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차 세계대전 중 취리히. 20세기 세 명의 명사들이 모두 취리히에 살고 있었다. 모더니즘 작가 제임스 조이스, 공산혁명 당원 레닌과 다다이즘 창시자인 트리스탄 타자르. 이들에 비해 인지도가 약간 떨어지는 영국 영사관 사기보 헨리 카. 헨리는 일반 사람들의 성향을 같고 있었으며, 취리히에 살고 있었다. 몇 년이 지난 후 그의 직관력과 경험의 기억에 의해 이 세 명의 영향력 있는 인물들을 회상한다.
헨리는 이제 노인의 기억으로 세 명의 캐릭터들을 해석하는 것이 역사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정신착란의 조짐을 보인다. 헨리의 회상은 오스카 와일드의 연극<어니스트 되기 놀이>의 취리히 프로덕션에서의 그의 공연 장면을 보여준다. 예술, 전쟁, 혁명에 대한 교차된 감정들이 공연 중 나타나고, 어니스트로 연기하는 데에 반영된다.<트레버티즈>의 캐릭터들은 모두 어니스트 공연의 골드윈과 세실리를 위주로 한 여러 코미디 관계를 만들어 낸다.
예술과 정치와의 관계에 있어 언어유희와 지적도전을 강조한 톰 스토파드의<트래비스티스>는 20C의 가장 중요한 혁명가였던 레닌, 제임스 조이스, 그리고 다다이스트 트리스탄 짜라가 1917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살고 있을 그 당시 취리히의 영국 영사관 직원이었던 실존인물 헨리 카아와 연극공연을 통해서 알게 된 제임스 조이스와의 바지 한 벌과 관계된 법적 소송이라는 실화를 토대로 한 역사적 우연성을 교묘하고 자유분방한, 그리고 재미있는 연극적 사건으로 바꾸어 놓은 작품이다.

<트래비스티스>의 주인공 늙은 헨리 카아의 명백하고 무섭지만 그러나 불완전한 회상은 20C 역사에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한 3명의 역사적 인물들의 1917년 취리히에서의 가상의 만남에 대한 놀라운 연극적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다. 영국 현대연극의 희곡작가로 높이 평가되고 있는 톰 스토파드의<트래비스티스>에 담겨 있는 오스카 와일드 적 모방, 정치적 역사와 예술적 논쟁을 혼합시킨 현대연극의 실험정신으로 관객들에게 새로운 현대희곡 발견의 기회와 다양한 관극체험의 장을 제공한다.
스토파드의 희곡은 제임스 조이스가 1917년의 취리히에서 작은 재판에 연루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에서 출발한다. 스토파드는 이 실화에 인문학적 지식과 상상력을 부여하여 20세기 예술과 역사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작품을 만들어냈다. 20세기의 세 영웅 즉 혁명가 레닌,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 다다주의자 트리스탄 짜라가 1917년의 취리히에서 우연히 만난다는 설정 아래 이들을 불러모아놓곤 20세기의 정치와 예술에 대해 트래비스티스(Travesties), 우스꽝스럽게 희화하고 있는 것이다.

작품이 쓰여 진 시기가 냉전구도가 존속하던 1974년이고, 특히 작가 스토파드가 체코 출신으로 영국에서 활동한다는 점은 작품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사항일 듯하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양 영역에 속한다는 그의 특이한 정체성으로 인해, 두 진영으로 갈라져 싸웠던 20세기의 역사와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이 각별할 수밖에 없겠기 때문이다. 실제로 작품은 다다주의자 짜라로 대변되는 좌파 예술의 전위성과 레닌으로 대표되는 좌파 정치의 급진성이 절대로 공존할 수 없었던 20세기의 우스꽝스러운 역사, 그리고 그 모든 이데올로기에 무관심했던 조이스의 자기중심주의를 함께 비판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심각하지는 않다. 현학적인 논쟁의 옆길에 스토파드는 캬바레 쇼처럼 쿵작거리는 템포감을 다소 장난스럽게 부여하고, 배우들은 춤을 추며 무대 위로 나타나곤 한다. 아마도 이런 쇼의 이미지는 이 시기 짜라가 가담했던 볼테르 캬바레, 즉 취리히 다다주의자들의 온상이었던 캬바레의 이미지를 일정부분 염두에 둔 시도일 것이고, 논쟁적인 작품을 파악하느라 지친 관객들에 대한 서비스일 것이다.
