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헨릭 입센 '대건축사 솔네즈'

clint 2015. 11. 10. 14:17

 

 

 

 

 

입센의 상징극이 연극비평의 소재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 이후이며, 1980년 스타얀(Styan)이 '현대연극의 이론과 실제'(Modern Drama in Theory and Practice) 에서 이 문제를 거론한 것을 효시로 하여. 우리나라의 입센 연구자들 사이에서 논의되게 된 것이다. 현재 양립되어 있는 논의 점은 입센은 상징주의자냐, 혹은 리얼리스트로서 상징을 취급하였을 따름이냐 하는 점에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 문제는 해결을 얻지 못한 채 그냥 그대로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상징주의니 사실주의니 하는 입센 연극의 '이즘' 이 아니라. 평생을 두고 변치 않은 그의 신념. 즉 "연극이란 진실 된 자기 생활의 반영이다." 라고 하는 명제가 이 작품 속에 어떻게 투영되고 있으며. 또 그가 추구하는 연극예술을 우리의 연극적 정서에 어떻게 적용시켜 산 연극으로서 뿌리를 내릴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대건축사 솔네즈」 (The Master Builder. 1893) 는 상징과 신화를 교묘하게 배합하여 인간의 야망과 인간능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극이다. 이 극에 비해 그의 초기 낭만주의 비극은 희랍 비극과 셰익스피어 극의 영향을 받아 운명에 도전하는 한 영웅의 삶을 묘사하고 있으며. 비교적 차원이 높은 중기의 사실주의 극에서는 가정과 사회 문제를 중심으로 당시 스칸디나비아에 난무하였던 온갖 악덕과 비리를 풍자하였고. 「들오리」(The Wild Duck. 1885)를 기점으로 말기의 상징주의극에 와서는 고조된 사회적 관심이 그에게 과격한 동요를 주어 「헤다가블러」(Hedda Gabler, 1891)에서 여성의 문제와 인간능력의 한계를 노래한 시점이 곧 그대로 '대 건축사 솔네즈'로 이어간다.
「대 건축사 솔네즈」에서 입센은 감각과 정서와 상상을 중요하게 여기는 초기의 낭만주의적 극 구성방식을 표방하면서도 감각의 대상이 되는 실제의 사물을 즐기려 하지 않고 그것이 희미하게 암시한다고 생각되는 또 다른 세계를 그려내고 있다. 현실적인 사물들이 암시하는 영원히 아름다운 세계는 아무나 볼 수 없고 단지 섬세한 감각과 영감이 부여된 사람만이 직관할 수 있는 신비로운 세계이다. 이런 의미에서 입센은 세계 연극의 한 전통으로 되어 있는 상징주의의 근원적 중인에 해당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입센에게는 이 작품의 모든 것이 형언할 수 없는 신비로운 세계에 대한 상징이 되므로 모든 심상을 상징으로 사용하려 할 뿐 아니라. 상식적이고 자연적인 상징을 피하고 극도로 개인적인 상징을 창조하려 하기 때문에 난해할 수밖에 없다. 결국 관객은 굉장한 부담을 안게 되지만, 무한한 암시의 세계를 더듬는 상상의 자유를 허용 받는다는 점에서 의미의 영역을 고정시킨 종래의 연극이 줄 수 없는 정신적 체험이 가능케 된다.

 

 

 

