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아고타 크리스토프 '전염병'

clint 2023. 6. 27. 14:00

 

「전염병」은 현대 문명의 부패와 몰락에 관한 작품이다.

팬데믹으로 우리는 전염병의 공포와 격리의 답답함을 충분히 경험했다.

작가는 코로나19 바이러스보다 더 강력한 바이러스를 이 극에 끌어들인다.

바로 '자살 바이러스'이다.

그런데 연극의 후반부에 다시 살아나는 의사와 설득사를 보면

일종의 흡혈귀들이 번식하는 것과 비슷하게 진행된다.

죽은 이들의 목을 자르지 않으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암시하는

소방관의 대사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결국 도시개발업자라는 흡혈귀들이 퍼트린 자살 바이러스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작가는 '구조자'라는 구원의 이미지를 등장시켜 종교적 상징을 사용하기도 하고, 잠자는 여인과 같은 동화의 상징도 사용한다. 한편, 시니컬한 의사와 엉뚱한 소방관들, 그리고 이상한 논리를 펼치는 설득사까지 등장하면서, 이오네스코의 「대머리 여가수」와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우리 문화가 가지고 있는 클리셰를 비꼬는 부분들도 여기저기에 보인다. 죽으려는 여인을 살려낸 남자는 그녀의 미모 때문에 여인이 원치 않는 책임을 지려 한다. 남자는 구원자에서 스토커로 변신한다. 이는 구원을 바라지 않는 사람들을 구원해주겠다고 졸졸 따라다니며 전도하려는 일부 기독교 광신도들에 대한 비판으로 보인다. 인간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직업인 의사는 창문 밖으로 뛰어내려 생명을 버리는 일을 벌인다. 마지막 심리학자인 설득사는 성공학 책의 한 대목을 읽으며 설득을 시도한다. 구조와 진화가 직업인 소방관들은 살인을 전문으로 하며 보고서 작성에만 신경 쓴다. 이들은 종국에는 서로 죽이면서 자신의 욕망을 채운다. 부활했다가 다시 서로를 죽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의 계획은 평범한 남자1과 남자2에 의해 수포가 된다. 타고 도주할 헬기가 망가져, 결국 밀고 들어오는 불도저에 전부 사라지고 만다권력자는 신도시를 건설한다며 주민들을 헐값에 쫓아내고, 뇌물준 건설업자에게 빼앗은 토지를 헐값에 넘기고, 건설업자는 콘크리트로 고층아파트를 올려서 커다란 이익을 챙긴다. 부동산업자와 언론은 투기 바람을 일으켜 사람들이 무리하게 대출받아 아파트를 사게 만든다. 일반 서민에게 빚이라는 짐을 얹어서 노예로 만드는 것이다. 그들이 일한 돈은 대출이자로 전부 빠져나간다. 방법이 없으니 죽음으로써 이 굴레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이들이 죽으면 담보로 잡혔던 부동산이 은행에 넘어간다. 자살 바이러스는 이렇게 우리 현실에도 퍼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