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욘 포세 '겨울'

clint 2015. 11. 10. 12:48

 

 

 

 

 

 

여기 한 남자가 있다. 낯선 지방으로 출장을 나온 이 남자는 약속 장소로 향하고 있었고, 그때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적어도 웬 낯선 여자가 “이봐요” 라며 그의 발길을 멈춰 세우기 전까지는... 여자는 마치 남자를 아주 잘 알고 있는 듯 그의 여자라고 당당히 이야기 한다.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그를 책망까지 하면서... 남자는 그런 그녀를 뿌리치지 못하고 그녀와 함께 자신이 머무는 호텔방으로 향한다...
짧았던 그녀와의 만남은 이제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소중한 그의 아내와 두 아이, 그리고 든든한 직장은 이제 그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 그는 다만 그녀와 다시 만나기를 바라며 그녀가 처음 자신을 불러 세웠던 그 벤치에 앉아있다. 미처 보지 못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듯 그는 그렇게 운명의 짝을 만나 넘어져 버린 것이다... 사랑은 그렇게 시작되어 버렸다
자신의 짝을, 자신과 운명의 붉은 실로 묶여져 있는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 알아본다는 것,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그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는 것은 참 무서운 일이다. 이 세상에 사랑만큼 한 사람의 인생을 뒤흔들어 버리는 것은 없으므로.....
그 사람을 만나기 전의 나와 만난 후의 나는 절대 같은 사람일 수 없었다.
헨리크 입센 이후 최고의 노르웨이 극작가로 꼽히는 포세는 평범한 일상을 투명하게 응시하며 삶의 본질을 단번에 꿰뚫어내는 데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다. 일체의 군더더기를 생략한 그의 시적 언어는 통상 관객의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파고든다.
포세는 이렇게 바늘로 콕 찌르듯이 다가온 사랑을 철저하게 압축된 문장의 조각들로 계속 반복해 표현한다. 불필요한 소리를 제거, 삶의 본질로 고통스럽게 다가가고 있음이 느껴진다. 지루하게 조차 느껴지는 모노톤의 어조에 가끔 스타카토로 똑똑 끊어진다. 그 사이사이를 침묵이 메우면서 만들어내는 긴장과 이완에서 묘한 삶의 진정성이 느껴진다.

 

 

 

 