일찍이 버나드 쇼는 "입센니즘의 정수"(The Quintessence of Ibsenism. 1891)에서, 셰익스피어는 다만 인간의 상황(인간 행위의 적, 부적)을 노래했지만. 입센은 인간이 처해 있는 상황을 무대 위에 올려놓았다. 고 설파하였다. 「대 건축사 솔네즈」가 그러하다. 그리고 이 비극은 당시 노르웨이와 서유럽 전역에 만연한 부르주아의 사회악을 간접으로 풍자하고 있지만 희랍 비극이나 셰익스피어 극에서 볼 수 있는 주인공과 적대자의 날카로운 대립이라든가, 그 어느 한쪽이 쓰러지지 않고서는 더 이상 사건이 진전될 수 없는 급박한 상황을 묘사한 것도 아니다. 주인공 스스로의 내적 자아가 공허한 현실적 지대에서 사회악과 서로 충돌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극의 도입부에서는 설계실 안에서 솔네즈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푸념과 그 부정적 분위기를 우리 앞에 전개시켜준다. 오랫동안 솔네즈와 함께 일해 오면서 건축술과 설계 방법을 터득해온 라그나는 부친(부로빅)의 권유와 강압에 못 이겨 수년 전 약혼한 미모의 카자 휘슬리와 결혼하여 이제부터라도 솔네즈로부터 독립하여 그들 둘만이 갖는 행복한 생활을 꾸려가기로 결심한다. 동료를 떠나보내는 솔네즈의 태도는 인간의 참된 우애 관계와 범신론적 사랑에서 볼 수 있는 그것이다. 젊은이들이 독립하여 사회의 역군이 되려는 의지는 조금도 비굴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솔네즈는 오히려 그들에게 감사의 마음과 부끄러움을 느낀다. 한편 카자 휘슬리는 결혼 상대인 라그나보다는 지금까지 자신을 보살펴온 솔네즈의 우애정신과 범애정신에 더 많은 애착을 느낌과 동시에 문명의 이기 속에서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는 라그나의 인간상보다는 솔네즈에게서 받은 남성으로 서의 성실한 면과 그의 기독교적 사랑을 더욱 동경하기에 이른다. 그러기에 그녀는 지금이라도 솔네즈에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고 솔네즈의 진정한 사랑을 확인하려드는 것이다. 지금은 건축업의 정상에 서 있는 솔네즈 - 그는 인간과 사건을 지배하는 초감각의 힘을 소유하고 싶어 하지만.
부로빅 : 난 그런 말은 하지 않았네. 그들은 자네와의 설계 계약을 취소한다고 했어.
솔네즈 : 결국 그랬었군요. 할바드 솔네즈! 젊은 세대들에게 기회를 주어라! 가장 젊은 사람에게… 그리고 기회를 만들어라!
설계실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사회적 지위와 그들의 안전한 일자리의 보장과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불투명한 자신의 명성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다. 솔네즈가 건축사로서 최초의 성공을 거두게 된 것은 집안의 화재 사건으로 두 자식을 잃은 이후부터였다. 두 자식에게 못 다한 정성과 아내(알렌)에 대한 애정과 자신의 소망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당장에라도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듯 그는 항시 불안감과 공포감과 권태감으로 설계실 내부의 동료들과 일해 왔다. 그에게 생존을 이끌어가기에 족한 가치라고는 아무것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기에 그는 늘 삶에 대한 권태와 회의를 느끼면서 하루하루의 생활을 영위해온 것이다. 그에게 있어 권태는 하이데거의 말대로 '무 특정' 이며, 그것은 그의 인생 전반에 걸쳐 있다. 솔네즈는 설계실 내부에서 일하는 부로빅의 독선주의와 젊은 세대들이 자신을 능가할지도 모른다는 심리적 압박감에 항시 사로잡혀 있다.
허달 박사 : 세대들? 벌써 죽을 걱정을 하나보군요. 솔네즈 선생.
솔네즈 : 행복이란 잠시 스쳐가는 바람 같은 거죠. 언젠가 젊은 세대들이 날 찾아와 기회를 달라고 소리치며 내 방문을 두드리겠지. 그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동료들의 멸시와 냉대와 그들의 개인주의와 독선. 그리고 지난날의 화재 사건으로 삶의 지표를 잃어가고 있는 솔네즈에게 어느 날 여주인공 힐다 봔겔이 등산용 배낭을 메고 솔네즈의 설계실에 들어온다. (제1막의 종반부). 힐다는 그해 여름 솔네즈가 등산길에서 우연히 만난 미모의 젊은 아가씨다. 이제 부터 그녀는 솔네즈 곁에서 상담역이나 조언자적 역할을 해준다. 그녀는 부로빅에게 다른 사업을 할 기회를 주어서라도 솔네즈의 젊은 세대에의 증오와 경쟁의식을 없애려 한다. 힐다의 꿈은 솔네즈와 그녀 자신을 위한 왕국의 건설이며. 한편 솔네즈의 목표는 힐다와 그의 아내와 화재로 인한 두 자식을 위한 안락한 집을 짓는 데 있다. 입센은 이 안락한 가정을 인간의 정신적 회복의 장으로 상징하고 있는 듯하다. 인물들은 사회의 무질서와 죄악으로부터. 그리고 부르주아의 압력으로부터 도피하여 그들만의 세계에서 영원한 행복을 찾으려 한다. 힐다 봔겔에게 이곳은 그녀가 과거에 짓눌리고 억압받았던 환경으로부터의 도피구요. 솔네즈와 꿈을 키워나가는 안식처이기도 하다. 사회로부터 억압받은 등장인물 개개의 심리묘사와 그들 내면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불안감과 공포감과 위기감의 조성이 입센의 도입부의 처리 수법이며. 그의 모든 상징주의 연극에서 보여주는 도입부에서의 암시 효과라 하겠다. 입센은 도입부에서 늦은 공격점을 사용한다. 따라서 극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직전의 선행 사건들은 관객의 상상력에 의탁할 수밖에 없다. 입센이 아름다움을 보는 눈의 그 근저에는 이 늦은 공격점에 따라서 대본의 가치를 평가하려는 시야가 마련되어 있으며. 연극의 모든 외형은 그에겐 하등의 가치도 없다. 따라서 관객은 개막 장면 이전의 선행사건의 실마리를 단순한 사실로서가 아니라 상징적 이미지와 암시의 세계를 파악해야 하는 상당한 부담을 안게 된다. 이를테면. 부로빅의 독선적 행동이나 힐다 봔겔의 출현. 그리고 솔네즈의 젊은 세대들에 대한 경쟁의식은 이미 선행 사건의 실마리를 구축하는 데 충분한 동기 부여가 되어 있다.

