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미하일 불가코프 '아담과 이브'

clint 2023. 7. 8. 09:14

 

<아담과 이브>는 미하일 불가코프가 1931 6 5일 미래 전쟁에 관한 환상 희곡을 써 달라는 '레닌그라드 붉은 극장'의 의뢰를 받아 8 22일 완성한 작품이다. 이 작품이 창작된 시기는 세계사적으로도 매우 복잡하고 불안한 때였다. 이탈리아에서는 무솔리니가 10년째 통치 중이었고, 인플레이션에 허덕이던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은 파시스트 독재의 길로 진입하고 있었으며, 1929년 중국국민당 장제스가 소련 만주 철도를 점령하면서 소련의 영토 수호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일본 관동군과 중국 국민당이 전쟁을 시작한 것도 1931년의 일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세계대전의 기운은 점차 상승했고, 화학전을 비롯해 초강력 신무기를 소재로 한 소설과 희곡이 우후죽순 등장했다. 그리고 그 예언과 예견은 실제 전쟁으로 이어졌고 전 세계는 엄청난 인적, 물적 손실을 입게 된다.

<아담과 이브>도 이러한 시대 분위기에 맞춰 창작되었지만, 불가코프는 외세 침략에 맞선 국가 수호 문제를 특이한 방식으로 처리한다. 이 희곡은 두 개의 에피그라프로 시작하는데, 그 내용은 불가코프의 그 '특이한 방식'을 압축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다. 먼저 첫 번째 에피그라프는 1차 세계대전 중 독가스의 위해성과 대처법을 소개하는 <전쟁가스>란 저서의 한 대목으로 대량 살상무기의 치명적 위험성을 경고하는 내용이다. 두 번째 에피그라프는 구약<창세기> 8, 21~22절의 내용으로, 세계의 영속성과 항구성을 전하는 신의 음성을 인용하고 있다. 불가코프는 파멸과 불멸의 두 대립항을 병치함으로써 인간의 두 가지 속성의 충돌 양상을 보여 준다.

 

 

오늘날 세계 질서의 모순과 결함으로 인해 인류가 파멸을 겪는다는 지구 몰락 서사는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는 가공할 핵무기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고, 이상 기후 현상과 행성 충돌 등 구체적 위험 요소까지 과학적으로 증명된 오늘날, 몰락 서사는 더 이상 상상적 유희나 막연한 디스토피아가 아니라, 인류문명에 대한 진지한 경고가 되고 있다. 경험하지 못한 세계에 대한 경이로운 신비감이나 미지의 존재나 현상에 대한 막연한 동경은 더 이상 쾌감이나 즐거움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정체를 비춰주는 고통스럽고 뼈아픈 거울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디스토피아 환상물은 여전히 성장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그것은 로즈메리 잭슨이 <환상성-전복의 문학>에서 진단한 것처럼 "환상물들을 읽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탈 신비화 현상 때문이다. , 현실과 시공간적 거리가 있는 환상이라 할지라도 세계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냉철한 비판을 토대로 한다면, 신비화가 제거된 현실적 판단력을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 그런 탈신비화 현상을 통해 환상문학은 리얼리즘 문학보다 더 강하게 현실 사회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아담과 이브>는 몰락 서사의 긍정성을 사유해 볼 수 있는 좋은 단초를 제공한다.

 

 

