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먼지 없이 휑한 날, 영온은 정류소에 앉아 기다리고 있다. 사람들은 항상 그 자리에 있는 영온에게 버스에 대한 정보를 묻는다.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나빈은 학원 노선의 버스를 매번 놓친다. 나빈의 외할아버지인 원호는 그런 나빈을 걱정해서 따라다닌다. 나빈의 주머니와 가방은 원호가 챙겨준, 택시비로 가득 차 있다. 원호는 정류소로 향할수록 그곳에 있는 영온이 궁금하다. 영온은 버스를 놓치는 나빈이 의문이다. 별이 뜨는 밤, 나빈과 원호는 공터에서 운동하다가 과거의 일 때문에 다툼을 한다. 나빈은 화나서 집에 가버린다. 그날 밤, 원호와 나빈은 가족 부양에 지쳐 집을 떠난 엄마의 이야기를 하다가 미래에 대한 의견 차를 좁히지 못한다. 나빈은 머리를 식히기 위해 공터로 간다. 영온은 누군가에게 쫓긴다. 공터에서 주인 있는 고구마를 캐고 있던 영온은 나빈과 마주친다. 영온은 자신을 찾는 전단지 때문에 정류소를 박차고 뛰어나왔다는 사실을 나빈에게 들킨다. 영온은 가족이었던 효진을 가족이라고 생각한 적 없어서 집을 나왔다고 말한다. 나빈은 영온의 진심을 듣고, 자신의 엄마도 그랬을까 하는 생각에 친구가 되려는 마음을 접는다. 나빈은 자신이 할아버지를 떠날 명분, 엄마와 같은 편에 서보게 해주어서 영온에게 고맙다는 말을 건넨다. 나빈은 그날 밤 떠날 짐을 싼다. 그런 영온의 눈앞에 근우가 나타난다. 근우는 자신을 보고도 짖지 않는 개, 영온이 특이하다고 한다. 근우는 1년 전부터 정류소에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봤다고 한다. 영온은 근우가 나빈과 같은 꿈을 가진 친구였지만 현실의 반대에 부딪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래서 근우의 목에는 빨간 줄이 있다. 목줄에 묶였던 개, 영온과 목에 줄을 감았던, 근우는 서로에게 동질감을 느낀다. 근우는 나빈의 꿈을 반대하는 원호를 자신의 가족과 같은 이유로 원망한다. 그 당시 원호는 나빈의 공무원시험 날짜가 임박한 나머지 근우가 죽었다는 사실을 나빈에게 숨겼다. 원호는 나빈이 이루지 못한, 하지만 노선을 바꿔서라도 이루고 싶은 꿈 때문에 집을 떠났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짐작한다. 그렇게 현실과 앞날을 모두 감당하려는 원호. 흙먼지가 거센 오후, 나빈은 영온을 찾아온다. 나빈은 영온이 효진에게 떠날 신호를 보냈을까? 혹시 우리 엄마도 나에게 보내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다. 이에 영온은 “언제나 떠나는 것들은 발버둥을 쳐.” 라고 한다. 나빈은 자신이 그 신호, 발버둥을 눈치채지 못했다는 사실에 괴로워한다. 그래서 엄마에 대한 원망을 영온에게 푼다. 떠난 사람에 대한 화풀이다. 반대편 입장에 서있었지만 이젠 같은 자리인 나빈과 영온. 그러나 오히려 감정의 골이 깊어진다. 그 와중에 영온의 주인이었던 효진과 영온이 마주치게 되는데...
작가의 글 - 조은희
남겨진, 떠난, 기다리는, 이들은 모두 정류소에 모인다.
과거, 현재, 미래가 이 장소에 있다.
남겨진 이들은 현재에 있는 것 같지만 사실 과거, 미래를 왔다 갔다 한다.
떠나는 이들은 미래에 있는 것 같지만 과거, 현재를 그리워한다.
그런 부분이 뒤를 도는 당사자에겐 앞이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지금의 앞을 다루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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