작품의 시공간적 배경은 ‘1917년의 취리히’다. 1917년이란 일차대전이 종결된 해이고 러시아 혁명이 성공한 시기이기도 하다. 표면적으론 종전과 혁명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시간이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가혹한 전쟁과 냉전구도라는 미래의 씨앗을 품고 있던, 그러나 미처 그것을 예견하지 못했던 시절이다. 하긴 역사는 자주 그렇다. 10․26의 총성이 울렸을 때, 그것이 80년의 광주로 이어지리라고 그때 누가 예상했겠는가.

스토파드는 이 역사적 시간의 축에 취리히라는 공간을 결합한다. 취리히는 20세기를 상징하는 도시다. 비록 전쟁과 혁명이라는 역사적 현실과 중립적 거리감을 갖는 도시지만, 그러나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세상 도처의 망명자들과 스파이들의 요람이 되었던 기이한 도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예술사에 있어서도, 전쟁을 피해 세계의 지식인 양아치들이 중립국 스위스로 도망쳤고, 세상이 싸우는 동안 이들 양아치는 취리히를 거점 삼아 이전 세대와 전혀 다른 혁명적 예술로 20세기 예술의 포문을 열었다. 다다이즘을 생각해 보라. 그 방자한 씨앗은 초현실주의로 전승되었고 2차 대전 이후 해프닝으로 화려하게 피어났다. 그 무렵 조이스는 ≪율리시즈≫를 다듬으며 현대 소설의 포문을 열던 중이었고, 망명자 레닌은 취리히의 도서실에서 공산주의와 프롤레타리아혁명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연구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정치, 역사, 예술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20세기적 발상들이 잉태되던 시기였고, 그것이 취리히라는 공간을 통해 취합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시공간의 축 위에서, 스토파드는 헨리 카아라는 속물적 영국인이 당시 취리히에 있었다는 사실을 찾아내고, 그를 주인공으로 삼아 그 시절을 회상한다. 1917년의 취리히에서 영국 영사로 활동하던 헨리 카아가 조이스, 짜라, 레닌과 같은 역사적 인물을 만났다는 설정 아래, 이들을 등장인물로 호명하고 역사적 사실과 상상력을 뒤섞으며 한 시절을 현란하게 재구성하는 것이다. 덕분에 작품은 부분적으로 드라마이지만, 전반적으론 강연회 같고 공청회 같다. 가령 취리히 도서실 사서는 러시아 공산주의와 레닌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고, 레닌의 아내 나디아는 레닌이 취리히를 도망치던 서사적 여정을 책을 읽으며 보고한다. 편지도 읽는다. 게다가 대부분의 대사들은 20세기 예술과 정치에 대한 논쟁이다. 엉성한 좌파 예술가 짜라는 정치적 좌파일수록 예술의 경향은 부르주아적 취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에 대해 고민하고, 고리키는 이해해도 마야꼽스키는 이해할 수 없는 레닌은 다다에 대해 격분하고, 조이스는 짝이 맞지 않는 양복을 입고 나와 모든 이데올로기를 무시하더라도 세상살이는 힘들어 죽겠다며 시를 읊어댄다. 그 모습들은 꽤나 장황하고 우스꽝스럽다. 과도할 정도로 정보를 알려주는 서사적 전략과 노골적 희화를 결합해, 스토파드는 20세기 영웅들을 굴비 엮듯 한 두름에 엮여 논리적으로 설명해주고, 동시에 해체시키고 있는 것이다. 