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이진경 '고독청소부'

clint 2023. 9. 9. 08:02

 

국가 기관 소속 고독청소부인 무성과 세만, 이들의 임무는 고독사한 인간의 흔적을 비밀리에 청소하는 것이다. 무성은 고독사위험 제1군으로 분류된 김대성과 우희영을 추가 감시하라는 임무를 맡게 된다. 대성은 아내를 잃은 뒤 아르헨티나 이민 준비에만 5년째 매달리고 있는 독거노인이며, 그의 집 옥탑에는 희영이 살고 있다. 무성의 아내 정숙은, 무성의 상관인 세만과 내연관계에 있다. 감시와 통제, 상처와 고독으로 얽히고설킨 이들의 관계는, 우발적인 살인으로 인해 종국을 향해 치닫게 된다.

 


고독(孤獨). 사전적 의미는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외롭고 쓸쓸함’이다. 고독하게 사망하는 일명 ‘고독사’는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아무도 모르게 홀로 세상을 떠나는 사망 사고가 증가하고 있다. ‘고독청소부’는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고독과 떨어질 수 없으며, 그 고독이 초래하는 비극적 결말에 대해 역시 비극적으로 이야기 한다. 약간의 유머는 있지만 막을 내리기 전까지, 그리고 막을 내린 후에도 굳어져 버린 표정을 고치기 어려울 만큼 극이 던지는 메시지는 무겁고 아프다. 극중 대성과 미자 부부, 그리고 희영이 선보이는 탱고 역시 고독을 극대화하는 장치다. 탱고라는 춤 자체가 주는 독특한 분위기를 넘어 이들의 탱고 몸짓에는 지울 수 없는 슬픔이 있다. 그들의 탱고를 보고 있자니 ‘고독스럽다’는 단어가 절로 떠오를 정도다. 탱고는 슬프다. 그리고 고독한 이들을 더욱 슬퍼 보이게 한다. ‘고독청소부’는 직설적이면서 말이 많지 않다. 구슬픈 탱고선율과 대성의 들릴 듯 말 듯 한 혼잣말이 이어진다. 극중 고독청소부 세만은 이렇게 말한다. “고독은 탱탱볼이다”. 어디로 튈지도 모르고 당연히 잡을 수도 없다고도 말한다. 자신의 고독을 한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작품이다.

 



작가의 글 - 이진경
고독의 정체를 밝히고 싶었다. 작품을 쓰는 내내, 등장인물들과 의기투합했지만, 글쎄, 결론은 글쎄다. 고독의 정체를 밝히려고 전전긍긍하는 내내 나도 고독했다. 작품 속, 고독청소과 팀장 세만이 이런 말을 한다. 고독은 탱탱볼이다. 각자의 탱탱볼. 어디로 튈 지도 모르고 당연히 잡을 수도 없다. 탱탱볼이 튀는 대로 그저 따라가 보고 싶었다. 대성의, 무성의, 희영의, 미자의, 세만의, 정숙의 탱탱볼을. 고독의 정체를 규정하고, 어느 한 방향으로 관객의 마음을 끌고 가기에는, 고독이라는 아이템 자체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저 따라가 보라. 튀는 대로, 따라가 봐서, 탱탱볼이 잠시 지상에 붙어있을 때를 응시하라. 나아가, 관객들도 자신의 탱탱볼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짧은 순간이 생긴다면,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했다. 조금만 더 작가의 허세가 허락된다면, 책에서 본 이 말을 관객이 공감했으면 좋겠다. "인간의 거의 모든 불행은 고독할 줄 모르는 데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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