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소설

이청준 '이어도'

clint 2023. 1. 4. 21:01

 

 

‘이어도’는 제주도 뱃사람들의 구전으로 전해져 오는 피안(彼岸)의 섬 이름이다.
대개의 문학작품들에 나타나는 피안의 이상향이란 현세의 모든 고난과 갈등에서 해방된 지극히 아름답고 행복스런 복락(福樂)의 땅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어도 역시 제주도 뱃사람들의 그런 복락과 구원의 이상향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어도는 다만 그러한 구원과 복락의 이상향일 뿐만 아니라 제주도 뱃사람들의 죽음의 섬을 의미하기도 한다. 뱃사람들이 바다를 나갔다 돌아올 수 없게 되면, 그들은 마침내 이어도로 갔노라고 믿는다 한다. 이어도로 가서 이어도의 복락을 누리게 된 거라고 믿는다 한다. 그리고 그것을 믿고 싶어하는 뱃사람들은 그들의 위험스런 뱃길을 이어도로 위로받으며 두려움 없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어도는 또한 제주도 뱃사람들의 죽음의 섬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그 복락의 이상향에 대한 꿈과 죽음의 공포로써 이어도는 다만 피안의 섬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제주도 뱃사람들의 차안(此岸)의 삶 속에서 그 주술적인 힘이 현실화한다. 제주도 뱃사람들의 차안의 삶을 간섭하고, 그 현실적인 삶의 모습을 결정지으며, 그 의미를 해명한다.

 


나는 소설 〈이어도〉에서 이어도의 전설을 소개하고 그 섬의 정체를 밝히려는 것이 아니라 그 섬이 어떻게 우리들의 삶을 거꾸로 간섭해 왔고, 또 모습지어 왔는가를 보려고 노력했다. 이어도를 빌어서 피안의 그것이 아닌 현실의 삶의 한 참 모습을 해명해보고 싶어한 것이다. 바라건대 우리에게 더 많은 이어도가 있어줬으면 좋겠다. 그것은 이어도가 실재 아닌 허구에 불과한 것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때로 가시적인 사실에서보다는 그 허구 쪽에서 오히려 더 깊은 진실을 만나게 될 때가 있으며, 자유로운 정신의 모험을 꿈꾸는 한 개인의 내면사와 그가 실존하고 있는 현실과의 갈등 속에 우리는 가장 절실한 우리 삶의 참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작자 이청준

 

 

제주 사람들은 옛부터 이어도라는 섬에 대한 환상을 안고 현실의 어려움을 견디어 왔다. 그러나 아무도 그것을 본 사람은 없었다. 그것을 본 사람은 모두 그 섬으로 가 버리고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해군 함정까지 동원하여 파랑도 수색 작전을 벌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두 주일 동안 계속된 치밀한 수색전에도 불구하고 끝내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파랑도 수색 작전을 취재하기 위해 함께 승선했던 제주 출신의 남양일보사 천남석 기자의 실종 사고가 난다. 천남석과 마지막 밤을 보낸 정훈 장교 선우현은 그 소식을 양주호 편집국장에게 전하고, 그가 자살했을 거라는 편집국장의 말에 호기심을 갖고 그의 죽음을 탐색하게 된다.
천남석에게 제주섬은 떠나고 싶고 거부하고 싶은 과거요, 현실이다. 뱃사람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늘 바다에서 며칠씩 보냈고, 어머니는 아버지가 나타날 때까지 이어도 노래를 부르다 죽는다. 어린 그가 겪은 아픈 상처는 이어도의 부재를 간절히 원하게 만든다. 섬사람들은 이어도라는 섬을 믿기에 이어도 노래를 부르면서 그리움과 고통을 삭여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수색 작전에서 그 섬이 없는 것으로 드러나자 그는 자신의 섬을 보며 부재를 거부한다. 그도 결코 뿌리를 떠날 수 없는 섬사람이었다. 결국 섬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자살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