물론 20세기 역사에 대한 조롱이 일차 목적이겠지만 곰곰이 생각해보건대 이 야단법석의 논쟁과 쇼를 통해 스토파드가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내용은, 역사를 결정하는 힘은 치열한 인과가 아니라 ‘우연’이라는 입장인 듯하다. 레닌과 조이스와 짜라가 우연히 만났다. 레닌의 예술관에 짜라가 영향을 미쳤는지, 짜라의 좌파 예술관에 레닌과의 우연한 만남이 결정적 역할을 했는지, 조이스의 서술기법에 짜라의 즉흥적 시 창작이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수 없다. 작품은 그것을 명쾌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튼 그들은 1917년의 취리히에서 우연히 만났다. 그리고 적어도 그 우연한 만남에 의해 헨리 카아는 레닌을 흠모하던 도서관 사서 시실리 카듀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였다. 우연의 힘에 의해서 말이다. 그러므로 어쩌면 레닌과 짜라는, 혹 짜라와 조이스는 우연한 만남 속에 자신들의 사상과 예술을 형성시켰을지도 모른다, 카아와 시실리의 결혼처럼 지난 역사를 만든 것은 우연일 것이다, 라고, 작가 스토파드가 이 복잡한 구조 속에 정작 말하고 싶은 이야기는 결국 이런 것 아니었을까? (투쟁으로 점철된 20세기 역사를 이처럼 우연의 주사위 놀이로 전락시킬 수 있으니, 예술은 역사의 입장에서 볼 때 정말 치명적인 가시다. 하긴 레닌이 형식주의자들에게 격분한 것도 일견 타당하다. 이제 그 후예인 스토파드가 20세기 역사와 이데올로기를 조롱과 무의미라는 다다 적 잣대로 짓이기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스토파드는 역사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조롱한 것에 대해 도망칠 구멍을 마련한다. 무대 위의 모든 사건을, 헨리 카아라는 한 속물의 기억에 국한시키기 때문이다. 직선적 시간의 흐름과 달리 역순으로 흘러가는 기억은 부정확하다. 아무 것도 책임지지 않는다. 전체성은 파손되고, 부분적인 편린만 남고, 그 편린은 또 다른 기억의 편린과 결합하고, 무의식적 욕망이 윤색하기도 한다. 스토파드는 이 회상구조에 의존해, 1917년의 모습을 흐릿하게 채색하면서 자신의 방자한 역사관에 쏟아질 화살을 무마시킨다. 예를 들어 연극의 도입부에서 카아는 1917년을 회상한다. 그 회상의 출발점, 카아가 하인의 시중을 받으며 식사하는 1917년의 어느 날은 반복적 패턴으로 여러 번 재연된다. 비록 중심의 대사는 전쟁, 혁명, 취리히의 카페 이야기 등 다양하게 건너뛰지만, 하인이 시중을 드는 똑같은 장면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이런 회상 구조는 이 외에도 대단히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리고 그들 중 어떤 기억이 카아가 정작 기억하고자 하는 실제인지 연극은 절대로 알려주지 않는다. 카아는 그리고 아마도 우리들의 기억(기표)은 그렇게 과거의 실체(기의)에 도달하지 못한 채 미끄러지고 윤색되며 가볍게 춤추듯 기표들의 유희로 반복, 확산될 것이다. 파손되고 윤색된 기억들이 계속 변주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억은 모자라지 않고, 언제나 흘러넘치는 잉여인 것이다. 따라서 역사는 이 여러 개의 불안정한 기억처럼 실체가 아닌 다양한 해석으로 존재하게 되고, 이런 부정확함의 틀 안에서 헨리 카아가 1917년에 레닌을 만났다는 사실 마저 의심되면서 연극은 종결된다.

