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최진아 '사랑, 지고지순하다'

clint 2023. 9. 10. 13:58

 

 

극이 진행되면서 등장인물들은 사랑의 모습에 대한 생각에 변화를 겪는다. 모두 처음에는 하나의 사랑에 순수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 신념 아래 살아가나 관계가 얽히면서 각기 다른 모습의 결론에 이르는 것이다. 성희는 처음에 사랑은 하나이며 그러기에 순수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재우를 만나면서 자신 안에 현호와 재우에 대한 욕망이 모두 존재함을 보고 사랑은 둘일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현호는 역시 사랑은 하나라는 생각에서 출발하나 성희와의 관계에 불안정을 감지하고 사랑이 둘일 수 있음을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하나의 사랑을 바라본다. 재우 역시 사랑은 하나라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성희와 관계가 얽히면서도 자신의 사랑은 윤정이라는 한 여자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이미 둘의 사랑에 빠져있다. 이들의 관계는 하나의 모습으로 끝나나 결론은 각기 다른 형태를 갖는다. 성희는 자신의 욕망을 직접 대면하고 사랑은 수에 그 순수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성희가 이러함으로서 현호는 사랑을 곁에 두고 있으나 성희를 소유하지 못하고, 재우는 사랑을 소유하지 못해서 헤매게 된다. 성희는 두개의 사랑은 그 자체가 불순한 게 아니라 두 사랑을 바라보는 시선에 불순함이 있음을 깨닫고, 두 사랑의 순수를 찾아 규범 밖으로 나서기로 한다. 그리고 성희는 욕망의 한 가운데에 위험스럽게 선다.

 

 

 

〈사랑, 지고지순하다)(2006)는 오늘의 가치관에서 보더라도 상당히 대담한 작품이다.
육체적 욕망의 주체로서의 여성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성희는 현호와 오랫동안 사귀고 있으면서 어느 날 재우와 충동적으로 성적 관계를 맺는다. 그후 현호와 관계를 지속하면서도 역시 여자 친구가 있는 재우에 대한 스스로의 육체적 이끌림에 저항하지 못하며 갈등하면서 육체적 욕망을 '선택'한다. 그가 이끌렸던 재우는 욕망이 '비루'한 것이며 '순간적인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성희에게 욕망이란 사랑이며 사랑이란 “간절한 욕망, 불행해질 걸 알면서도 달려드는 심각한 갈증, 섹스”이다. 성희는 여자 친구 윤정과의 연애의 뒷끝을 윤정의 숨은 남자친구에 대한 질투나 소유욕이나 돈 문제로 실망스럽게 끝내는 재우에게 “난 봤어. 네 안에 있는 빛나는 욕망, 규범도 도덕도 넘어서서 다가왔던 순수, 그때 네 모습은 황홀했어. 일부일처제는 신화야, 라고 말한다. 그러나 재우는 떠나가고 성희는 현호의 사랑이 무엇인지 그를 미행해보기 위해 길 한복판에 선다. 이런 네 명의 애정관계의 얽힘은 역시 성희의 욕망이라는 숨겨진 일인칭 관점으로 진행되는데 전작과 마찬가지로 성희의 공상과 착각과 환상과 대화 안에 여러 다른 인물들이 자연스럽게 현실처럼 끼어든다. 급기야 무대에서 한 여자에게 두 남자가 애무를 하거나 네 명의 남녀가 서로 구르며 성희를 벌이는 도발적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이 작품은 그해 연극평론가 협회가 뽑는 올해 연극 베스트 3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처럼 〈사랑, 지고지순하다〉는 '지고지순한 사랑'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자신의 육체적 욕망과 함께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갈등하며 접근하는 여주인공을 통해 보여준다. 그러다보니 좀 끈적이기도 하고 지루한 설명적 장면들도 없지 않았다.

 

 

 

 

작가의 말 - 최진아
사랑은 정말 지고지순한가. 사회는 도덕과 질서에 기반 해서 운용되고 있으며, 그 안에서 행복과 진정성을 권장한다. 그러나 도덕 안에 편입되지 못하는 감정과 충동을 맞닥뜨렸을 때 어떤 가치 기준을 가질 수 있을까. 이성과 감성, 빛과 어둠, 따뜻함과 차가움 모든 것이 양면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함에도 우리는 인간에게 이성적, 도덕적인 면만 칭송하고 그렇지 않은 충동에 대해서는 외면하거나 단죄하기 일 수였다. 사랑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지속성과 일관성, 헌신을 가치에 두고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지고지순하지 않다고 일별해버린다. 그러나 인간이란 존재는 그렇게 의지적이거나 강직하지 않다. 숱한 충동들과 욕망으로 번민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고지순한 사랑은 불가능한 것일까.
이 작품에서는 사랑의 양상이란 그렇게 단순하지 않으며 하나의 가치기준으로만 판단할 수 없음을 이야기 한다. 두 남자 사이에 빠진 한 여자의 애정행각을 좇으며 제어되지 않는 갈망과 욕정을 보여주고, 이것이 삶에 어떤 에너지가 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리하여 이 여자에게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내일이면 사라져 버릴 것을 알면서도 온 존재를 바치게 되는 부도덕함과 무모함이 있어 그녀의 사랑이 지고지순 하다고 말하고 있다.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은성 '뺑뺑뺑'  (1) 2023.09.12
김정률 '오늘 같은 날'  (1) 2023.09.11
고영범 '이인실'  (1) 2023.09.09
이진경 '고독청소부'  (1) 2023.09.09
홍창수 '오늘 나는 개를 낳았다'  (3) 2023.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