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명 작가인 레마르크(Erich Maria Remarque)는 1898 년, 독일의 오스나브뤼크에서 태어났다. 레마르크는 18세의 어린 나이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몇 차례나 사선을 넘었는데, 이때 체험한 전쟁의 참상이 후에 발표한 그의 소설에 잘 나타나고 있다. 그는 종전 후 한때 시골의 국민학교 교사로 재직한 적도 있으나 얼마 후 퇴직하였다. 그 동안의 경위는 그의 두번째 작품인 '귀로'의 주인공에게 투영되어 있다. 실의와 좌절에 빠진 나날을 보내던 레마르크는 몇몇 직업을 전전하다가 9 년간이나 무명의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다. 그러다가 1929 년 제1차 세계대전의 전장에서의 체험을 소재로 한 '서부전선 이상없다'를 발표, 기록적인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일거에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했다. 이 책은 18개월 동안에 25개국어로 번역, 발행부수만도 350 만을 넘었다. 이것은 한 병사의 눈에 비친 전쟁의 갖가지 양상의 기록이고, 같은 입장에서 전후의 양상을 그린 것이 제2작이 되는 1931 년에 발표한 '귀로'이다. 두 작품이 모두 반전적인 감정이 노골로 드러나 있었기 때문에 그는 나치스의 박해를 받았다. 레마르크는 33 년 나치스가 정권을 잡자 스위스로 이주했다가, 39 년에 미국으로 망명해서 시민권을 얻었다. 나치스는 그의 작품에 판금 분서 처분을 내렸고, 아울러 그의 독일 시민권을 박탈하였다. 그후의 레마르크는 헤밍웨이를 비롯한 미국 작가의 영향도 받았는데, 망명해 있으면서도 그의 붓은 꺽일 줄을 모르고 잇따라 문제작을 발표했다. 제3국으로부터의 정치적 망명자의 비운을 그린 '너의 이웃을 사랑하라'를 낸 후, 파리를 무대로 한 '개선문'을 발표해 발행부수가 200 만이 넘는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계속해서 망명가 소설 '생명의 불꽃'을 내놓는 등 전쟁을 모티브로 독자들에게 인간의 절망과 공포를 일깨우고 생명의 존엄성을 재확인시켰다. 그리하여 전쟁이란 괴물이 사랑도 앗아간 '사랑할 때와 죽을 때'를 1954 년에 출간, 세계적으로 명성을 더욱 다지면서 망명 작가 중에서도 가장 행복한 생애를 마쳤다. 일찍이 전쟁의 허무함을 뼈저리게 느낀 레마르크는 세계의 평화를 호소하면서 1970 년 72세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소설은 현대 인간의 운명을 흥미 깊은 줄거리 속에 시대적 비평과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를 알맞게 뒤섞어가며 효과있게 썼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것이 그의 처녀작 '서부전선 이상없다'에 이미 나타난 것을 생각한다면, 이 작가가 현대라는 시대에 대하여 얼마나 예민한 예술적 후각을 가지고 있었던가를 엿볼 수 있다.
레마르크의 다른 소설과 마찬가지로 '사랑할 때와 죽을 때'도 전장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해서 '전쟁에 의해서 파괴된 세대의 삶과 죽음'을 리얼하게 그리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를 무렵, 소련의 대평원. 인류가 만들어낸 비극인 전쟁이 그 끝을 향해서 소용돌이치고 있을 때, 독일군은 적국의 전선에서 서서히 다가오는 패전의 그림자를 느끼고 있었다. 주인공 그레버는 전쟁터에서 2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오지만 고향의 거리는 전쟁을 치르는 동안 황폐해질대로 황폐해져 있었다. 전쟁에 참전해서 그가 무수히 보아 온 것은 아무렇게나 버려진 시체와 죽음의 냄새였다. 그러나 고국에는 오히려 전선보다 더한 비정함이 감돌았던 것이다. 그가 간신히 찾아간 집은 폐허더미가 되어 있었고 양친은 행방불명이었으며, 늘 꿈꾸던 평화 대신에 불신과 억압. 기아와 도둑질이 난무했다. 짧은 휴가기간 동안에 소년시절의 친구 엘리자베스와의 재회와 사랑, 그리고 이별 주인공은 사랑하는 아내와 헤어져야 할 시간이 다가오자, 비로소 완전한 자유와 행복이란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그가 누렸던 일상의 삶 속에서 존재했음을 깨닫는다. 주인공 그레버는 소유는 상실이며 출발은 곧 귀환임을 스스로에게 확인시키면서, 그가 그토록 거부했던 그 전쟁 속으로 다시 돌아온다. 그도 역시 전쟁의 희생물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일선으로 돌아와보니 이미 많은 전우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고, 그레버 자신도 죽음이 그의 가까이에 있음을 느낀다. 드디어 전선이 무너진 채 아무 명분도 없는 대전투가 벌어진다. 마침내 전쟁이란 괴물은 적군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모두 집어삼키고 만다.
1954 년에 발표된 '사랑할 때와 죽을 때'는 인간성에 대한 신뢰와 불신이 조화되지 않는 갈등, 현실의 압도적인 부조리에 직면한 인간 속에 생겨나는 절망과 삶의 충동, 낡은 가치와 그 수호자들에 대한 젊은 세대들의 자포자기적인 분노가 특히 잘 나타나 있다. 비인간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인간성의 회복을 호소해 대중의 호응을 받은 이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이 남긴 빼어난 전쟁소설로 지금도 많은 독자를 사로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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