되고, 처음으로 말을 하게 된 것도 인간의 잔인함과 폭력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되었다. 게르니카에서 민간인들을 폭격할 때 너무 무서워 자신의 느림을 저주하며 도망치다가 사람처럼 서게 되었고, 바르샤바 게토에서 유태인 아이를 발견하고 다가가는 독일 병사들에게 "안 돼!”라고 외치며 말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유럽에서 유태인으로 산다는 것은 동물인 거북이로 산다는 것보다 훨씬 더 위험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준다. 그리고 죽기 전에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원하는 지금 해리엇은 교수와 그의 부인, 의사를 통해서 다시 인간의 야망, 이기주의, 탐욕의 희생자가 될 위험에 처하며 오늘날 사회의 전도된 가치관과 병든 인간성을 풍자적으로 보여준다.

 

 

 

인간은 과연 진화했을까? 아니, 진화하고 있을까? 작품에서 교수는 인류가 더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오랜 시간 인간을 지켜본 해리엇은 인간이 뭔가를 배우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새로워진 게 없다고 말한다. 섬에 돌아가고 싶은 이유도 인간에게서 멀어지고 싶은 마음에서다. 과학과 산업의 발전으로 많은 편리함을 누리고는 있지만 작품에서처럼 인간은 동물 거북이보다 더 비인간적이고 더 냉혹한 무시무시한 존재로 변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극작가 후안 마요르가의 거북이가 인간으로 진화했다는 상상, 연구소나 동물원에 갇혀 있지 않고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역사의 산 증인이 됐다는 상상은 우리로 하여금 과거 역사를 기억하고 그 의미를 보다 객관화시켜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다. 또한, 진지하고 무거울 수 있는 주제에 대해 다양한 공감을 유도하며 재미있게 극을 즐길 수 있게 해주었다. 이렇듯 과거의 문을 열어 현재를, 현재의 우리를 보게 하는 것은 과거의 역사를 기억함으로써 인간의 잔인함에 대해 경고하고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희망하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이 되었지만 해리엇에게는 여전히 지고 다녀야 할 무거운 등껍질이 있듯이 우리에게는 망각할 수 없고 망각해서는 안 되는 과거 역사의 무게가 있는 것이다.

 

 

 

작가소개
후안 마요르가 (Juan Mayorga)는 1965년 마드리드에서 태어나 현재 스페인, 특히 마드리드를 대표하는 극작가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대학에서 수학과 철학을 전공했으며 1997년에는 독일의 철학자이자 평론가인 발터 벤야민 (Walter Benjamin, 1892~ 1940)에 대한 연구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또한, 선생님으로 5년간 마드리드와 근교의 중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쳤으며 1998년부터 2008년까지 마드리드 드라마 예술 왕립 학교에서 희곡 창작과 철학을 가르쳤다. 마요르가는 연극은 즐거움과 감동 외에도 관객들이 자신의 삶과 자신이 사는 세상을 조명해볼 수 있는 뭔가를 던져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관객의 경험을 풍성하게 하면서, 관객의 느낌이나 상상력에 도전하면서, 과거를 기억 하고 현재를 비판하며 가능할 것 같은 또 다른 세상을 꿈꾸는 공간이 연극이라고 한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선한 칠인(Siete hombres hueno.s)>(1989), 〈스탈린에게 보내는 연애편지(Cartas de amor a Si;ilin)>(1999),<뚱뚱이와 홀쪽이(El Gordo y d Flaco)>(2000), 〈천국으로 가는 길 (Himmelweg. Camino del cielo)>(2003),<하멜린(Hamelin)>(2005, 국립연극 상, 막스 상 수상),<마지막 줄 소년(El chico de la ultima fila)>(2006, 막스상 수상), 〈영원한 평화(La paz perpe- tua)>(2008) 등이 있다. 이외에도 스페인이나 다른 나라의 고전 작품들을 각색하기도 한다. 참고로 막스(Max) 상은 1998년부터 스페인 작가, 출판인협회 회원들이 같은 분야의 동료들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한 해 동안 무대에 오른 공연물들 중 가장 우수한 작품을 투표로 결정해 주는 상이다. 이는 브로드웨이의 토니상, 영국의 올리버 상에 해당되는 매우 권위 있는 상으로 2009년에 후안 마요르가는<다윈의 거북이>로 작가 부분에서 이 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은 '09. 10월 김동현 연출로 서울 시립극단애서 한국초연으로 공연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