작가 인터뷰
1992년 늦가을, 그러니까 나는 처음으로 '그'와 '그녀'의 형식으로 그리고 그 사이에 연출 지문을 넣은 형식으로 글을 쓰기 위해 앉았다. 너무도 놀라운 일이었다. 나는 짧은 시간에 온전한 극작품 하나를 끝마쳤다. 이로써 무엇인가에, 내가 시와 산문으로는 이루지 못했던 것에 도달했다는, 언어와 그리고 그만큼 중요한 것으로서 침묵으로 무엇인가를 이끌어 냈다는 느낌이었다. '사이' 라는 단어는 내 작품에 가장 자주 나오는 단어이다. 처음에 나는 내 소설들이 극작품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 것이라 생각했다. 내 소설들은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진행되며 인물도 몇 명 등장 하지 않는다. 물론 전체를 강화하는 줄거리의 결정적인 모멘트 몇 가지는 존재한다. 나는 내가 좋은 텍스트를 썼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텍스트가 무대 위에서 기능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확신이 없었다. 〈누군가 올 거야>는 여러 번 공연되었고, 공연 자체도 상당히 홀륭했다. 나는 나의 글쓰기에 있어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것이 내 의지에 다소간 반하는 것이었다 해도 말이다. 이후에 나는 다른 극작품들을 썼으며, 이제 나는 우선 내가 극작가로 말해야 하겠다. 그리고 - 이러한 생각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 나의 다른 모든 글쓰기는 어느 의미에서는 극작품들을 위한 준비였다고 말해야 하겠다.
► 처음에 존재하는 것은 무엇인가 - 인물인가, 아니면 이야기인가. 아니면 특정 한 억양인가?
내가 글을 쓴다면 그것은 하나의 원칙이다. 그런 다음 나는 내가 무엇을 쓰는가에 관해 의식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시작하고 진행이 되면 잠시 후 나는 극작품 또는 텍스트가 존재한다는 느낌을 갖는다. 무엇인가가 오고 나는 그것을 받아 기록해야 한다. 내가 무엇인가 알려지지 않은 것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내게 중요하다 - 이는 일의 마술이다. 나는 앉아 있다, 피오르드의 내 작은 집에. 그리고 나는 여전히 아무 것도 른다. 그런 다음 나는 이 여행을 하는 것이다. 글쓰기가 잘 진행되면 나는 새로운 이야기와 새로운 인물들과 새로운 언어와 그리고 새로운 메타포와 함께 돌아온다. 그렇다. 어떤 방식으로든 전체로서의 극작품은 하나의 메타포가 되어야 한다. 말로 예전엔 존재하지 않았던 어떤 것을 만들어 낸다는 것, 이것이 내겐 최상의 것이다. 좋은 극작품이 나왔다는 느낌을 갖기 위해 나는 내가 알려지지 않은 것 안에 존재했다는 시실, 그리고 거기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을 찾아냈다는 사실을 확신해야 한다.
► 당신은 그 첫 단계에서 인물들을 알고 있는가?
아니다. 전혀 알지 못한다. 내가 그 단계에 있을 때 그것은 지적 과정 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음악적 과정이다. 나는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어떤 사물에 귀를 기울인다. 귀를 기울여 듣고 난 후 그것들은 움직이기 시작하고 어떤 특정한 시점부터 그것들은 앞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출신의 언어적 배경은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는가?
나는 노르웨이의 서쪽 해안 작은 마을에서 성장했다. 그곳은 산이 있는 피오르드 해안으로 아주 조용한 곳이다. 겨울이면 특히 더 조용하다. 사람들은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말을 할 때면 그들의 말은 아이러니로 가득하다. 사람들은 확실히 강한 감정을 직접 표현하지 않는 다. 그런 곳에서 성장했다는 것은 내 언어와 많은 관련이 있다.
► 당신의 극작품을 관통하고 있는 모티브 중 하니는 인물들이 갇혀 있으면서도 안전하다고 느끼고 있는 집이다. 이는 어떻게 설명되는가?
잘 모르겠다. 나는 특히 오래된 집에 완전히 매료되어 있다. 오래된 집은 어떤 영혼과 그 고유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하이너 뭘러는 내겐 아주 중요한 점을 말해 주었다. 문화의 상황은 죽은 자와의 교류 방식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모티브로서의 집은 내게 무척 중요하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그것을 안다면 의미가 없는 글쓰기가 될 것이다. 사람들은 오고 가며 살며 죽는다. 오래 된 집은 사람들을 간수한다. 이는 매우 독특하고 매우 아름답다. 사람들이 살았던 집에는 어떤 식으로든 그 사람들로부터 무엇인가가 남는다.