작가서문
헨리 월프레드 카아(Henry Wilfred Carr, 1894-1962)에 관하여
레닌, 제임스 조이스, 트리스탄 짜라가 주요 등장인물들로 나오는 이 극을 읽는 독자들은 헨리 카아란 인물 역시 역사상 실존했던 인물임을 알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 역시 실존했던 인물이다. 1918년 3월 (리처드 엘만의《제임스 조이스》로부터 다음 자료 이용),
취리히에 임시 거주하고 있던 배우 클로드 사이크스(Claud Sykes)는 조이스에게 영어연극을 상연할 극단을 하나 만들어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조이스는 쾌히 승낙하고는 극단 더 잉글리시 플레이어즈(The English Players)의 경영을 맡았고, 첫 번째 상연 작품을 《진지함의 중요성 The Importance of Being Earnest》으로 계획했다. 배우가 물색되었다. 전문배우들은 30 프랑이라는 명색뿐인 사례금을 받기로 되었고, 아마추어 배우들은 리허설에 오는 전찻삯 10 프랑으로 만족하기로 되었다. 조이스는 매우 적극적이어서 극단의 허가를 얻기 위해 총영사 에이 퍼시 베니트(A. Percy Bennett)를 방문하기도 했다. 영사는 "조이스가 전시복무를 위해 영사관에 공식적으로 보고를 이행해오지 않은 점에 대해 불만을 표했으며, 중립주의 표방의《인터내셔널 리뷰》지에서의 조이스의 활동이나 어느 쪽이 승리하든 관심 없다는 평소의 그의 태도를 잘 알고 있었으며, 이 시기에 쓰여진 조이스의 시 《미스터 둘리》에 대해서도 들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극단허가를 내주었다.
나는 엘만의 전기로부터 인용하고 있는데 그와의 교제는 《트래비스티즈》를 쓰는 가운데 얻은 적지 않은 즐거움이었다. 그러는 동안 사이크스는 배역을 짜 맞추고 있었다.... ''중요한 발견 물은 트리스탄 로슨이라는 인물로 쾰른 오페라하우스에서 4년간 바리톤 역을 맡아 왔으나 연극에는 출연해 본 일이 없는 깔끔한 용모의 사나이였다. 여러 번 간청한 끝에 로슨은 존 워딩(John Worthing) 역을 맡기로 했다. 사이크스는 세실 파머를 집사 역으로 쓰기로 하고, 미스 프리즘(Miss Prism) 역을 맡을 에슬 터너라는 이름의 부인도 찾아냈다... 그러나 주역인 앨저넌 몬 크리프(Algernon Moncrieff)를 맡을 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가 조이스는 영사관에서 알게된 키가 크고, 잘생긴 헨리 카아라는 젊은이를 추천하게 되었다. 카아는 병역에서 면제되어 영사관 일을 보조하고 있었다. 사이크스는 카아가 캐나다에서 몇 편의 아마추어 극에 출연했던 적이 있음을 알고 그에게 역할을 주어보기로 했다.”
결과는 카아의 연기의 자그마한 승리였다. 그는 들뜬 기분에 앨저넌 역으로 분장하기 위한 바지 몇 벌과 모자, 장갑 한 켤레를 사기까지 했다. 그러나 공연이 있은 직후 배우와 극단 경영자 간에는 다툼이 벌어졌다. 조이스는 배역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미리 정한 대로 10프랑 또는 30프랑을 지급했으나 카아의 비위를 상하게 해서, 카아는 조이스가 그 돈을 팁이나 주는 것처럼 주었다고 사이크스에게 불평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자 일은 어색하게 길어지고 말았다. 조이스와 카아는 법정에까지 서게 되어, 카아는 바지 등의 비용에 대해 부담을 하든가, 아니면 수익의 한 몫을 분배하라고 주장했고, 조이스는 카아가 가져간 티켓 5장 값을 변상하라고 주장하는 동시에 명예훼손죄로 고소했다. 이 사건들은 1919년 2월에 가서야 결말이 났다. 조이스는 돈 문제에 있어서는 승소했고 명예훼손 문제에 있어 서는' 패소했으나, 《올리시즈》를 통해 완전히 앙갚음을 했다. 그 작품에서 ''그는 단테만큼이나 빠짐없이 그리고 에누리 없이 처벌하고 있다.... 처음에 조이스는 총영사 베니트와 헨리 카아를 키르케(Circe) 에피소드에 나오는, 술에 취해 신을 모독하고 스티븐 디달로스를 때려눕히는 음란한 군인 두 명으로 만들려고 했었다. 그러나 결국 베니트는 사병에게 권위를 내세우는 특무상사로, 그리고 카아는 불손하기 짝이 없는 사병으로 결정되어졌다.”
