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추운 겨울날. 창 밖에는 흰 눈이 펑펑 내리고 있다. 조그만 바 안의 유일한 등장인물, 기타맨이 침묵 사이사이에서 토해내는 독백의 내용으로 봐서 바깥의 모습은 그리 낭만스러운 풍경은 아닌 듯하다. 오히려 창 너머에는 차가운 잿빛의 을씨년스러움이 있을 것이라는 느낌이 온다. 이쪽, 바 안 한구석에는 난로가 켜져 있어 겉으로 볼 때 손을 녹일 수 있을 정도의 따듯함은 있다. 그러나 그 온기가 기타맨의 절망과 고독을 품어내지는 못한다. 반대로 적막감이 그나마 있는 온기를 쓸어 내버린다. 기타의 줄은 끊어지고 그는 어디론가 떠난다.
욘 포세의 대사는 매우 압축적이며, 일상적이고 평범하다. 그는 단조롭고 반복적인 대사, 침묵의 언어를 통해 인간 삶의 불확실성, 사랑과 증오, 아픔, 좌절, 소통의 부재를 그린다. 대사를 통해 무슨 변화가 있을 것으로 느껴지지만 실제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냥 흘러간다. 그런 대사에 여운을 남기는 울림이 있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기타맨' 역시 포세의 글쓰기 특징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 작품이다. 포세의 다른 많은 작품들이 그러하듯 이 작품의 등장인물은 이름이 없다. 그저 기타맨이다. 그가 지금 있는 곳은 먼, 지구 가장 끝, 북쪽의 끄트머리. 기타맨은 그곳 지하도에서 노래를 부르며 사람들이 기타 통에 던져주는 동전으로 생활한다. 이 연극은 또 스토리가 없다. 기타맨의 독백, 노래, 침묵만 있다. 그것들을 통해 기타맨은 지하도를 오가는 사람들, 또 자신의 삶에 대해 얘기한다.

기승전결로 이어지는 내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분절된 대사 부분, 부분이 극적이다. 극의 거의 첫 부분, 지하도를 오가는 사람들에 대한 묘사부터가 나의 모습을 보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사람들은 날 향해 오고/다시 내게서 멀어져 가/매일 매일, 늘, 그들은 나를 통과해/대부분 같은 사람들이 나를 지나가지/항상, 매일 매일/그리고 나는, 늘, 매일 매일, 그들을 위해 노래를 불러/그리고 그들은 대체로 고개를 숙여/나를 지나쳐갈 때/마치 부끄럽다는 듯이…지금처럼 추운 겨울에/벌벌 떨며 서툰 기타솜씨로/늘 같은 노래를 부르는 나를 본다는 것이 부끄럽다는 듯이 말이야…』
기타맨의 회한과 적막감, 절망은 극이 진행되면서 고조되어 간다. 남자 배우 혼자서 이러한 분위기의 대사를 공연시간 70분 동안 끌어간다는 것은 누가 생각하더라도 무리다. 그래서 극중에는 14곡의 기타반주가 있는 노래가 나온다. 노래라는 형식만 취했을 뿐 가사를 통해 전달되는 기타맨의 적막한 분위기는 같다. 자신을 버린 아내와 그 사이에서 생긴 아들에 대한 기억을 담은 시어와 같은 가사의 노래에서 기타맨의 회한과 외로움은 짙게 느껴진다.
『그냥 끝내야 해/절대 이 나라에/오지 말았어야 했어/이렇게 먼 북쪽에/하지만, 당신도 알듯이 난 여기 왔고/아들을 얻었고/여기 머물렀어./그리고 지금 내 아들은 끔찍이 부끄럽지/나 때문에』