 

 

 

제 2 막의 전개 부분은 건축사 솔네즈의 착잡한 심경과 강한 의지력을 보여주는 힐다의 인물 성격묘사에 주력하고 있다. 힐다는 이제는 그 옛날을 생각할 때가 아니라고.
강한 의지력이 문제죠. 사람은 그것만 있으면 무엇이든 극복해낼 수 있을 테니까요.
하고. 솔네즈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고 있지만, 꿈의 첨탑에 대한 생각은 알렌의 끈질긴 만류에도 불구하고 줄기차게 힐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으며. 솔네즈의 꿈이 한시라도 깨질까봐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다. 힐다가 꿈의 첨탑을 생각할 때 그것과 동시에 언제나 그녀의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솔네즈의 모습이다. 솔네즈는 유명한 건축사이며 힐다가 그를 숭배하는 데에는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힐다는 그 누구보다도 솔네즈에게 애정과 친밀감을 느끼는 것인데. 그것은 솔네즈의 꿈과 야망이 자신의 그것과 마찬가지였다는 점에서 자기가 느끼는 것은 그도 이해해줄 수 있으리라고 동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힐다의 관심을 가장 끄는 것은 솔네즈가 고소공포증의 고통을 느끼고 있다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의 화려한 건축사 생활의 마지막 수년을 끝까지 장식해보겠다는 외지의 표현이다. 고소공포증은 힐다에게는 솔네즈의 인간 용기의 존중을 예상한다는 상징적인 의의를 갖는다. 힐다에게 솔네즈는 고통을 참아내고 위대함을 성취하는 인간상으로 비춰지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솔네즈가 힐다의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알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힐다 봔겔이 위기와 시련에 부딪쳤을 경우라는 것은 지당한 노릇이다. 힐다는 솔네즈에게 힘과 생명력을 불어 넣는 동반자의 역할을 수행할 뿐만 아니라 그의 행동의 절대적인 기준과 지침의 구실도 한다.
힐 다 : 당신은 날 공주님이라 부르셨어요. 그러니 제게 왕국을 주세요.
솔네즈 : 이 모든 것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란 말이오?
힐 다 : 당신의 약속을 날더러 취소하라는 말씀이세요?
「대 건축사 솔네즈」의 또 하나의 연극적 특색은 최종 막의 클라이맥스에서 보여주는 의무 장면이 극의 주제는 물론 모든 연극적 요소와 혼연일체로 융합되어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사실 2막에서 힐다의 권유와 그녀의 사랑과 헌신으로 말미암아 솔네즈의 정신적 분규는 어느 정도 치유되긴 했지만 그가 옛날 집안의 화재 사건으로 인한 정신적 타격과 젊은 세대를 향한 적개심은 좀처럼 치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 순간 힐다는 또 다시 바이킹족의 용맹과 그들의 스토이시즘(인간 용기의 존중)에 관한 이야기를 솔네즈에게 들려준다. 이로 인해 이제서 솔네즈의 심경에는 변화가 생겼으며 꿈을 이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그의 전신을 사로잡게 된다.
