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로망 와인가르뎅 '룩셈부르크 공원의 알리스'

clint 2015. 11. 10. 15:01

 

 

 

 

 

 

꿈, 악몽을 연극적으로 구현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스며 있는 작품으로 발표 당시 전위극의 효시로 평가 받기도
한 작품이다. 무대에 올리기 위해서는 상당한 작품분석과 연출 기법이 필요하다 하겠다
이 작품은 전반부 - 알리스, 후반부 - 룩셈부르크 공원에서, 로 이루어져 있다.
전반부에서는 알리스의 어머니가 알리스에게 일찍 잠자리에 들라고 독촉하는 장면이다. 잔소리에 노파심, 지나친 관심은 여느 어머니와 크게 다르지 않다. 말이 좀 많고 길다는 게 다르긴 하지만. 점점 갈수록 히스테리 컬하게 들린다. 그리고 조명과 어머니의 의상이 달라지면서 알리스의 '꿈속'으로 들어간다. 여기서는 극단적으로 히스테리 컬한 어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앞뒤가 맞지 않는 말들, 행동들... 마침내 어머니가 알리스를 죽이는 장면에서 알리스는 꿈에서 깨어난다. 현실로 돌아온 알리스는 빨리 학교에 가라고 독촉하는 어머니를 목 졸라 죽인다.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것은 과연 꿈속에서 알리스의 방문을 끊임없이 두드린 사람이 누구냔 것이다. 설마 귀신은 아닐 테고...그 문 너머에 어떤 또 다른 세계로 연결이 있는 건 아닐까...
후반부에서는 룩셈부르크 공원에 알리스가 등장한다. 거대한 알속의 도듀와의 만남이다. 도듀의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 마치 일인 다역을 하는 듯한 모습도. 처음에는 알리스의 위에서 명령자로 군림하던 도듀는 상황이 반전되면서, 즉 알리스가 쇠망치를 쥐게 되면서 피 명령자로 전락하고 알리스가 파괴적인 힘을 쥐게 된다. 결국 도듀에게 폭력적인 말과 욕설을 퍼부은 다음에 이별을 고하고 떠나버리는 알리스. 도듀는 슬픔에 빠져 다시 알 속으로 들어간다. 앞뒤가 맞지 않고 말장난을 하는 것 같아 중간에 조금 지겨운 점을 빼면 대체로 잘 읽히는 작품이다. 특히 전반부에서의 어머니의 히스테리 컬한 아주 긴 대사는 몰입도가 높다. 근데 이렇게 긴 대사를 어느 배우가 암기할 수 있을까... 후반부에서 알리스와 도듀의 만남 역시 매우 특이한 느낌을 준다. 49세의 아저씨와 10대 소녀, 친구 같다가 어느 때는 적대자 같다가 어른과 아이 같다가 어느 순간에 아이와 아이 같은 느낌이 든다. 알리스가 점점 히스테리 컬하게 변해서 도듀에게 모욕을 퍼붓고 떠나버리는 모습은 묘한 슬픈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서로 외로울 것만 같은 두 사람이 결별을 선언했으니 도듀와 알리스는 어디서 다른 친구를 찾을까? 특히 어머니를 현실에서 죽이고 꿈속에서 도듀와 결별한 그녀의 모습 위에, 침대 속에서 꼼짝 않고 누워 있는 알리스의 모습이 겹친다.
전반부와 후반부의 연결도 주의할 만하다. 꿈속에서 알리스의 방문을 계속 두드린 자는 누구인가? 알리스의 무의식인가? 아니면 알리스의 자유의지에서 비롯되는 공포인가?
그 방문은 결코 열리지 않으며 따라서 누가 그 문을 두드렸는지는 끝까지 알 수 없다.
그리고 후반부의 공원에서 알리스의 등퇴장이 몇 번 있는데 그 사이의 시간 흐름이 궁금하다. 아마도 그 사이사이에 꿈에서 깨어 어머니의 잔소리를 비몽사몽간에 들었을 테고, 그리고 실제로 아침에 깨어 어머니를 죽였을 테고, 다시 꿈속에서 어머니의 살인을 책망하는 도듀와 크게 싸움을 한판하고...