헨리 카아에 대한 이런 얼마 안 되는 사실들을 가지고 - 다른 것들은 알아 낼 도리가 없으므로 - "나는, 아직도 취리히에 살고 있고, 레닌 시절에 도서관 에서 만난 여자와 결혼했고, 필시 정확치 않은 기억을 가지고서 조이스와 다다이스트 짜라[Tristan Tzara, 1896- 1963, 루마니아 시인’ 앙드레 브레똥, 뽈 엘튀아르, 루이 아르공 등과 함께 다다이즘 운동의 선구자 한 사람] 를 만났던 일들을 회상하고 있는 한 나이든 신사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그런데 얼마 후, 런던에서 내 극이 개막되고 나서 나는 편지 한 통을 받고 흥분을 금치 못했고 다소 놀라기까지 했다. 그 편지는 이렇게 시작하는 것이었다. ''당신 극에 대한 비평들을 읽고 매우 흥미를 느껴 이렇게 편지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헨리 카아가 1962년에 사망한 제 남편이기 때문입니다.” 그 편지는 카아의 두 번째 부인인 노엘 카아 여사에게서 온 것이었다. 그녀로부터 나는 헨리 카아가 1894년에 선더랜드 (Sunderland)에서 태어났고 더르엄 (Derham)에서 자라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지금은 역시 고인이 된 쌍둥이 형제 월터를 포함해서 모두 4형제중의 하나였다. 17세 때 헨리는 캐나다로 가서 한동안 은행에서 일했다. 1915년 군대에 지원하여 캐나다 검은 연대 (The Canadian Black Watch)로 프랑스에 파병되었다. 다음 해에 부상을 당해 비무장지대 에서 5일간이나 누워 있다가 포로가 되었다. 부상 때문에 독일군들에 의해 수도원으로 보내져 수사들의 보살핌으로 조금 회복된 그는 '포로교환' 때 스위스로 보내지는 집단에 끼게 되었다. 그리하여 취리히에 이른 헨리 카아는 우연히 제임스 조이스를 만나게 되어 무대 위와 무대 밖의 드라마에서 주연 배우가 되었고, 《율리시즈》에 등장하는 조연인물로서 불멸의 존재가 되기까지 했다. 그가 그의 첫 번째 아내 노라 툴록을 만나게 된 것도 취리히에서였다. 전쟁 뒤에 그들은 영국에서 결혼하였고 얼마 후 캐나다로 간 카아는 몬트리올의 한 백화점에서 일자리를 얻고 부인을 불러들였다. 그는 그 회사에서 서기관 까지 승진했다. 1928년 몬트리올에서 그는 노엘 마크를 만나 전처와 이혼한 후 1933년에 결혼했다. 다음 해 그들은 영국으로 돌아왔다. 헨리는 주물회사에 들어갔고 2차 대전 때는 아내와 함께 셰필드(Sheffield)에 살고 있었다. 그들은 공습을 피하여 와릭셔(Warwickshire)의 한 마을로 이사했고 헨리는 그 곳의 자 위대를 지휘하였다. 그들은 전후에도 그 곳에서 살았다. 1962년 런던을 방문했던 헨리는 심장마비를 일으켜 켄징턴 구의 성 메리 애봇츠 병원에서 죽었다. 그는 자녀를 두지 않았다-
나는 노엘 카아 여사가 이러한 전기적 세부 사실들을 제공해 준데 대해, 그리고 나와 나의 극 - 여사에게는 특별히 훌륭한 것으로 보였을 - 에 대해 호의를 보여준데 대해 감사드린다. ... 톰 스토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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