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동이향 '몽타주 엘리베이터'

clint 2023. 10. 19. 09:27

 

 

은밀성과 개방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공간, 엘리베이터. 
혹 그 안에서 다른 사람들이 무슨 일을 벌이는지 궁금하다면?
‘몽타주 엘리베이터’(동이향 작)은 저속하지 않은 관음증을 충족시키는 동시에 
단순히 엿보는 것이 아닌 인생 전체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엘리베이터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인간들의 다양한 모습을 담았다.

객석을 향해 ‘오픈’돼 있는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내부. 
제목처럼 수많은 인간 군상이 합쳐졌다 떨어지기를 반복한다.
“사람을 실어 나르는 두레박”인 엘리베이터는 그 공간을 차지하는 사람들에 따라 

다양한 용도로 변화한다. 연인이 맺어지는 사랑의 장소에서 
억눌렸던 욕망이 폭력적으로 분출되는 공간이 되기도 하며, 
지친 회사원에게 철퍼덕 앉을 수 있는 휴식처가 됐다가 
망자의 관이 실려나가면서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지점이 되기도 한다.

 



이 연극의 무대는 단 하나, 평범한 아파트 엘리베이터다. 
공연 내내 이 엘리베이터는 200번 이상 열리고 닫힌다. 
여기에 교사 대학생 주부 노인 배달부 자동차수리공 샐러리맨 청소부 취객 등 
20명의 배우들이 끊임없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린다.
무대의 엘리베이터는 내부 공간이 객석 쪽으로 향하도록 돼 있어 
관객들은 밀폐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엿보는’ 꼴이 된다.
엘리베이터 안의 거울을 보고 옷매무시를 가다듬는 여자, 코를 후비는 남자 등 
사람들의 지극히 개인적인 모습을 엿보는 재미에서 이 연극은 출발한다. 
그러나 연극이 진행됨에 따라 인물들이 주고받는 단편적 대사나 행동을 통해 
제목에 붙은 ‘몽타주’라는 말처럼, 조금씩 사람들의 삶을 맞춰나가 큰 그림을 그려낸다.
20명에 달하는 등장 인물들이 수없이 타고 내리면서 보여주는 삶의 편린들은 
거의 대부분 왁자지껄한 웃음을 동반한다. 
그렇다고 마냥 넋을 잃고 있어서는 안 된다. 
뇌리 속에서 조각 퍼즐을 맞추듯 그 편린들을 하나씩 맞춰 나가야 한다. 
띄엄띄엄 접하는 등장 인물들의 행동과 말 한마디는 
마지막에 다다를수록 인물 하나하나의 그림을 완성하게 한다. 
이 작품을 보는 맛은 여기에 있다.
대학생 커플의 연애이야기, 주말 부부의 삶, 
아이를 잃고 정신이 이상해진 여자의 슬픔에 대해 알게 된다. 
또 집보다 엘리베이터를 더 편하게 느끼는 직장인, 
억눌린 분노를 취객에게 폭력으로 푸는 남자, 
거짓소문을 퍼뜨리고 다니는 여자 등은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외로운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쉴 새 없이 열렸다가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은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이어주는 통로이자, 
시간을 초월해 관계를 맺어주는 영역이기도 하다. 

 



지금은 영화배우로 잘 나가지만 당시 연극배우로 오달수가 이끄는 

극단 신기루 만화경의 작품으로 2층에 사는 술꾼으로 출연한 오달수는 

등장 자체만으로도 웃음을 자아냈다.

아파트 중심의 도시생활 속에서 매일 스쳐가면서도 의식하지 못하는 공간인 

엘리베이터 안을 무대로, 일상의 편린만을 모아 만든 이 연극은 

관객에게 순간의 미학과 몽타주의 즐거움을 제시한다. 
어떤 해석도 명시적으로 부과하지 않으면서 

우리 삶에 대한 논평을 가한다는 면에서도 새로운 연극의 비전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