<아담과 이브>는 공멸적 세계대전 이후의 삶을 가정한 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환상 문학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여기서 불가코프는 파멸 이전의 삶, 즉 동시대인들이 처한 실제 삶의 조건을 무효화하고, 양적·질적으로 이전과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의 조건을 제시한다. 대량살상 무기(독가스)로 인해 레닌그라드의 200만 시민이 몰살당하고, 전 세계가 전쟁의 화염에 휩싸이게 된 후, 탐욕적 자본주의 국가를 몰아내고 새로운 세계 통합 정부(국제정부)가 건설된다는 것이 그것이다. <아담과 이브>는 자본주의 제국 전쟁이라 할 수 있는 제2차 세계대전을 예견했다는 점에서 탁월한 선견지명을 과시하기도 하고, 세계 혁명을 통한 단일 정부를 상정했다는 점, 그리고 소련 과학자 예프로시모프의 발명품이 국제정부 승리의 견인차가 되었다는 점에서 소련 국가 이데올로기에 대한 최고의 선전물로 간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외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아담과 이브> 내부에 도사린 현실 비판이 소련 사회에 가하는 내상은 적잖이 광범위하고 뼈아프다. <아담과 이브>는 대량 살육전이라는 인류의 크나큰 위기 상황을 설정하고, 그 상황을 영웅적으로 돌파하는 소련 인민의 뛰어난 활약상을 기본 서사로 채택하고 있지만, 그래서 환상의 규모와 강도가 현실 감각을 위협하고 지워 버릴 정도로 막강하지만, 그 내부 디테일에는 소련의 현재 상황을 비판하는 강력한 비수를 품고 있는 것이다.

 

 

캐스린 흄은 <환상과 미메시스>에서 환상은사실적이고 정상적인 것들이 갖는 제약에 대한 의도적인 일탈이며 현실에 대한 의도적인 왜곡과 생략, 삭제전략이 동원된다고 주장했다. <아담과 이브>에서 현실을 지워 내는 환상의 삭제 기능은 레닌그라드를 지구상에서 증발시켜 버리는 과감한 방식으로 작동하지만, 무엇보다 의미심장한 삭제 대목은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창세기의 두 인물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새로운 삶의 조건과 존재 가치를 타진한다는 점에서 <아담과 이브> '다시 쓰는 창세기', 혹은 '2의 창세기'로 명명할 수 있지만, 역설적으로 두 주인공의 관계는 최종적으로 파탄에 이르고 만다. 제목만 놓고 따지면 <아담과 이브> "최초의 인간인 두 인물의 결합과 번영을 의미하는 창세기가 아니라, 불화와 질투로 인한 파멸기에 가깝다. 아담은 레닌그라드에서 살아남은 최초의 인간으로서 이 도시의 모든 권한을 접수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이브의 사랑과 신뢰를 얻지 못했고, 결국 그녀로부터 버림을 받고 만다. 마르키조프가 불타고 남은 성경에서 창세기를 읽는 장면은 새로 쓰일 제2의 창세기가 결코 완성될 수 없는 미완의 텍스트이자 결함의 텍스트임을 암시하고 있다. 불타 버린 텍스트의 구멍은 아담과 이브가 채워야 할 공백이었지만, 아담은 사랑 대신 이념을 선택해버린 것이다. 이브의 사랑을 잃어버린 아담은 "당신이 내 아내를 데려갔으니 당신에게 내 이름을 선물하겠습니다. 이제 당신이 아담입니다"라면서 예프로시모프에게 자신의 이름까지 헌납한다. <아담과 이브>라는 제목은 새로운 인류 문명의 시작을 알리는 출발점, 그리고 새로운 세계창조, 새로운 신의 섭리가 작동하는 드라마틱한 과정을 암시하고 있지만 두 사람의 결합은 비극적으로 종결된다. 아담을 대신해서 새로운 인류의 미래를 책임지는 인물은 무지한 프롤레타리아 마르키조프도, 위선적 지식인 폰치크도, 새로운 권력자 아담도, 호전적 전사 다라간도 아닌, 순박하고 인간적인 예프로시모프다. 이브를 둘러싼 치열한 구애 전선에서 예프로시모프가 승리한 것은 미래 후손들에게 가장 절실한 덕목이 바로 그가 견지한 인간주의라는 점을 웅변한다.

