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박경창 '우박소리'

clint 2023. 1. 18. 09:08

 

 

줄거리

1945 12, 가난한 시골집의 장성한 아들인 복만은 전문적으로 그림을 공부한 화가지망생이다. 그의 아버지는 복만의 미술이 집안 형편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몹시 못마땅 해하며 간판쟁이라도 되라고 계속해서 재촉한다. 아버지와 복만의 불화는 어머니의 중재로 겨우 위태로움을 넘기는 지경이다. 한 집에 사는 박씨의 딸 명순은 부자 남편에게 첩으로 시집갔지만 치장에 신경쓰느라 형편에 도움 되지 않는 건 마찬가지다. 명순의 삶은 행복하지도 않다. 명순과 복만은 서로 좋아하지만 돈 때문에 이루어지지 못한 사이이다. 간판 일을 강요하는 아버지와의 의견 차이 때문에 집안은 또 한번 크게 소란스러워진다. 명순의 오빠 철봉은 징용으로 끌려갔다가 돌아오자마자 돈을 벌러 북쪽으로 떠나야겠다는 결심을 밝힌다. 상심한 명순과 어머니를 앞에 두고, 복만은 자신도 철봉과 함께 떠나겠다고 말한다. 자유로운 곳에서 기반을 닦아 마음껏 그림을 그리겠다는 것이다. 만류하는 어머니와 깊이 상심한 명순을 뒤로 한 채, 철봉과 복안은 문을 나서는데, 아버지도 뛰쳐나오며 슬픔을 감추지 못한다. 모두 우박을 맞으며 슬퍼하고 있을 때 영순이 복만의 아버지를 달래며 막이 내린다.

 

 

신문기자 출신으로 해방기 몇 편의 단막극을 발표한 박경창의 또 다른 희곡 「우박소리」는 민족국가 내외에 걸친 경계에 끼어있는 삶들을 통찰한 극이다. “건국 2 1 13에 쓰여진 것으로 표기된 「우박소리」 역시 귀환자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 해방 후 고향으로 돌아와도 정착하지 못하고 다시 조선을 떠나야 하는 청년들의 비극이 형상화된다.

1945 12월 말일 어느 지방의 소항구를 배경으로 진행되는 「우박소리」에서, 극이 진행되는 내내 청각으로 환기되는 우박소리는 나아질 것 같지 않은 빈민의 현실을 암시한다. 극은 노동자인 중기와 그의 처 및 아들인 복만, 이웃 박씨와 그의 장남 철봉 및 딸 명순으로 구성된 두 가족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1장에서 중기는 생활에 도움이 안 되는 그림만 그리는 아들 복만을 비난하고, 딸 명순을 부잣집 한량에게 시집보낸 박씨는 징용나간 아들을 하염없이 기다린다. 또한 늘 술에 취해 있는 복만은 한때 자신을 좋아했던 명순을 희롱하는 등 목적 없는 삶을 지속하면서 아버지와 사사건건 대립한다. 2막은 명순의 오빠인 철봉이 돌아오며 시작되는데, 사람들은 그를 반기지만 철봉은 이곳에서는 안락한 삶을 살 수 없다며 새로운 터를 개척하겠다고저 북쪽으로 떠난다. 이에 자극 받은 복만 역시 철봉과 함께 "안주의 땅을 개척한 뒤 부모를 모시러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고향을 떠난다.

 

 

단막극인 「우박소리」에는 시대상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지만, 단결과 마찬가지로 해방기 빈민의 음울한 이면이 비춰진다. 예술가인 복만은 실체 없는 방황만 할 뿐이고, 한몫 잡아보려 딸을 한량에게 넘겼던 박씨의 삶은 중기 가족과 마찬가지로 전혀 나아지지 않는다. 박씨는 징용나간 아들만 기다리는데, 2장에서 아들 철봉이 돌아오지만 그는 함석집에 사는 가족들을 밝은 미래로 인도하는 대신 훗날을 기약하며 다시 길을 떠난다. 즉 「우박소리」는 귀환한 청년이 현실에 발붙이지 못하고 다시 떠돌게 되는 비극을 다루는데, 그 암울한 정서가 극을 지배하는 우박소리와 공명하고 있다. 특히징용간 사람들이 모다 돌아오니 언제 우리 아들도 나올지 모르는데 잠잘 때도 없오라는 박씨의 대사는, 밀려드는 귀환자들이 보호받지 못하고 방기 되는 해방기의 혼란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결국 철봉은 고향에 머물지 못하고 새로운 안주의 터를 찾아 떠나게 된다. 또한 예술가에게 정당에나 가입하라고 하는 상황을 견디지 못했던 복만 역시 철봉을 따라 떠난다. 극 중 철봉은 종전 후 고향에 돌아와도 다시 떠날 수밖에 없는 재난민의 위치를 보여주는데, 고국에 돌아와도 환영받지 못하고 떠돌아야 하는 철봉의 현실이 신생조선의 이상적 미래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이처럼 귀환 후에도 신분과 지위를 보장받지 못하는 난민의 존재는, 조선으로 돌아와 건설의 주체로 자리매김하는 청년들과 대비되면서 해방기 귀환자의 양가적 면모를 드러낸다.

하지만 정치 과잉의 강압적 분위기 속에서 연극이 파생됐음에도 불구하고, 청년의 이미지가 일관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극중 이상적인 청년은 전환기의 사명을 자각하지 못한, 개인주의를 탈피하지 못한 구세대와의 구분을 통해 형상화되는데, 청년의 대타항인 구세대의 이미지가 공고하게 구축되지 못할 경우 청년상 자체도 일관성을 상실한다. 특히 담론장에서 형성된 바람직한 애국청년상과 극 중 주체자인 청년의 이미지가 어긋날 때 괴리감은 증폭되는데, 청년이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거부하거나 주어진 현실에 회의하고 방황할 때 원만한 세대교체는 이루어질 수 없게 된다. 이 작품은 이러한 현실의 공명자인 동시에 이상향으로서의 청년의 괴리를 다루고 있다.

 

연습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