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플롯
<스페인 연극>은 일종의 메타드라마로서 그 구성이 매우 독특하다. 그것은 이 극이 극중 현실, 극중극, 극중 극중극이란 삼중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극중 현실 속의 인물들은 모두 배우들로서 이 극은 무엇보다도 배우들의 이야기다. 배우란 직업에 대한 그들의 견해, 연출 및 작가와의 관계, 그들이 현재 연습하고 있는<스페인 연극>에 대한 이야기 등이 극중 현실 속에서 배우들의 독백으로 제시되어 있다. 극중극은 그들이 현재 연습하고 있는
<스페인 연극>이라는 작품으로, 스페인의 젊은 작가 올모 파네로가 쓴 것으로 되어있다.<스페인 연극>에 나오는 등장인물 중 오렐리아는<불가리아 연극>이라는 작품을 연습 하고 있으며, 이<불가리아 연극>이 극중 극중극에 해당 한다. 이처럼 이 극은 극중 현실 속의 배우들의 독백과<스페인 연극>, 그리고<불가리아 연극>이라는 삼중구조로 되어 있다. 작가는 공연에서 극중 현실과 극중극이 단절 되지 않고 마치 음악에서의 레가토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지기를 원하고 있어 현실과 허구가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2. 문체
이 극의 등장인물들이 나누는 대화는 인용 부호 없이 제3자의 말을 직접화법으로 전하고 있어 독자를 혼란에 빠뜨린다. 따라서 '내가’라는 표현은 화자를 나타낼 수도 있고, 화자가 인용하는 제3자가 되기도 한다. 이와 같이 인용 부호 없이 제시되는 대화는 구어체 문장을 그대로 옮겨 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물들의 화제가 갑자기 바뀌는 것도 마찬가지다.
인물들은 한 가지 이야기에서 벗어나 갑자기 다른 것으로 화제를 바꾸고 있는데, 이것은 합리적 논리에 입각한 전통적인 극형식을 벗어나는 것이다. 작가가 극중 현실 속의 인물들의 독백과 극중극인<스페인 연극>으로의 전이가 끊임없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 속한다. 이것은 작가가 논리적으로 재구성된 문어체보다는 구어체의 형식을 더 따르기 때문이며, 우리의 의식의 흐름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자 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 이렇게 화제가 바뀔 때는 대부분 잠시 침묵이 있게 되지만 작가가 굳이 이것을 표현하지 않는 것도 특징적이다. 이 극의 극중 현실 속에 등장하는 배우들의 독백은 매우 시적이다. 이 독백의 많은 부분을 작가는 산문 아닌 운문으로 쓰고 있으며, 상징적이고 시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들 독백들은 종종 깊은 여운을 남기기도 하는데, 그것은 이 독백들이 배우들의 삶과 연극, 그리고 사랑에 대한 성찰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극중 현실 속의 독백 중에는 상상의 인터뷰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인물이 머릿속에서 상상하는 인터뷰로서 인터뷰 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처럼이 극은 많은 부분이
상상속의 이야기라는 특징이 있으며, 이것은 작가에게 있어 상상의 세계가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 가늠하게 한다. 극중 인물 누리아는 연극이나 영화 같은 허구의 세계 속에서 자신이 어떤 존재든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매우 행복해한다. 상상의 세계인 허구가 현실보다 더 현실처럼 느껴지고 이러한 허구의 세계에서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3, 줄거리
이 극은 무엇보다도 배우들의 이야기이며 나아가 진정한아 아이덴티티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한다. 작가는 종종 등장인물을 통해서 어느 것이 진정한 자아이고 진정한 현실인지 묻고 있으며, 과연 이게 바로 '나'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존재하는지 자문한다. 이 극이 삼중 구조를 띠면서 한 배우의 아이덴티티가 계속 바뀌게 되는 것도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물어보게 되는 이유가 된다. 작가는 유일하고도 고정된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오히려 그는 연극 속의 인물이 바로 나 자신이며, 현실의 나 이상으로 나라고 말한다. 그래서 배우도, 관객도 등장인물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극중 현실 속의 배우들과 그들이 연기하는<스페인 연극>에 나오는 배우들의 캐릭터가 거의 일치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작가의 생각이 반영된 것이라고 볼수 있다.