► 각각의 극작품들은 그 이야기와 주제가 매우 상이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항상 그 모델로 돌아온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연극에 있어서 근본적인 상황 중 하나이다. 한 장소에 두 사람이 있다. 거기에 제 3의 인물이 온다. 그것 이 누군가에게 무엇인가 관련이 있다면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언제나 달리 나타날 수 있다. 그게 왜 재미있는지 나는 물론 설명할 수 없으며, 또한 그것을 전혀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 작품 속에 아주 구체적인 공개 질문으로 제기되어 있는 질문들을 관객에게도 하고자 하는가?
어쩌면, 하지만 관객들이 그 질문에 답해 줄지는 모르겠다. 나는 의미가 아니라 형식과 관계된 것으로 닫힌 텍스트를 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수수께끼를 쓰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내가 아는 것을 쓰기 때문이다.
► 그럴 때 당신은사회적 관계와도 연결시키는가?
아니다, 전혀 아니다. 나는 사회적 역동성과 관계있는 어떤 차원에서 인긴들 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것들의 모습을 쓴다. 그게 어떤 구체적인 사회적 관계와 연관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내 의도가 아니다. 그렇더라도 나는 그에 굳이 반대할 것이 없다. 부모 중 어느 한쪽이 자식을 떠나는 노르웨이 사회의 복잡한 관계에 대한 비판은 내게 중요하지 않다. 내가 쓰고 있는 '비어 있음의 그림’이 우리의 사회에 대해 무엇인가 말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 그림이 함축적으로 보여줄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나의 글쓰기는 철저한 사회적 코멘트이며 어느 정도로는 정치적이다, 사람들이 그렇게 보고자 한다면 말이다…. 나는 그저 한 작가에 불과하며 언제나 나 자신을 아웃사이더로 느껴왔다. 그러나 또한 나는 중심에 있었다. 나는 대학을 마쳤고 명망 있는 작가 이다. 내가 글로 언급하고 있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아웃사이더의 성격 을 가지고 있으며 사회의 이해를 받고 있는 이들은 아니다. 나는 노동자 나 사무원들의 삶에 관해 쓰지 않는다. 누군가가 어떤 박사의 삶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했다면 그건 결코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나는 내가 패배자의 시각에서 글을 쓰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도대체 패배하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
► 당신의 극작품들 중 몇은 인물과 주제가 지속 발전된다는 점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내가 쓰는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며 여러 가지 장르 극작품까지도 긴 텍스트를 쓰는 데 있어서 그렇게 쓰고 있다고 생각한다. 동 시에 그 긴 텍스트는 잘 쓰여진 경우 그 고유의 세계를 가지고 있는 텍스트들로 구성된다. 세계와 관련된 나의 생각을 설명할 수는 없다. 더욱이 간단히 표현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나는 모든 텍스트마다 그 고유의 규칙 을 정한다. 이는 어쩌면 어떤 의식적 과정으로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내 경우에 그것은 대부분, 전적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직감의 과정이다. 내게 중요한 것은 텍스트 전체이다. 텍스트 속의 세계가 전체에 관해 말하고, 그렇기 때문에 텍스트의 모든 부분, 모든 디테일에 세계가 존재한다. 나는 미완성 단편(프라그멘트)을 쓰지 않는다. 나는 말하자면 닫힌 텍스트를 쓴다. 완벽하게 정확한 텍스트를 쓰는 것이다. 형식은 닫힌 형식이고 내용은 열려 있다. 물론 내용과 형식을 분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좋은 텍스트에서는 내용과 형식이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 내가 바라는 것은 나의 텍스트가 존재하는 것이다. 나는 내 텍스트가 무엇인가 의미하길 바라지 않는다.
► 당산은 입센처럼 현대 드라마의 중심주제로서 기족이란 주제를 받아 들였다.
한 가정 내에 살았던 입센은 전통적인 가족에 반대했고, 반면에 나는 이혼한 사람으로서 가족을 찬성하고 있다는 데에 차이점이 있다.
► 어떤 독일 배우가 연습이 끝난 후 당신의 텍스트는 특이한 경우라고 말했다. 어째서 이 인물은 이런 말을 할까 하고 의문을 기질 수 없었다고 한다. 특히 자기도 그렇게 밀하고 있는 것처럼 모든 것이 너무도 명확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이다. 나는 연극인이 아니다. 하지만 자연스러우면서도 동시에 양식화된 언어가 있어야 한다. 나는 그렇게 쓴 다. 성공적인 창작은 언어의 성공적인 리듬과 관련이 있으며 사이와 끊어짐, 그리고 속도와 관련이 있다. 내가 쓰고 있는 것은 아주 구체적이다. 누군가가 이렇게 말하지 않았나. “진실은 구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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