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잿빛 시간 또는 마지막 손님>은 조화와 부조화로 이루어진 부조리극이다. '소리'는 조화와 부조화를 표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옆방에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바이올린연주가 들려오면서 연극이 시작된다. 하지만 문을 여는 열쇠 소리와 함께 음악은 멈춘다. 남자와 여자가 들어와 자리를 잡고 대화를 시작하자 바이올린 연주자는 딸꾹질하듯 코드를 틀린다. 보통 음악에서 코드는 조화를 상징하지만, 극중 남자와 여자가 조화를 이루면 옆방에 사는 음악가의 코드는 맞지 않는다. 한쪽에서 조화가, 다른 쪽에서는 부조화가 나타난다.

여자와 음악가의 관계는 독자(관객)의 관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음악가는 단순히 여자의 옆방에 사는 신경이 예민한 사람일 수도 있고, 여자와 깊은 관계일 수도 있다. 또한 여자는 나이프가 아니라 음악을 두려워한다. 눈앞의 나이프는 위험 요소가 아닌 꿈을 불러일으키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남자가 꿈을 꾸어 보라며 나이프를 들이대지만, 여자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중에는 나이프를 빼앗아 남자를 위협하기까지 한다. 날카로운 나이프와 달콤한 꿈이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음악가가 연주하는 바이올린과 권총도 엇나가는 느낌이다. 위협을 가하는 수단과 위안을 주는 수단이 한공간에 공존한다. 여기에도 조화와 부조화가 동시에 드러난다. 여자와 남자의 관계가 로맨틱 해지려는 순간마다 음악가는 여자의 방문을 두드리며 조용히 해달라고 한다. 심지어 두 사람이 사랑에 관한 대화를 나누면 못 참겠다는 듯 억지로 방문을 열려고 한다. 하지만 여자와 남자의 관계가 부조화로 흘러가자 바이올린의 코드가 맞춰진다. 둘의 관계가 부조화의 방향으로 갈수록 자신에 찬 연주소리가 흘러나온다. 마지막에 여자가 졸면서 꿈꾸고 두 사람이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것 같은 대사가 이어지면 음악은 또 어김없이 빗나간다. 절망한 남자가 여자의 돈을 훔쳐서 방을 나서자, 열린 문으로 밤의 주술에서 풀려난 음악을 연주하며 음악가가 들어온다. 음악가는 잠 들어있는 여자를 향해 권총의 방아쇠를 당긴다. 마치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에서 주인공 뫼르소가 권총을 쏘면서 자아의 평형을 무너뜨린 것처럼, 음악가는 여자에게 총을 쏘면서 극이 진행되는 내내 존재하던 조화와 부조화의 평형을 무너뜨린다.
음악가는 왜 여자에게 총을 쏜 것일까. 밑바닥 인생을 살다 마침내 죽음을 바라는 그녀를 도와준 것일까. 여자가 기다리던 마지막 손님마저 그녀를 구원하지 못하자 직접 구원한 것일까. 아니면 이제 이제 막 완성한 음악을 더 이상 방해 하지 못하게 제거한 것일까. 작가는 열린 결말로 우리에게 더 큰 질문을 던진다.

1990년 프랑수아 플뤼만François Flühmann의 연출로 튀뭘트 극단이 뇌샤텔 문화센터에서 초연했다. 1992년부터 독일에서 무대에 올려졌고, 이어서 1993년 암스테르담의 토네일흐름Toneelgrocp 에 의해 네덜란드에서 공연되었으며, 1998년에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페르골라 극장에서 '페르골라의 작가들'이라는 기획으로 낭독 형태로 소개되었다.

'외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뮤리엘 스파크 작 제이 프레슨 알렌 각색 '진 브로디의 선생의 전성기' (1) | 2023.06.29 |
---|---|
아고타 크리스토프 '전염병' (1) | 2023.06.27 |
게오르그 뷔히너, 이윤환 재구성 '개가 된 남자, 보이첵' (1) | 2023.06.26 |
아고타 크리스토프 '속죄' (1) | 2023.06.25 |
아고타 크리스토프 '괴물' (1) | 2023.06.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