솔네즈 : (농담조로) 감히 건축사가 왕국의 공주님을 보러 올라갈 수 있겠소?
힐 다 : 원하신다면 요.
솔네즈 : (자신감에 찬 어조로) 건축사 솔네즈! 난 올라갈 것이오.
반면에, 설계실에서 일하는 라그나의 솔네즈에 대한 반항의식과 불신과 냉소는 종전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카쟈 휘슬리의 배반과 그녀에 대한 적개심으로 말미암아 이 젊은이에겐 놀랄 만치 모든 것이 다 이전 그대로의 상태로 남아 있다.
라그나 : 집을 만들고도 집 꼭대기에 오르지 못하는 건축사 나리를 보러 온 거죠.
힐 다 : (화를 내며) 그래서요?
라그나 : (솔네즈를 경멸하듯) 그는 내 친구들. 그리고 날 파멸시키려 했소. 할바드 솔네즈! 힐 다 : 그래요. 이젠 꼭대기에서만 그를 볼 수 있을 거예요.
라그나 : (여전히 비웃으며) 그렇다면 정말 다행이군요. 그 사람은 절반도 오를 수 없소. 금방 현기증을 느낄 거요.
탑의 꼭대기를 오르는 솔네즈를 허달 박사가 직접 목격하고 난 이후부터 지금까지 마음에 간직해왔던 솔네즈에 대한 라그나의 적개심도 그 순간 어느새 사라지고 만다. 알렌은 허달 박사와 라그나를 옆에 두고 공포에 떨며 하느님께 기도한다. 숨을 죽이고 기도하는 알렌의 가슴속엔 화환을 건 솔네즈의 모습 뒤의 처참한 광경이며. 시체의 모습으로 심장이 조여드는 듯한 공포를 느끼고는 그의 영혼을 위하여.
알 렌 : 오, 솔네즈! 하느님. 제발 … 솔네즈! 그일 데려와야 해요.
하고 길고도 긴 기도를 다시 올리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주지되었듯이, 입센의 「대 건축사 솔네즈」는 버나드 쇼의 말처럼 인간이 처해 있는 상황을 노래하고 있다. 이상과 현실이 교차하는 지대에서 입센은 솔네즈라는 야심에 찬 건축사를 내세워 이상이 현실을 지배한다는 그의 독특한 드라마투르기를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입센은 인간 의 원초적 선악과 인간의 어리석음을 풍자하고 있다. 그러나 그 비판의 양상은 자못 복잡하다. 주인공을 포함한 극중 인물들의 강한 욕구에서 생겨난 개인주의와 당시 사회를 지배하였던 부르주아의 공리주의 - 이 두 서로 모순된 견해가 극을 지배하긴 해도. T. S. 엘리엇의 객관적 상관도(objective correlative)나 관객에 대한 흥미 유발과 극적 서스펜스, 그리고 위기감 조성에 관한 문제는 입센의 엄격한 극 구성 방식과 비교 해볼 때 그리 강하게 어필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여주인공 힐다의 인물 성격 묘사나 라그나, 부로빅, 그리고 차위의 인물들의 이미지가 더욱 상세하게 묘사되고 있다. 후기의 상징주의 비극에서는 등장인물들의 격렬한 행동에서 빚어진 갈등구조는 찾을 길이 없다. 어떤 행위가 가져다주는 결말을 관객에게 선사할 뿐이다. 다시 말해서. 행동 그 자체는 입센에게 하등의 묘미도 흥미도 없다.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실체는 행동 그 자체가 아니라, 그 행동을 연결하고 도와주는, 그리고 그 행동의 배후에 숨어 있는 무한한 상징의 세계다. 여기서도 관객은 극중 인물들의 행동양식을 극의 줄거리나 주제. 그리고 입센의 정교한 무대미술에 관련지어 고도의 상상력을 동원해야 한다는 큰 부담을 안게 된다. 특히. 극의 전개부까지 극중 인물들의 대사 또한 일상성과 사실성을 초월하여 함축적이고 상징성을 띠게 되며. 언어를 연결시키는 원칙인 문법 등은 조직적으로 파괴되고 극도의 암시성이 남을 뿐이다.

