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첨지 댁에 시집 온지 열흘 만에 집의 살림을 맡게 된 새댁은
재물에 관심이 없고 책에 묻혀 지내는 시아버지 오첨지와 남편 혁진을 대신해 집의 부흥을 계획한다.
먼저 집의 재물을 내다 팔고 빚을 내서 집 안팎을 바꾸고 떡과 음식을 준비해 잔치를 벌인다.
이 집 살림 일꾼인 할멈은 새댁이 오첨지댁 말아먹는다고 투정이 심하다.
오첨지와 남편도 그간 간신히 굶지 않을 정도로 지냈는데 연일 배불리 먹으니 걱정이나
남편 혁진은 새댁에게 교육을 받아선지 무조건 새댁 시키는 대로 한다.
오첨지의 형님 오만석은 이웃 마을의 부자로 선대의 재산을 모두 차지했고
구두쇠로 소문이 나서 오첨지와 사이도 좋지 않다.
그런 오만석이 집에 들린다고 했을 때 새댁은 전부터 다툼이 있었던 오십마지기의 논에
두마지기 오첨지의 땅을 시세로 백부에게 팔겠다고 하고 오만석은 좋다구나 인수한다.
그리고 모종의 계획을 짜는데...
손이 큰 새댁으로 주위 평판을 만들고 시아버지와 그의 형님이 화해하고 재산을 나누는 것처럼 만들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재미있는 작품이다.
작가의 글 - 朴牛春 (1985. 9. 23)
대개가 그렇듯이, 응어리진 사연들이 오랫동안 축척되어 오다가 용이 여의주를 얻은 듯 기회를 잡게 되면 축척되었던 응어리는 하나하나 제물에 흘려 다듬어지고 틀에 싸여져서 탈고의 기쁨을 맛보게 되는 것이, 나의 예라 하겠다. 필자가 대여섯 살 땐 외가에서 자랐다. 외가에는 검둥이 할멈이란 종이 있었는데 그 할멈의 등에서 투정을 부리고 잠자며 자라다시피 했다. 어쩌다 넘어지면, 〈에이구. 우리 귀한 외손이 큰일 날뻔 하셨네요.〉하면서 번쩍 안아 등에 업고 달래줬고 마을에 크고 작은 일에는 약방에 감초처럼 나타나서 부엌일을 감독 지도하였다. 그리고 올 때는 허리춤에 대추니 곶감이니 다식 등을 꼭 끼고 와선 홀홀 불어가며 입에 넣어주는 인정을 잊지 않았다. 씨버리할멈이라 불릴만큼 말이 많고 욕도 잘했지만 어찌나 인정이 많은지 동네 개가 죽었다는 소리만 들어도 곧 눈물이 점벙점벙해지고 코를 풀던 모습이 역력하다. 지금도 인생이 고단하고 피곤할 땐 코를 밝고 자던 검둥이 이처럼 그리워지며 베홀 적삼에서 풍기던 아릿한 체취를 느낄 때마다 그때의 사연들로 응얼지며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재창조하여 등장시키고 싶었다. 어쩌면 검둥이 할멈은 순수한 한국인의 마음이요 정서요 얼이며 생활감정의 표본이라 하겠다. 연출에서도 그렇거니와 극작에서도 조역에 비중을 크게 두고 두드러지게 살릴 때 작품의 내용이 풍부해지고 알차게 짜여지며 무대 역시 재미있고 다양성 있게 승화된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이 주역으로서 극을 이끌어감은 물론이거니와, 극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갈등 상승의 조화는 할멈 역이 오히려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오십 년 가까이 응얼진 상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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