<스페인 연극>은 스페인의 한 가정을 중심으로 진행 된다. 이 극에 대해 극중 한 배우가 '가족 코미디'라고 정의 하는데, 그것은 체호프가 자신의 작품들을 '코미디'라고 부른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여겨진다. 체호프의 작품에서처럼 이 극에서는 오히려 삶의 비극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인물들은 각자가 짊어져야 하는 삶의 무게로 고통스러워한다. 등장인물은 모두 다섯 명으로 남편과 헤어진 뒤 홀로 사는 필라르(60~65세)와 그녀의 새 애인이자 건물관리인인 홀아비 페르낭(55~60세), 필라르의 두 딸 누리아(약 40세)와 오렐리아(40~45세), 그리고 오렐리아의 남편 마리아노(50세) 등이다. 누리아와 오렐리아는 둘 다 배우인데, 동생인 누리아는 데뷔하면서 곧 큰 성공을 거두고 유명해진다. 반면 언니인 오렐리아는 먼저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변두리 극장을 전전하는 연극배우다. 이들 다섯은 모두 매우 독특하다. 이들은 가족이지만 만나면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다. 상대방의 약점을 찌르고 그가 상처받는 것을 은근히 즐긴다. 전남편과 헤어져 혼자된 필라르는 예순이 넘은 나이지만 새 남자를 만나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어 한다. 그녀는 아이들 앞에서 떳떳하게 “내 약혼자”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녀의 두 딸은 이러한 엄마를 비아냥거리고 때로는 모욕적인 언사까지 쓰게 된다. 서로 묘한 경쟁심을 느끼고 있는 오렐리아와 누리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누리아는 언니에 대해 은근히 우월감을 느끼고, 동생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오렐리아는 누리아의 사소한 말에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녀의 신경증 발작을 진정시키기 위해 마약이 필요할 정도가 되었다. 오렐리아와 마리아노 커플 또한 행복하지 않다. 마리아노는 수학선생이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비극이라고 말하는 염세주의자이고, 매사를 부정적으로 보는 알코올 중독자로서 항상 오렐리아와 부딪친다. 이들에게는 이제 사랑은 끝나고 파국만이 남은 것처럼 보인다.

작가는 이 극을 통해 사람들 사이의 의사소통의 어려움과 단절, 그로인한 고독, 그리고 시간의 흐름에 따른 인간과 사물의 변화에 대해 말하고자 히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의 감정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이 인간관계를 변질시키고 고독하게 만드는 원인이다. 그것은 바로 멈추지 않는 시간 때문이기도 하다. 필라르의 이혼, 오렐리아와 마리아노 부부의 단절된 모습, 셋째 딸 크리스털에게 애인이 생긴 사실, 또 세르히오 모라티라는 유명 인사가 바람난 부인으로 인해 자살을 시도한 사건 등은 바로 인간의 감정이 시간에 의해 변질됨을 보여주는 것이다. 작가는 또 시간은 우리가 어린 시절 품었던 꿈을 뒤로 물러가게 한다고 보고 있다. 마치 기차를 타고 있으면 창밖의 풍경이 뒤로 물러나는 것처럼 보이듯이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이 꿈꾸던 세계는 물결치는 대로 떠나가 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작기는 의사소통의 부재와 고독은 가장 가까운 가족 간에 더욱 심각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한 단절과 고독은 역으로 그들에게 필요한 건 무엇보다도 사소한 일상의 일을 함께하는 것임을 알게 한다. 극의 마지막 부분에서 페르낭과 필라르가 어느 겨울날 공원에서 나누는 대화나 마리아노의 독백은 그것을 증명해 준다. 페르낭은 필라르의 구두와 망토를 사러 가자고 제안하고, 마리아노는 오렐리아와 함께 안경을 사러 가고 싶어 한다.
전체적으로 이 극은 비관적인 모습을 띠고 있으나<바냐 아저씨>를 쓴 체호프처럼 작가는 희망을 노래한다.<불가리아 연극>의 뷔르츠 양은 슬픔은 결국 기쁨의 서곡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이별이 행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녀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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