 

 

 

우리는 이 극의 주제론. 즉 솔네즈가 스스로 축조한 첨탑에서 최후를 맞는 '죽음의 문제' 를 한 번 더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 입센의 극 구성방식이나 그의 상징적 수법에 대해서는 이미 밝혀졌기에 여기서는 그 언급을 피하기로 하고, 지금까지 많은 연극이론가들 사이에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솔네즈의 죽음의 문제 과연 그의 죽음이 입센의 극 구성기법에 알맞은 개연과 필연에 의한 죽음인가 - 를 해결해볼 필요가 있다. 솔네즈는 건축사로서 성공을 거두기 이전에 벌써 수차례의 건축을 하여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격심한 타격과 부상을 입지 않을 수 없었던 노르웨이 건축사들의 표징이며. 그의 세계는 종교와 역사와 사회와 문화와 전통에 수반되는 모든 가치에 대한 신념의 완전한 상실이며. 인간의 온갖 영위에 대한 불참과 능동정신의 결여이며. 입으로는 이상주의를 부르짖으면서도 실제 행동에 있어선 그것을 배반한 선배 건축사들에 대한 불신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입센이 당시에 처해 있었던 상황 하나만을 가지고 이 작품의 죽음의 문제를 규정짓는다는 것은 작품 분석의 일면은 될망정 그 전체를 망라한 것이라곤 해석할 수 없다. 얼핏 보기에 솔네즈의 죽음이 희곡구성과 그 내용 면에서 관객이 납득할 만 한 충분한 동기부여가 되어 있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대 건축사 솔네즈」를 중심으로 한 입센의 상징주의극들은 종전의 희랍 비극이나 셰익스피어의 연극에서 찾아볼 수 있는 주인공들의 성격적 결함과 그들의 격렬한 행동으로 인한 죽음과는 그 성격을 달리한다. 다시 말하면. 그들의 죽음이란 죽음을 거점으로 하여 보다 나은 삶을 포착한 것이 아니라, 그러한 죽음으로 인하여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뿐이었다. 입센은 이러한 죽음의 배후에 무한한 암시와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죽음 그 이전에 주인공이 처해 있었던 상황은 죽음으로 인한 신생 추구라는 극의 주제와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으며. 개막 장면 이전의 선행 사건을 통해 관객은 얼마든지 그 의미를 유추해낼 수 있다.입센의 정교한 무대미술이나 지시문에서 그러한 상징적 수법을 우리는 수없이 보아왔고. 또 그러한 상징의 세계가 「대 건축사 솔네즈」뿐만 아니라 그의 후기 작품 전체를 지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