 

 

 

로망 와인가르텡 (Romian Weingarten, 1926~ 2006)의 작품 대부분 역시 '악몽' 그것이다. 폴란드인을 아버지로 프랑스인을 어머니로 가진 와인가르텡도 주네와 나란히 연극계에의 진출은 빨랐다. 너무 지나치게 빨랐다고도 할 수 있다. 1948년 청년 연극 콩쿠르에서 작가 자신에 의하여 연출된 〈아카라〉는 전후 연극에 쉬르리얼리즘의 언어를 마음껏 구사하고 있었던 오디베르티에 의하여 '에루나니 48년 판'까지 절찬 받았으며, 이오네스코도 후에 와인가르텡을 자기의 선구자로 보았다. 고양이 모습을 한 변호사가 등장하여 논리적 전개를 결여한 줄거리와, 인간의 생리와 심리, 또는 인간을 감싸는 '사물들'과의 관계가 이상하게 도착되어 있는 '장면', 쥐느브에브의 긴 대사에 두드러지게 나타난 분절(分節)언어의 현상은 확실히 초기의 이오네스코와 〈고도〉에서의 라키의 긴 대사를 예고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 작품은 3회 밖에는 상연되지 않았고, 작가는 연극에 대한 정열을 간직한 채 생활을 위하여 그림틀 가게를 개업한다. 이렇게 해서 18년이 지났다. 1966년 가을 시즌에 포쉬 몽파르나스극장에서 초연된 〈여름〉은, 작가 자신과 니클라 바타이유가 출연한 '인간 모습을 한 두 마리의 고양이'와 도미니크 라브레의 소녀와 리샬 루뒤크의 정신박약아라는 배역으로 근래 보기 드문 시적인 무대로서 크게 히트하였던 것이다. 시골의 여름, 휴가를 보내러 온 사춘기의 오누이가 연인들을 통하여 사랑에 눈을 뜨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엿새 낮과 밤의 사건으로 되어 있다. 이 청춘의 무구함과에 로스적인 착란 등이 섞여 자연계가 감미롭게 음악 화되는 듯한 세계는 와인가르텡의 작품으로서 는오히려 예외적인 것이다. 이미 〈아카라〉가 비유적으로 되어 있지만, 〈룩셈부르크 공원의 알리스〉는 그야말로 알리스의 악몽에서 시작된다. 〈여름〉에서도 이미 인용되었던 루이스 캐럴은 여기서는 사춘기의 환상적인 매력 있는 착란이 아니라 '악의가 있는 외계'라는 악마적 양상 때문에 끌려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여름>에 인간을 감싼 외계의 잔혹성이 전혀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특히 소년 시몬이 혼자 잠이 든 후 그것을 본 고양이가 소년을 잡아먹는 환상에 젖는 장면 '네 번째 밤'은 사춘기 여름의 아름다운 우수와 서정이 깔린 이 극의 기저(基底) 저음으로서의 기분 나쁘고 파괴적인 힘의 존재를 감득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아카라〉와 상거래 세계의 비정, 잔인을 주제로 한 〈유모들〉에서는 인간을 짓누르는 맹목적인 힘인 외계가 거기서 소외된 인간들을 공범으로 몰아넣는 무서운 존재로서 규탄되고 있다.

 

 


〈룩셈부르크 공원의 알리스〉의 소녀는 꿈속에서 그런 악의적인 세계와 대결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희곡도 와인가르텡과 50년대의 부조리극과의 깊은 관련이 있음을 알게 해준다. 알리스가 단순한 짐승처럼 담요 속에서 중얼거리는 말과 어머니의 히스테릭하며 연극 적이기도 한 긴 대사로 이루어진 제 1 막은 이오네스코의 초기 희곡의 한 장면 (예를 들면 〈의무의 희생자〉에서의 비인간화의 행위)을 연상케 한다. 그리고 맥락이 결여된 언어의 폭력이 생생한 형태로 나타난다. 함프티 담프티의 알이라는 도듀의 알은 무대상의 이상한 모양의 물체라는 의미에서는 50 년대의 전위극과 매우 친숙한 것이다. 그리고 소도구의 사용법 등은 베케트의 위니와도 많이 닮았다. 어린이 취향의 인형극의 한계를 넘어서 계속되는 연극의 단조로움, 잔혹함이라고나 해야 할 모습, 그것도 이오네스코 등의 연극 체험의 원점에서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룩셈부르크공원의 알리스〉에는 이오네스코가 설정한 기계장치와는 다른 무엇이 그와 같은 인형극의 잔혹성으로 눈을 돌리게 하고 때로는 그 자체가 매우 잔혹한 어린이의 눈인 것같이 생각되게 한다. 이 작품은 어른을 위한 일종의 '인형극'으로서 성공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