현재 독일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연극계로부터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욘 포세는 1959년 노르웨이의 해안도시 허게순드(Haugesund)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냈다.
그는 1975년 베르겐(Bergen)으로 가 그곳에서 비교문학을 전공했으며, 호르달란드 (Hordaland) 문예창작 아카데미에서 강사로 활동하였다. 1990년대 초부터 전업 작가로 자유로운 작품 활동을 하고 있으며, 현재 베르겐에서 아내, 그리고 어린 두 딸과 함께 살고 있다. 그는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도 두고 있다.
포세는 현대의 사회 현실을 강하게 비판하거나 변화를 위해 투쟁하는 작가가 아니다.
그의 작품이 주로 다루고 있는 것은 가족관계와 세대 간의 관계를 통해볼 수 있는 인생, 사랑과 죽음과 같은 우리의 삶에서 볼 수 있는 보편적인 모습들이다. 세대 간의 관계에 대해 그는, 말로는 결코 종합적으로 고찰될 수 없는 것, 즉 죄와 실망의 원천문제를 다룬다.
그의 작품에는 일견 너무나 평범해 보이고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삶의 그림들이 단순한 구조로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그림에는 많은 사건이 발생하지 않으며, 항상 같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아버지, 어머니, 아이, 남자(남편), 여자(아내), 소년, 소녀. 여기에 뒷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는 인물은 할머니, 그리고 때때로 이웃이다. 이들은 대부분 이름이 없으며 특별한 고유의 성격이 부여되지 않는다.
인물들은 항상 단순한, 일반적인 사람들이며, 그들의 관계는 한눈에 파악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평범함과 보편성을 통해 우 리의 삶을 다시 한 번 경건하게 들여다보도록 만든다. 그가 만들어내는 인간관계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황이고 그 관계가 또한 철저하게 관찰되고 파악될 수 있어서 보편성의 미니멀리즘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 만큼 포세가 작품 속에서 드러내고 있는 현실은 구체성을 지니고 있다. 일견 단순해 보이는 현실의 단면은 굵은 윤곽으로 이루어진 담담한 그림으로 그려지나 그 사이의 여백에는 인간의 삶이 가진 구체적인 모습들이 존재한다. 그것은 현대인이 만들어내는 의사 소통부재의 사회적 관계이기도 하며 인간의식 속에 존재하는 무형의 원형질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포세의 언어는 배우와 연출자에게 커다란 도전이 된다. 그 의 언어는 철저하게 압축되고 축약된 형태로, 문장의 조각들, 계속해서 반복되는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다. 완벽하게 구두법 없이 쓰여진 그의 텍스트는 해석과 리듬의 모든 힘을 배우와 연출자의 손에 넘겨준다. 포세는 삶의 본질적인 것이 피 묻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 불필요한 소리들을 제거한다. 그의 언어는 끊임없이 회전하는 말의 고유한 움직임으로 이루어져 있다. 거의 모노톤의 문장들, 부분적으로는 스타카토처럼 던져지는 문장들 속에서 여러 가지 삶의 구조들, 인간의 내적인 심리구조가 현재와 과거의 시간이 교차하는 가운데 응축된 형태로 노출된다. 여기에 포세는 침묵의 순간들을 적절히 이용한다. 인물들의 대화 과정 중에 끊임없이 반복 시용되는 '사이'의 침묵, 이 행간을 인물들의 말없는 진실이 넘나든다. 소리와 소리 없음의 독특한 리듬-이 긴장과 이완의 리듬을 통해 포세는 인간의 삶이 가진 진정성은 무엇인지 묻는다. 사실 그는 첫 희곡 〈누군가 온다.〉이전에 연극과 희곡에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누군가 온다.〉의 집필 이후 인간 사이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표현하는데 가장 적합한 형식으로 희곡을 새롭게 발견한다.

그는 희곡 〈이름>으로 1996년 입센상을, 희곡 〈어느 여름날>로 2000년 북유럽 연극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2000년, 〈이름〉이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독일어권 최초의 공연을 이룬 후 최고의 작가로서 오스트리아의 연극 오스카상인 네스트로이 상을 수상했다. 이밖에 대표적인 희곡작품으로는〈누군가 온다〉(1992), 〈아이>(1996),<아들>(1997), 〈가1"날의 꿈>(1999), 〈기타맨(모노로그)〉(1999),<겨울〉 (2000),〈죽음" 변주곡>(2001), 〈소파 위의 소녀>(2002),<자줏빛>(2003),<잠>(2005),〈람부쿠>(2006) 등이 있다. 그는 희곡작품 이외에도 장편소설, 시, 에세이, 아동문학 등 다양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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