 

 

실패의 기록으로 변질된 아담과 이브의 창세기보다 더 치명적인 비판의 비수는 폰치크를 통해 행해지는 사회주의에 대한 온갖 악담들이다. 논리나 개연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가공할 환상은 그 허무맹랑함으로 인해 면죄부를 받게 된다. 환상은 현실적 실재성을 포기한 대신에 상상의 자유와 금기의 해방을 취하는 허구적 전략이다. 이를 통해 환상은 실재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왔던 것들의 견고함을 부정하고 교란하는 강력한 무기가 되는 것이다. 폰치크의 사회주의 험담이 바로 이에 해당한다. "자신의 재능을 팔아 아첨 소설을 쓴폰치크는 양심과 재능을 팔아 레닌그라드 문단에서 명성을 쌓아 올리지만, 그토록 공들인 인문학계가 일순간 몰락하면서 실망과 좌절에 빠지고 만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에게 닥쳐온 환상을 실재로 받아들여, 그 실재를 주도한 신에 대해 신앙고백을 하거나("주님, 저는 뼛속까지 주님을 믿으며, 공산주의는 증오함을 고백합니다"), 소련의 승리에 대한 의심을 과장하거나("소련이 이길 거라는 아주 멍청한 확신"), 혁명의 대의에 대한 원색적 비난을 하거나("문명 세계가 지켜온 모든 가치를 파괴했어"), 소련에 대한 무조건적인 적의를 드러내는 것("망할 공산주의 같으니!")뿐이다. 물론 이런 악의적인 험담들은 환상의 보호막 아래서도 결코 허용될 수 없는 것이지만, 다라간이 복귀하자 즉각 태도를 바꾸는 폰치크의 위선적 행태로 보아, 그 험담의 탄착점은 사회주의 자체에 있다기 보다, 음흉하고 위악적인 지식인의 기회주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진정으로 끔찍한 것은 아담과 다라간이 주도하는 새로운 사회에서 폰치크나 마르키조프 같은 인간들이 계속 권세를 유지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권력에 편승해 기회주의적 처신을 일삼는 위선적 무리들은 체제와 이념과는 무관하게 타인으로부터 자신의 잇속을 편취하며 세계에 기생하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무엇보다 사람이 중요하고, 심성이 우 선한다는 이브의 판단은 작품 주제를 정확히 관통하고 있다. 특히, 이념보다 인간을 중시하는 예프로시모프를 처형하려는 아담과 다라간의 음모에 대한 이브의 저항은 <아담과 이브>의 환상이 어떤 현실을 지시하고 있는지, 소련의 현실은 어떤 비현실성을 품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브의 이 대사를 보라. "당신들 모두 지금 내 꿈에 나타난 거야! 믿기지 않는 신기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 뿐이야. 당신들 모두 헛것이야. 당신들 어느 누구도 살아서는 안 되는 거였어. 위대한 마법사가 나타나 당신들을 저 세상에서 불러냈더니, 되레 그를 죽이려고 울부짖고 있잖아요."

 

 

독가스로 인한 인류의 대량 살상이라는 허황된 환상을 설정하고 표면적으로는 현실의 지표를 모두 지워 버렸지만, <아담과 이브>에서 발휘하는 환상의 마법은 오히려 강하게 현실을 드러낸다. 현실감이 미약한 몽상에서 출발한 <아담과 이브>는 아담과 이브라는 신화적 존재가 노아의 방주 같은 창세기의 공간을 배경으로 몰락 이후의 삶에 대해 벌이는 논쟁을 '현실적으로보여준다. 이념의 노예가 되어 버린 신인류의 논리는 인간성을 바탕으로 한 화해와 협력이 아니라 갈등과 대립을 전파하는 해악으로 변질되고 있다. 환상 문학이 제공하는 신비하고 경이로운 세계나 미지의 시공간을 탐험하는 주인공의 모험과 활극 대신 <아담과 이브>에는 현실을 지워버린 환상이 얼마나 위태롭게 존재하는지, 6명의 인간에게 내맡겨진 인류의 미래가 어떻게 성립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성찰을 제시한다. 환상은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자명한 현실이 되어 인물들을 압박하며, 그 강도가 강해질수록 독자는 지워져 버린 현실의 참모습으로 고개를 돌리게 되는 것이다.

 

 

Mikhail Bulgako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